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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Mar 29. 2024

진실은 나약하기에 애써 그 편을 드는 것이다

조지 레이코프「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1.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를 2007년이나 2008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물론 내 다른 기억들처럼 이것도 틀릴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이 책의 초반부에 나온 한 문장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아무리 나쁜 책이라도 한두 문장 정도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한 문장이 준 '충격'은 비유가 아니라 그아말로 진짜 고통이었다. 읽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허리가 꺾여 잠시 쉬었다 지나갈 수 밖에 없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던지 이제 이 문장은 현대인의 '상식'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듯 사용되고 있다.


「진실과 프레임이 부딪히면, 프레임이 남고 진실이 튕겨져 나간다.」


사실 그때까지 난 '프레임'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당연히 진실에는 '힘'이 있어서, 누구나 진정한 진실 앞에서는 승복하게 될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저 문장 하나를 듣자마자 저것이이말로 '진실'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문장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길질 앞에서 산산조각나버린 진실의 파편을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었으므로.

2. 다시 말하지만 이제 이 책과 '프레임 이론'은 상식에 가깝다. 프레임은 단순히 번역하면 '생각의 틀' 쯤이 될 텐데, 미리 자리잡힌 생각의 틀과 진실이 부딪히면 인간은 진실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진실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 무작정 '진실을 말해주면 상대가 그에 맞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란 생각은 잔혹하게 표현하면 동화 속에 사는 피터팬이나 할 법한 순진한 생각이다. 책은 어떤 대상을 설득하고 싶으면 일단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이 책을 미국 민주당을 위해 썼다. 2004년 판의 부제가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임을 생각하면 더욱 선명하다. 당시 연이어 벌어진 미국 민주당의 선거 패배는 저자에게도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음을 그는 숨기지 않는다. 개정판 표지에도 당당히 적혀져 있지 않은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을 선택하는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에게 속아넘어가지 않을 것 아닌가?

하지만 조지 레이코프는 그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님을, 그리고 자신에겐 프레임전쟁의 상대로 여겨지는 보수주의자들이 이 작업을 얼마나 열심히, 심도있게, 최선의 자원을 투여하여 수행해오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가 예시로 들어보이는 단어는 '세금 구제'다. 세금에다가 '구제'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서, 보수주의자들은 세금은 일종의 곤경이자 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동시에 그 세금에서 시민을 구해주는 보수주의자들을 선이자 '영웅'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 단어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반복사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퍼져나간다.


심지어 진보주의 정치인들과 패널들도 나와서 같은 단어를 반복한다. 물론 그들은 '세금 구제'란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그 단어를 사용했지만, 놀랍게도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일단 코끼리를 떠올려야'만 한다. 이미 보수주의자들이 만든 '세금 구제'란 단어를 입에 올린 순간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책은 프레임의 놀라운 작동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닉슨의 예를 들지만 우리나라에도 가까이에 비슷한 예가 존재하기에 그걸 가지고 설명해보자.


박근혜의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에 나선 주자들 중 보수언론이 주목한 건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였다. 당시 수많은 언론에서 '문재인 대 안철수 1대 1 가상대결 시 안철수 승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사를 쏟아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벌어질 리가 없었다. 아무리 자당출신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상태라 한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대선을 포기한다는 시나리오는 당을 공중분해시키겠다는 뜻이나 나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마치 당장이라도 1대 1 대결이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처럼 기사가 아닌 프레임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프레임을 무력화 시킨 것도 프레임이었다. 한국 정치는 이런 아이러니가 넘쳐나 볼 맛(?)이 있다. 당시 대선후보 토론회에 나선 안철수 후보는 갑자기 문재인 후보에게 이런 질문을 날린다.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조지 레이코프가 한국사람이었으면 그 유명한 닉슨의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대신에 이 장면을 예시로 들었을 테다. 저 말 한 마디가 울려퍼진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진작 끝나있던 선거가 아예 끝나버렸구나.' 저 말이 안철수의 입을 떠난 순간 그는 'MB아바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버렸고, 등장하자마자 지지율 50%를 찍었던 대선후보에서 현재는 계파 수장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채 수도권 유력 정치인 정도로 격하되어버렸다.

3. 기득권 보수주의는 프레임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한국에도 그런 단어가 꽤 있는데 특히 '보수는 경제'란 프레임이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 박정희 시대와, 운좋게도 세계적인 삼저(三低:저금리, 저유가, 저달러)호황을 맞았던 전두환 시절을 거쳐온 사람들에게 있어 이 프레임은 일종의 종교와 같다.


여기에 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 '부자되세요'를 외쳐대며 대권을 잡은 이명박부터, 아버지의 후광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박근혜까지, 한국의 보수는 자신들이 혹여 부패했을지언정 '실력'이 있다고 계속 외쳐왔다. 물론 여러 연구는 이들의 이런 말이 신빙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프레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수치가 자신들의 믿음을 배신할 때, 숫자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날선 적대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여기에 한국 언론은 오래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려왔다. 판매수익이나 시민자본이 아닌, 대부분 재벌, 건설사로부터 받는 광고수익으로 운영되는 언론 종사자 입장에서는 이미 자신들이 기득권의 한 축으로 편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보수주의 프레임을 전파하고 그에 복무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명박의 집권에 가장 큰 도움을 준 프레임은 바로 '세금폭탄'이었다. 당시 종합부동산세를 겨냥한 이 '세금폭탄'이란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2%가 채 되지 않으며 가구로 환산해도 약 6~7%의 가구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란 사실을 알려줘도 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심지어 평생 종부세를 낼 일이 없는, 산간 벽지에 사는 이들마저 이 종합부동산세를 응징하겠다며 투표장으로 달려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현 윤석열 정부 탄생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제공이 된 프레임은 '벼락거지'다.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집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과 아닌 이들의 자산 격차가 갑자기 벌어졌다. 거기에 세계적인 코인 열풍이 불어닥쳤다. 돈은 일을 해서 버는 게 아니라 투자로 버는 것이란 인식이 번져나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게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불만과 '공정함'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다.


물론 벼락거지 프레임을 외쳐대는 언론은 같은 입으로 '영끌해야 막차라도 탈 수 있다'며 부동산 수요 폭증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워가며 마지막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분명 한 신문인데 한 쪽에서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비난하는 기사를, 다른 쪽에서는 불안심리를 자극해 가수요를 실수요로 만들어내는 기사를 쏟아냈다. 나처럼 생각을 편협(?)하게 한 줄기로만 하는 범인凡人은 이 멀티프로세서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반대진영에서는 부동산 같은 경제현안을 해결하기에는 보수 후보가 그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다는 지적을 쏟아냈지만, 그는 '유능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맡기면 된다'는 논리로 이를 비켜나갔다. (예전에 이와 같은 논리를 펼쳤던 대통령 후보가 바로 임기 중 IMF를 불러왔던 김영삼이었다.)

4. 개정판이 되면서 내용이 더 친민주당(미국민주당)적이 된 것 같고 동시에 인지언어학적 내용보다는 정치공학적인 내용이 늘어난 것 같다. (물론 기억에 의한 느낌을 비교하고 있는 거라서 확실치는 않다.)


후반부에는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10년동안 저자가 받아온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나온다. 이미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프레임 전쟁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부분의 질문이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프레임 전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조지 레이코프의 답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지혜'와 '인내'다. 그는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섣부르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로 단정짓는다. 진실과 프레임이 부딪히면 결국 프레임만 남는다고 외쳐놓고 다시 '진실'을 강조하는 셈이다. 대신 진보주의자들은 상대의 프레임을 뒤집을 수 있는 '지혜'와 그 작업에 드는 심적, 물적, 시간적 인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 정치는 무척 역동적이어서 한 달이 마치 몇 년 같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당장 올해 2024년의 3개월 만 해도 그렇다. 1~2월을 장식한 프레임은 '비명횡사'였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작업이 진행되며 이른바 비명계로 분류되었던 중진의원들의 연이은 공천 탈락 소식을 두고 언론이 붙인 프레임이다.


마침 지지율이 요동을 치자 많은 기사들은 이 모든 게 '대표가 사당화를 노리고 쓴 소리를 하던 중진들을 내쫓은 탓'이라고 했다. 극소수의 전문가들은 이대로면 여당이 170석 이상 승리하는 총선 결과를 점치기도 했다.


그 이후 몇 가지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수사대상이었던 전직 장관을 차관보 자리에 임명해서 해외로 출국을 시켰고, 대통령실 수석이 회칼 운운하는 막말을 했고, 대통령이 파 한 단 가격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때마침 친야당 유튜브 방송에서 막대한 물량을 동원한 여론조사를 발표했고, 이후 다른 여론조사 기관들도 갑자기 야당의 총선 압승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여론 변화가 다 그 사이 벌어진 이 몇 가지 사건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게 뭔가 일의 선후관계가 뒤바뀌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지율이 요동치는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원인을 끼워맞추다보니 결론이 이상해져버렸다. 유시민 작가는 '당연히 대통령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선거에서 그 사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 잠깐 튄 몇몇 조사에 처음부터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난 이게 맞는 해석이라고 본다.


게다가 이런 문제도 있다. 당장 장 한번 보기 두려운 게 오늘 내일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면 이슈파이팅은 당연히 '경제'란 링 위에서 벌어져야 하는 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하지만 여당 쪽에서 도통 '경제'를 다루지 않는다. 굳이 범주를 나눠보자면 오로지 '법치' 뿐이다. 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만 쏟아낸다. 백번 양보해서 그 말이 맞다 치더라도 국민들은 또 장을 보러 가야 하고 한숨을 쉬게 되고 결국 여당을 쳐다보게 된다. 어찌되었든 여당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경제란 전선을 방치하고 있는 여당이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보수는 경제'라더니 대체 그 유능한 보수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

5. 여기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나타났다. 바로 '조국혁신당'이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3년은 너무 길다'를 외치고 있다. '탄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 의미는 누가 보아도 자명하다. 쫓아내지 않는다면 적어도 '데드덕'상태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도통 숨길줄 모르고 보여준다.


이게 과연 선거공학적으로 유리한 일인가? 놀랍게도 조지 레이코프는 이게 '맞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려보자.


보수와 공화당은 이상적 신념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즉 자기 지지자들의 프레임을 이용하여 그들을 향해 발언합니다.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후보들은 여론조사에 따라,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중도적'인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전혀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러고도 이깁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해롭습니다. 이는 우선 진보적 지지층을 소외시키고, 이중개념을 소유한 유권자들 내부의 보수주의 모형을 활성화함으로써 도리어 보수에게 보탬이 됩니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중에서


선거가 벌어지면 공화당은 오른쪽 극단에 자릴 잡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꾸 중도를 공략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몰려간다. 이 결과 선거판에는 '보수'적인 프레임만 넘쳐난다. 중도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을 이중적으로 가지고 있으므로, 중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도리어 민주당은 진보적인 아젠다를 계속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중도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인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조국 대표가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지금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놓고 말해 '일천한' 그의 정치경력에 비해 그와 조국혁신당의 행보는 현재까지 기성 정당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언론은 그저 '매운맛'이어서 사람들이 여기에 끌려가고 있다고 평가절하 하지만 이건 단순히 자극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프레임전쟁의 선봉에 서서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 평가하는 게 옳다.


"앞으로 3년 더 이대로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이 프레임은 현실을 '버텨야' 할 것으로, 당연히 문제적 상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문제적 상황의 원인을 현 여권과 대통령으로 직격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조국혁신당을 두고 '극단주의자'라 비난하자,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휴대폰 비밀번호 27자리가 더 극단적'이라고 받아친 건, 만약 조국혁신당과 야권 전체가 총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꽤 오래 회자될 장면이지 싶다. 매 장면마다 그들은 프레임전투에서 승리하고 있다.


여당이 지금이라도 총선을 승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경제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파악과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텐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설령 올바른 진단을 내놓는다 한들 당장 '세수 50조를 펑크내놓고 대통령이 돌아다니며 1000조 공약을 늘어놓는 집단'이란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6. 총선이 약 열흘(이 글을 쓰고 있는 건 3월 25일이니 약 보름이 남았다)앞으로 다가왔는데 사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게 한국 정치판이다. 말그대로 '다이나믹 코리아'다. (금요일 연재분을 미리 쓰고 있는데 그 사이 이 글을 올리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한들 하나 이상할 일이 아니다.)


역동적인 정치는 나 같은 정치덕후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장난감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국민으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정치의 안정은 국민의 안녕에 필수요소이니까.


이 책의 아쉬움은 사실 거기에 있다. 미국 민주당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반대편에 대한 비토정서를 다 감추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공략해야 할 대상은 결국 중도에서 멈춘다. 프레임에 갇힌 상대는 공략대상이 되지 못한다. 조지 W. 부시 이후로 노골화된 공화당의 '갈라치기' 전략을 결국 상대방인 조지 레이코프마저 '고립화'로 맞서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씁쓸하다. 이게 현실이지 싶으면서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 글도 당장 그 '비토정서'를 다 감추진 못했지 싶다. 우린 알고 있다. 정치는 '존중'에서 출발해서 '존중'으로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정치는 누굴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살려고 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우린 이 엄연한 사실을 그저 '알고만' 있는 건 아닐까?


다만 존중의 기본 토대가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소망일까? 프레임만을 선점해서 어떻게든 상대를 '멸절'시키려는 정치는 언제 끝날 수 있을까? 이해 못하는 상대의 옮음이라고 해도 일정 부분은 받아들이고 대화하고 타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당장 타인의 프레임을 뒤집는 일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내 프레임을 점검해보는 것도 꼭 필요한 일 아닐까?


저자는 진실이 나약하다고 하지만, 나는 부디 언젠가는 그 진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우린 나약한 그 '진실'의 편에 애써 서 있기로 하자. 우리가 진실을 놓치지 않는다면 아주 가끔은 코끼리를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야 코끼리를 이해하고, 코끼리도 우리도 어울려 다 같이 살 수 있는, 어떤 동화같은 세상을 향해 한 발이라도 내딛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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