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 Mar 15. 2024

사랑은 이렇게도 적힌다

모니카 마론「슬픈 짐승」

1. 수학엔 참 많은 난제들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그게 왜 '문제'인 건지 깨닫는 것 부터가 문제다. 어떤 문제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데만도 천재적인 수학자들의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니 난제를 풀다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치 험한 빙벽을 오르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버린 산악인들을 보는 심정이 된다. 그들의 도전은 숭고하다. 하지만 나로서는 출발지점부터가 그걸 다 이해하노라 말할 수 없는 경지의 높이에 놓여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무언가 꽤나 막막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난제가 다 풀려도 끝내 풀리지 않을 문제는 수학의 영역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난 믿는다. 바로 '사랑'이다. 물론 이 '사랑'도 내겐 너무 멀리 놓인 문제다. 실제로 더는 풀어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내 입장에서 조금 다행인 것은 이 '사랑'의 문제는 누구나 접근까지는 할 수 있으니 그나마 아는 척 정도는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지독하다. 인생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덤벼보는데, 가끔은 드디어 풀어냈다 외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누구도 답을 증명해내지 못했다.

2. 소설의 주인공은 거의 모든 것이 풍화되어버린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도 잊어버렸다. 스스로가 백살이라 생각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구십 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연인이 언제 떠났는지도 잊어버렸다. 오직 그가 떠난 계절이 가을이란 것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게 삽십 년 전인지, 오십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 그의 이름을 '프란츠'라고 붙인다. 이젠 그의 진짜 이름조차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박물관에서 공룡진열실을 담당했다. 매일 아침이면 그녀는 거대한 브라키오 사우루스를 올려다보며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곤 했다. 그런 그녀 옆에 어느날 갑자기 그가 다가와 말했다.


"아름다운 동물이군요."


그 순간 그녀는 마치 신탁을 받은 것처럼 사랑에 빠졌다. 성경 속 에스겔의 골짜기에서 마른 뼈가 살아나 다시 군대가 되는 것처럼 그의 말 한 마디에 백골과 같았던 그녀의 삶은 심장이 요동치는 산 생명을 얻었다.

3. 이야기의 밀도가 워낙 높다보니 그리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혀지지가 않는다. 꾸덕한 젤라또를 연신 입안에 밀어넣는 기분이다.


당연히 첫 몇 입이야 기가막히다 싶지만 중반을 넘어가면 도리어 구토가 밀려온다. 역해서가 아니다. 그저 너무 진해서다. 너무 향기롭고 아름다운데, 딱딱하지도 않은데, 도저히 쉽사리 삼켜지지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 애초에 그녀는 스스로를 백살이거나 아니면 구십 살일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그를 몇십 년동안이나 기다린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이것조차 의심할 필요는 없고, 작가가 그걸 의도했을리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가 떠나버린 게 정작 어제의 일이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브라키오 사우루스가 아름다운 건 골격 자체의 크기나 모양이나 각도 때문이 아니다. 뼈대만 남은 브라키오 사우루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상상을 통해 핏줄과 근육과 살을 입힌다. 우리가 아름다워하는 건 그 완성된 상상이다.


이 사랑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진 거라곤 다 풍화되어 백골만 남은 그녀의 기억 뿐이다. 이 기억 위에 아무리 살을 입혀본들 그게 온전한 진실일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녀가 하얀 기억 위에다 여러 상념을 덧씌워 재창조한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심지어 그녀 조차도 자신이 재구성한 사랑이 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순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그 사람의 이름마저 잊어버렸으니까.

4. 이소라는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게는 소중해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네게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 노래 「바람이 분다」 중에서


그렇다. 이건 그녀의 사랑이고 그녀의 추억이다. 같은 침대를 쓰고 같은 순간 서로의 몸을 나누며 살을 부벼댔지만 결국 우린 다른 사랑을 한다. 그가 돌아와 같은 사랑이야기를 써도 둘은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녀는 그를 수없는 시간 기다렸노라 말을 하지만 그녀가 기다린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사랑에 들러붙어 불순물이 되어버린 그가 완벽하게 풍화되어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하얀 뼈만 남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그녀는 완벽한 자신의 사랑을 얻는다. 그 백골 위에다 다시 핏줄을 대고 근육을 올리고 살을 붙인다. 그녀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짐승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 짐승은 결국 슬픈 짐승이다.


그것을 알아도, 우린 어쩌면 그 짐승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추억도, 사랑도 다 다르게 적힐 테니까. 그대, 내 사랑의 유일한 기쁨이자, 내 슬픈 사랑의 가장 큰 적. 이런 게 사랑일까? 이런 것도 사랑일까? 진짜 사랑은 풀어낼 수 없는 난제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난제를 풀어보겠노라고 이 끝없는 설산 위로 목숨을 걸고 올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 08화 그대 부끄러움은 별이 되고 나는 부끄러워 눈물 짓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