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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Apr 05. 2024

이제 부서진 마음을 열어 길을 찾아야 할 때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1. 처음 제목만 봤을 때 난 이 책이 위로, 특히 정치라는 도구를 통한 어떤 위로를 말하는 책인 줄 알았다. 책을 펼치지도 않았으면서 저 '비통한 자들을 위한'이란 말이 뭔가 위로로 다가왔다. 그래서 알았다. 내 마음이 지금 위로에 절실히 목마르다는 걸.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위로가 너무나 필요하다. 이틀 전 비오던 날 제주 4.3 사건 추념식이 있었다. 며칠 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사건이 터진지 10년이 된다. 다음달이면 내겐 늘 원초적인 공포로 남아있는 5. 18 민주화운동이 있던 시절을 떠올릴테다. 난 여전히 '이태원'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10월 29일, 인간의 몸이 만들어낸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젊음들이 생각나 몸서리가 난다.


이름을 붙인 비극만 비극일까? 수많은 이름없는 비극들이 우리의 현실을 맴돌고 지나간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굶주리고 학대당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당장 발견되지 못하여 이름없이 죽음을 맞이한 고독사 노인이 있다 해도 이젠 놀랄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나름 세계에서 이름 날리며 부유해졌다는데 우리 삶은 여전히 벼랑 끝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원하는 '위로'를 말하고 있진 않다. 더 원론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부제 그대로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를 말하며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강조한다. 너무 딱딱한 내용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난 꽤나 위로를 받은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2.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더 사랑하면 더 상처받기 마련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본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약자가 된다. 인간을 사랑하면 신도 약자가 되고, 인간의 사랑을 필요로 하게 된다. 말도 안되는 역설이지만 이것이 엄연한 사랑의 현실이다.


왜 비통해지는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머리를 털어 잊어버리고 모른 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견디고 삼키고 못 본 체 하는 것으로 넘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며 비통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단 이 책에서 쓰인 이 단어의 뜻부터 분명하게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의 마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아닌 것도 아니다. 저자는 '마음'이란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책의 서두에 밝힌다.


"heart"는 라틴어 cor에서 왔고,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자아의 핵심을 가리킨다. 우리의 모든 앎의 방식―지적·정서적·감각적·직관적·상상적·경험적·관계적·신체적―이 수렴되는 중심부인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 통합되는 곳이고, 지식이 보다 인간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는 장소다.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중에서


마음은 모든 방식의 앎이 총체적으로 구현되는 장소다. 그간 우리는 마음을 배제함으로서 앎을 단편적인 지식으로 대체하여 사용해왔다. 그러다보니 우린 게임하듯이 정치를 수행한다. 적을 공격하고 제거하고 배제하는 것을 승리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애초에 마음으로 정치를 수행한다면 정치에는 '다름'과 그로인한 긴장은 있을 지언정 '적'은 없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알고 현실을 바라보자니 저자는 다시 '비통'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실을 사랑한다. 그리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다름'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대신 그 갈등의 에너지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에너지를 올바르게 전환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 비통함은 도리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3. 우린 피곤한 것을 싫어한다. 단순한 것, 간명한 것을 좋아한다. 책임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주어진 선택지를 들고 가서 어느정도 적당히 만들어진 답을 건네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원래 피곤한 것이다. 원래 시끄러운 것이다. 답을 찾기까지는 지난한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며 양보를 하다보면 마음에 맞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때도 많다.

시끄럽고, 피곤하고, 많은 것을 견뎌내야 하고, 아무리 헤매도 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을 때 당연히 우리는 마음이 부서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 마음의 부서짐은 갈래길을 만나 각각 전혀 다른 두 가지 결론으로 나아간다.


하나는 마음이 말그대로 폭발해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도 상처를 받고 또 남들에게도 상처를 준다.


저자는 말한다. "부서진 마음은 해결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자신과 타인을 계속 괴롭힌다. 마음이 부서지고 흩어질 때, 그것은 폭력의 씨앗을 뿌리고 타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있다.


마음이 부드러울 때, 그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는 더 커다란 능력으로 "깨져 열릴" 수 있다.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아 보다 많은 자비심으로 자신을 열어갈 때, 부서진 마음은 치유의 근원이 되어 고통받는 타자와의 공감을 심화하고, 그들에게 이르는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긴장을 끌어안음으로서 정의와 평화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중에서


이 내용은 상당히 기독교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상처 입은 사람 곁에 다가가 그를 위로하고 치유 할 수 있다'는 '상처입은 치유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저자 파커 J. 파머는 자신이 기독교의 한 분파인 퀘이커교도임을 중반부터 드러내고, 책 내용도 종교적인 색채가 더 짙어진다. 그런 부분이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는 있겠으나, 나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저자의 설명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서 더 좋았다.

4. 제목에 '정치학'이란 단어가 들어 있어서 '정당' 혹은 '선거' 같은 말들로 연결되는 일반적인 정치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겠지만, 인간이란 존재를 말하는 단어 중에 '사회적 동물' 혹은 '정치적 동물'이란 말이 있듯이, 이 책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그만큼 우리 삶에 있어 정치는 무척 가까이에, 여러 크기로 존재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데 무슨 색칠공부 하듯이 대부분의 페이지에 하이라이트 스티커를 붙여야 했다. 너무 많은 문장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정말 이 책의 저자가 미국 사회와 범인류 사회를 사랑하고 아파하듯이 이 세상을 사랑하며 아파하고 있는가?


막상 잘 모르겠다 싶어졌다. 여전히 내 이기적인 욕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갈등을 끌어안기보다 속시원한 마무리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회를 바라보며 어느 정도 답답해하고 있고, 어느 정도 화도 내고 있지만, 정작 진심으로 비통해하고 있는가? 진짜 세상을 바꿔가는 일에 참여할 자세가 있는가? 당장 몇몇 선거 결과가 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나왔던 말은 '이민 가야겠네.'가 아니었던가. 지금은 애써 벗어났다고 하지만, 어릴 적에는 꽤 한성질하는 '국개론자' 아니었던가.


책은 '타인을 미워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단지 갈등이 증폭되는 걸 막자는 게 아니다. 마음에 증오가 차오르면 결과적으로 내 마음은 마음의 본디 기능인 '모든 앎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 저자는 그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고갤 내젓는다.

5.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은 도리어 이렇게 정리하는 게 버겁다. 와 닿은 이야기는 많은데 실력이 모자란 탓도 있고, 하나라도 더 정리해두고 싶지만 그냥 "이 책만큼은 꼭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좋겠다"는 말보다 더 나은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마음의 '부서짐'을 마음의 '열림'으로 연결짓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꽤나 폭력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다시 상처입은 치유자의 이야기를 해보자. 왜 치유자가 상처를 입어야 하는가?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상처입은 사람에게 '치유'와 '승화'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상처입은 사람에게는 다른 형태의 아픔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회복'은 의무가 아니다. 낫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안 낫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치유자는 상처를 입은 자여야 한다. 상처를 입은 손은 상처를 입은 사람의 마음을 몰이해 때문에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부서지고 열려야 한다. 그렇게 더 나은 길을 찾아내야 한다. 잔혹하고 차가운 말이지만 그것이 이 세상에 여전히 아픔과 비통함이 있는 목적일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산을 향해 놓인 돌계단처럼, 거센 여울목 사이사이 놓인 징검다리처럼. 우린 그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https://youtu.be/PBG-wam3FpA?si=sfhx65gD6R638hi-


책을 덮는데 CCM 한 곡이 떠올랐다.


If my heart has grown cold,

There Your love will unfold;

As You open my eyes

to the work of Your hand.

내 마음의 차가움이 커져만 갈 때에

당신의 사랑이 펼쳐질 것입니다.

나의 눈을 열어

당신의 손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십니다.


When I’m blind to my way,

There Your Spirit will pray;

As You open my eyes

to the work of Your hand,

As You open my eyes

to the work of Your hand.

내 길이 캄캄해졌을 때에

성령께서 날 위해 기도해주실 것입니다.

나의 눈을 열어

당신의 손이 하시는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Oceans will part; nations come

At the whisper of Your call.

Hope will rise; glory shown.

In my life, Your will be done.

주님이 속삭임으로 부르시면

큰 바다들이 조각나고 (그 길을 따라)

나라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 때에) 소망이 가득하고 영광이 보여지며

내 삶에선 당신이 하신 일이 이뤄질 것입니다.


Present suffering may pass,

Lord, Your mercy will last;

As You open my eyes

to the work of Your hand.

현재의 고난은 지나가지만

주님, 당신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나의 눈을 열어

당신의 손이 하시는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And my heart will find praise,

I’ll delight in Your way,

As You open my eyes

to the work of Your hand,

As You open my eyes

to the work of Your hand.

내 영이 찬양으로 가득하고

당신의 길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나의 눈을 열어

당신의 손이 하시는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Oceans will part; nations come

At the whisper of Your call.

Hope will rise; glory shown.

In my life, Your will be done.

주님이 속삭임으로 부르시면

큰 바다들이 조각나고 (그 길을 따라)

나라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 때에) 소망이 가득하고 영광이 보여지며

내 삶에선 당신이 하신 일이 이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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