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카라멜라이징 하는 오후

소품집 2

by 헤비

난 조금만 검색해도 떡하니 '친일반민족행위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이 설립한, 그래도 나름 유명한 고등학교를 나왔다.


학교에 대해서는 좋을 감정도 나쁠 감정도 없다. 뭐랄까, 서로에게 기대가 없었다고 할까? 난 평범하고 무난한 중위권 학생으로 별다른 특별활동도 하지 않은 채 3년동안 자리만 채웠다. 학교는 그런 나에게 관심이랄 게 없었다. 서로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온 거다. 지금도 가끔 친구들을 통해 학교 이야기를 듣긴 하는데 한참 전에 떠나온 고향동네 이야기 듣는 것처럼 흘려 듣는다. 애초에 내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삶엔 꽤 흔적이 남아있어서 어딜 가서 가끔 동문과 선배분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고, 그게 아니라 지방에 가서도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습니다' 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어? 거기 들어봤어.' 하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조그만 이름값보다 그래도 그 시절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건 마음놓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을 모두 고등학교 때 만났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학교가 내게 큰 도움이 되진 않았어도, 해를 끼친 일도 없다. 전반적으로 개인플레이 중심이었기에 나름 논다 하는 아이들도 다른 학생들을 잘 건드리질 않았다. "담배를 피워도 내 용돈으로 사서 피우면 되지 왜 시끄럽게 일을 키우겠어."가 주된 분위기였다. 3년 내내 학교폭력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다는 얘길 하면 대부분 그게 가능하냐며 재밌어한다. 물론 여기엔 주변 상황에 대한 나의 절대적인 무관심도 크게 한 몫 했다. 몇 년 전 이야기끝에 친구가 "야, 너 걔 왕따였는데 몰랐어?" 하는 데,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무관심한 동조자가 되어버렸다니...)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학교 출신이었다(남고여서 여선생님은 양호선생님 딱 한 분 밖에 없었다). 직급보다 졸업연도가 더 대우를 받아서 최연장자인 윤리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을 데려다 혼냈다는 둥, 교무실 구석에서 영어선생님이 다른 선생님에게 맞았다는 둥 별 희한한 소문이 나돌았지만 진위를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그래도 젊은 선생님의 경우엔 자신을 가르친 선생님이자 대선배님들과 지내는 꼴이었으니 기를 펼 수 없는 건 분명해보였다.


역시 이럴 때 필요한 건 약간의 '똘끼'다. 개중 가장 '똘끼충만'한 분이 바로 문학선생님이셨는데, 그 분 하면 지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겨울에 본관과 제2 수업동을 잇는 구름다리 위에 얼음이 끼면 (학생이 그 짓을 해도 혼을 내거나 말려야 할) 선생님이 그 위를 미끄러져 다니곤 했다는 얘기다. 멀리서 "비켜~!" 소리가 들리면 영락없이 문학선생님이었다는 증언들이 속출했으나 난 실제로 그 장면을 목격하진 못했다.


문학선생님은 여러 어록을 남기셨다. 그 중 가장 '광역어그로'를 끌 수 있는 발언은 아무래도 "여자는 무조건 얼굴이 예뻐야 하고, 무조건 얼굴만 봐라."는 얘기일테다. 성격을 바꾸는데는 돈이 안들지만 얼굴을 고치는 데는 돈이 들고 부작용이 남을 수 있다는 게 주된 취지였다.


아무리 남자들 뿐인 남고였어도 다들 저건 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했고, 문학선생님 본인도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별명이 '야쿠자'였을 만큼 좋은 말로 강인한 인상, 평범한 말로 좀 떨어진 외모를 가지신 분이었기에, 다들 '저건 이뤄지지 않아 비뚤어져버린 욕구를 말로 푸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수업시간에 가족사진을 공개함으로서 선생님은 자신은 뱉은 말을 지키는 사람임을 입증했다. 지금도 부인께서 말이 안나올 정도로 미인이셨다는 사실과 뭔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기가 차 하는 표정의 학생들을 향해 날린 선생님의 미소(라고 하기엔 뭔가 섬뜩했던)를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에게 꽤 큰 영향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건 학기 과제로 독후감 숙제를 내셨을 때의 일이다. 그게 1학기 중간이었는지 기말이었는지 그런 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여하튼 칠판 위에 대여섯 명 정도 작가들의 이름을 쭉 적어내려가셨다. 나머지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난 확실히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 중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너 번째 쯤이었을 거다. 선생님은 이 낯선 이름에 밑줄을 그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얜 야하다."


호르몬의 인도하심이 인생의 유일한 이정표이던 시절이었으니 저 말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이미 다른 이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난 다음날 아침 학교 앞 서점에 들러 하나 남아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을 집어들었다. 안그래도 선생님은 늘 "야한 걸 보더라도 텍스트를 봐야 한다. 동영상 말고, 야설을 보란 말이다."를 외치던 분이었기에, 대체 저 유령이 무슨 일을 벌이는 건지 두근두근해 하며 책장을 펼쳤더랬다. 그런데 이 책은 개미눈꼽만큼도 야하지 않았다.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선생님께 항의했으나, 놀랍게도 이후 난 하루키 '빠돌이'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의 소설이라면 만사 제치고 읽고 있으니 내겐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문학선생님의 어록 중에는 한동안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지내던 말도 있다. '어둠 속에서도 눈을 떠라.'란 말이다. 이게 문학선생님이 만든 말인지, 누가 한 말을 알려주신 것인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둔 터널을 지날 때에도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포기하고 눈을 감아버리면 혹시라도 빛이 지나갔을 때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까."


나중에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프로그램을 가본 일이 있는데, 진행자는 일단 발광물체를 다 사물함에 넣으라고 했다. 그 후 서로 손을 잡고 다른 감각에 의지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때 눈은 감는 게 좋다고 했다. 빛이 없는 곳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뇌가 '눈을 뜨고 있는데도 왜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걸까'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럼증이 몰려온다고. 그제야 난 어둠 속에서는 눈을 감아야 편하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건 어지러움을 버텨내야만 하는 일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어지러움을 버텨내지 못하면 우린 확정적으로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게 나름 꽤 멋진 말로 여겨져서 한동안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 말을 대체한 다른 말이 있다. 이것도 문학선생님의 어록 중에 있다. 당연히 이것도 출처는 불분명하다(곰곰히 생각해보면 다 문학선생님이 고심끝에 만들어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는데, 왜 내심 그렇진 않을거라 단정짓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요리와 사랑에는 시간을 투자하라."


선생님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두 가지가 바로 요리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솔직히 이 말이 와닿진 않았다. 요리도 사랑도 내겐 먼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다 20대 중반 이후로 자취 요리 수준이긴 하지만 요리를 시작했고, 사랑은 그 전부터 제 멋대로 휘몰아쳤다 저 알아서 떠나가곤 했다. 그때에야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몇몇 요리는 직접 한다. 콩나물국, 미역국, 된장국, 계란국 같은 간단한 국은 끓일 줄 알고, 제육볶음이나 오징어 볶음 같은 것도 곧잘 한다. 으깬 두부에다 볶은 돼지고기나 참치를 넣고 부치는 동그랑땡도 하고, 한때는 조카들 먹인다고 돈까스도 집에서 직접 돼지고기를 망치로 두드려가며 만들었다.


요즘 부모님이 자주 해달라고 하시는 건 '맥주수육'이다. 맨 아래 양파를 깔고, 그 위에 삼겹살 덩어리를 올린다. 대파, 통마늘, 통후추, 올리브잎, 청양고추를 넣은 다음 고기가 잠길만큼 맥주를 붓고 센 불에 15분을 끓여 알코올을 날린다(이때 대피해 있지 않으면 취기가 오르는데, 중간중간 불순물이 섞인 거품을 걷어내줘야 해서 머리 아플 각오쯤은 필요하다). 그 다음 불을 중불로 내리고, 된장을 크게 한 스푼 풀고, 날아간 만큼만 맥주를 채운 다음 45분을 더 삶는다. 다 익은 돼지고기는 꺼내서 10분 정도 뜸을 들인 후 썰어먹으면 된다.


그보다 더 자주하는 건 카레다. 카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양파를 얼마나 볶느냐다. 전문용어로 '카라멜라이징'이라고 하는데, 오랜시간동안 양파를 볶으면 내부의 당이 갈색으로 변하며 감칠맛과 단맛이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설탕 몇 스푼 더 쓰는 것과는 다른 고급진 단맛이 나기 때문에 이걸 얼마나 제대로 하는가가 카레를 좌우한다. 말은 고급진데 사실 쌩노가다다. 양파 한 솥을 볶아도 남는 건 한주먹이나 될까 하고 시간은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카레를 만들 때면 스스로 마치 대단한 출정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심호흡을 하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파 까는데 눈물부터 한바탕 쏟아야 하기에 그야말로 피는 몰라도 땀과 눈물로 만드는 카레라 아니할 수 없다.


어차피 식구들끼리 한 끼 먹을 거니까 대충 해도 되지 않나 싶을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다른 일은 잘만 대충하면서 요리만큼은 대충한다는 게 꽤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카라멜라이징은 말그대로 시간과 노동력만 잘 갈아넣으면 배신없는 퀄리티가 나온다. 살면서 이렇게 정직한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카라멜라이징을 하다보면 온 몸에서 양파냄새가 난다. 샤워를 해도 하루는 그러려니 하고 지내야 한다. 고기를 듬뿍 넣고 물 대신 토마토 껍질을 벗겨 넣거나 양배추를 채썰어넣거나 한다. 감자나 당근은 개인 취향으로 잘 쓰지 않지만 있으면 조금은 넣는다. 카레는 주로 일본에서 건너온 고형카레를 쓴다. 약간 매운맛을 골라도 맵지 않다. 애초에 그 나라와 여긴 매움에 대한 기준값이 다르다.


요리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정직한 답이 돌아온다면, 사랑은 아무래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랑의 답은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라서 그럴까? 카레가 보글보글 끓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실 때면 가끔 궁금해진다. 선생님이 어떤 의미로 요리와 사랑을 같은 위치에 두고 시간을 투자하라 하신 걸까? 나로서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아직 내게 둘은 어쩌면 가장 비슷하면서도 가장 대척점에 있는 행위처럼 느껴지곤 한다.


수업 말고는 문학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질문이나 상담을 하러 찾아가던 사이는 아니었으니(심지어 난 문예부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내 존재를 기억하실리가 없다. 이제와 뜬금없이 질문 하나 던지려고 선생님을 찾을 깜냥 같은 건 없다. 결국 혼자 찾아야 할 답이다. 내가 졸업하고 몇년 후 선생님도 학교를 떠나신 걸로 아는데 아마 어디서든 잘 지내시리라 생각한다. 얼음판 위에서 어린 제자들보다 먼저 슬라이딩을 할 수 있는, 그런 분이었으니까.


카레는 하루가 더 지나면 맛있어진다. 카레를 먹을 때면 가끔씩 나도 하루가 지나는만큼 더 맛있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내 안에도 그런 정직함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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