나는 확실히 자기계발서 쪽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호불호의 문제일 뿐 자기계발서를 읽는다는 게 문제라는 이야긴 결코 아니다.
예전에도 말했던 바, 난 '야한 걸 보고 싶어도 텍스트로 보라' 하셨던 문학선생님의 지론에 따라 무엇을 보든 텍스트를 보는 일은 일단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텍스트는 안 읽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 텍스트의 질적 수준과 관계 없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난 해본 적이 없지만 귀를 뚫고 나서도 바로 귀고리를 하지 않으면 구멍이 도로 막힌다고 하던데, 그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글자를 읽는 건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데에도 꽤 많은 두뇌활동이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꾸준한 의지를 가지고 사용해야만 일반적인 수준으로 기능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글자를 읽는다는 건 그냥 숨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뭐든지 일단 읽는 게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꾸준히 해야 하는 혈당관리나 체중관리 쪽과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난 어찌되었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 이런 비교는 불가피하다. 내 글을 읽는 게 유익할까, 아니면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유익할까?
나로서는 참 할 말이 없다. 애초부터 이 글이 어떤 '유용함'을 목적해본 바도 없거니와, 심지어 기본적으로 생각해봄직 한 '이 글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타겟 설정도 한 바가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 소품집은 무척 기계적인 활동이다. 생각나는 주제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대로 주절거리고 있다. 혹시라도 내 이런 주절거림이 누군가에게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막상 난 그 일이 무척이나 요원할 거란 사실을 안다. 부디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나누는 소소한 수다정도로 여겨지면 좋겠다. 간혹 피식 웃음만 터져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내 글은 유익과는 거리가 멀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건 순전히 내 취향과 성격 탓인데, 일단 나란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가 그렇게 뭘 '하라'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질 않는다. 듣자마자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가 튀어나간다. '내가 내 부모 말도 잘 안듣는 놈이야'란 자랑 아닌 자랑과 함께 말이다.
특히 난 어떤 사안에 대해 누군가가 확신을 가지고 무 자르듯 이야기하는 걸 볼 때마다 '네 용기가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 모르겠던데, 내가 뱁새라 황새를 못 쫓아가서 그러나보다 한다.
꼭 자기계발서 뿐 아니라 철학서를 읽을 때도 가끔 그런 반응이 나온다. 당연히 철학자는 삶을 깊이있게 바라보고 그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지식을 나누게 마련이다. 하지만 난 가끔씩 뿔이 나서 "그게 그렇게 단순합디까?" 라거나 "아직은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란 생각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정작 그 반대로 뒤집어서 내 글을 향해 누군가가 '그게 그렇게 단순해?'라고 물으면 얼굴이 벌게져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거면서도 그런다.)
처음부터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때는 자기계발서만 읽었다. 이미 고등학교때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형광펜 그어가면서, 노트 정리해가면서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나름 읽은 책을 정리하는 법이라든지, 시간 활용법 같은 실용서도 꽤 읽었다 생각하는데 그것도 정작 내가 사는 방식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스티븐 코비가 사업실패로 파산을 하자 사람들이 물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된 거냐고. 그때 그는 "내가 쓴대로 살지 못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자신은 실패했어도 자신의 책은 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실 훈수는 쉬워도 직접 하기는 어렵다. 맞다. 그러니 자기계발서 작가라고 무조건 성공을 해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쓴 사람도 정작 살기 힘들어서 안되는 걸 나는 해보겠노라고 버둥거리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자기계발서를 다 싫어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동안 책 선물을 할 일이 있으면 나도 자기계발서를 사서 건네곤 했다. 그 책은 바로 스티븐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었다. 이 책이 좋은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사막여행이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사막여행을 나서서 조난을 당하거나 실종을 당하는 일만 없으면 이 책은 크게 틀렸다고 공격을 당할 일이 없다.
그리고 그 여섯가지 방법 중 한 가지가 머리가 나쁜 내게도 꽤 깊은 인상을 줘서 나름 내용을 자세히 기억을 하고 있기에 책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가 얼마나 머리가 나쁜고 하니 난 저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 여섯가지인지, 일곱가지인지 늘 헷갈려서 매번 검색을 해야만 한다) 바로 '모래에 갇혔을 때는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야 한다'는 거다. 모래늪에서 공회전이 생겨 차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면 능숙한 운전자들은 타이어의 바람을 어느정도 뺀다고 한다. 그러면 타이어의 표면적이 넓어지며 모래늪을 빠져나올 수가 있게 된다.
확실히 이 말은 내가 모래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릴 때마다 큰 도움을 줬다. 마음에 들어있는 공기를 빼야 한다는 거. 때로는 욕심일 수도 있고, 때로는 꼭 이뤄야한다고 믿었던 목표일 수도 있다. 도리어 모래늪에 빠졌을 때 우리는 공기를 빼기보다는 반대로 공기를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거나 더 채워넣으려고 바둥거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제와의 표면적이 줄어들 따름이다. 그럼 문제에 계속 허우적거리게 된다. (아... 서글픈 내 이야기다.)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 뒷표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인생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를 만들어냈다."
'어이 편집자 양반, 보통 아저씨한테 이 책 장르가 자기계발서냐고 물어보셨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은 어떻게든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들어가야 팔리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예전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때 제목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였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제목이 원제와는 거리가 멀었더라도 훨씬 좋았다. 뭔가 내용이 더 재기발랄하고 장난끼가 넘쳐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나 매번 미뤄둬서 끝내 해결하지 못했었던 의문을 풀려고 검색창을 열었다.
예전엔 분명 '자기개발서'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서'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이게 된 거다. 처음엔 오탈자인가 했다. 그런데 계속 쓰이는 거 보니 내가 '계발'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가보다 하고 살았다. 언제 찾아봐야지 하다가 매번 까먹고 말았는데 그때 '이 참에 찾아보자' 싶어졌다.
계발啓發 [명사]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보니 아주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생각을 넓혀준다는 면에서는 계발서가 맞긴 하네.'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계발서라는 책은 참 좋은 책이지 싶어졌다. 책이 생각을 넓혀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게 내 선입견일지 몰라도 내가 본 자기계발서들은 생각을 깨우고 넓혀주는 게 아니라 자꾸 바꾸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야 해, 이게 맞다니까, 어허 당장 그만두고 내가 추천하는 걸로 갈아끼워." 여전히 '계발'이 아닌 '개발'을 하려고 들지 않나 싶다.
물론 무언가는 오늘을 긍정해서 더 넓혀야 하고 무언가는 확실히 틀린 거니까 바꾸는 게 맞을 텐데, 다 책에 맞춰 바꿔버리면 정말 잘 되는 걸까? '나는 그렇게 해서 잘 됐거든', 이랑 '라떼는 말이야'랑 크게 다른 건 뭘까? 누군가 자기계발서 작가에게 "당신은 잘 됐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난 당신이 아니니까." 라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당신의 코드를 성공에 맞추는 방법'이라는 새로운 책을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하려나.
이래놓고 언젠가 내가 자기계발서를 쓸 지도 모른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그럼 난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일단 내 성격상 말꼬투리 잡히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니까 반박을 당하지 않는 좋은 방법은 스티븐 도나휴처럼 뭔가 결말이 있는 내용을 토대로 글을 쓰는 거다. 그가 사막여행 경험을 기초로 글을 썼듯이 나도 여행이면 어떨까?
친구녀석이 자꾸 자기 사업이 잘 되면 보트를 사겠다는데 보트 여행을 기반으로 써볼까? 음... 그럼 일단 얘 사업이 잘되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 어쩐다지. 그리고 잘되서 보트를 산다고 해도 내가 과연 그걸 타고 바다에 나갈 수 있을까? 나처럼 겁이 많은 놈이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글 하나 쓰는데 목숨을 거는 건 아니지. 그래, 일단 보트는 접기로 하자. 그럼 뭐가 좋을까? 산행, 싫다. 캠핑, 더 싫다.
아... 나란 인간은 진짜 사는데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 책 제목은 '사는데 하나 도움 안되는 나를 짊어지고 사는 법' 정도면 어떨까? 이건 그나마 조금 그럴싸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