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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Apr 19. 2024

기록의 태도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1, 2」

1.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이다. 번역되어 나온 그의 책은 단편부터 장편까지 거의 다 읽었다고 보면 된다. 책장 하나하나 다 누렇게 떠버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가장 최근작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까지. 에세이는 책장에 꽂혀있지는 않지만 도서관에서 대부분 빌려 읽었다.


그의 책을 읽는 행위는 내게 활자라는 시각 정보를 받아들여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다시 재구성하는 의지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지치고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을 때 난 그의 책을 펼친다. 그러면 온 몸마치 그의 언어를 재생하는 전용 워크맨마냥 익숙하고 편안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말하고 난 듣는다. 때론 흘려들어도 된다. 술자리에서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 계속 그녀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래도 그 술자리는 즐겁게 이어진다.


그러나 유일하게 '이 책만은 읽지 않을 것 같다'고 미리 결정해 둔 게 바로 이 책 「언더그라운드」다. 이 책은 예전 옴진리교가 일으킨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의 피해자들과 옴진리교에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신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2. 옴진리교가 일으킨 테러사건은 무척 끔찍한 일이지만 몇 가지 의미에서 꽤 빛이 바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단 시간이 꽤 흘렀다. 1995년의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니 체감상 확실히 강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게 되는 느낌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 사이 우린 더 끔찍한 일을 수없이 마주했다. 옴진리교가 일으킨 사린가스 테러사건의 사망자는 모두 14명, 중경상자는 6300여명이다. 하지만 이 일로부터 6년 후 2001년에 벌어진 9. 11 테러는 사망자만 무려 2,996명이라고 한다. 부상자도 최소로 잡아도 약 6천여명이라고 하니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당장 피부에 다가오는 건 역시 숫자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2023년 충북 오송의 지하차도를 지나다가 빗물에 갇혀 돌아가신 분들의 숫자도 역시 14명이다. 이 참사의 책임자인 도지사는 이 일을 두고도 "(내가 현장에)일찍 갔어도 바뀔 게 없다." 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나라에 살다보면 도리어 숫자에 민감해지게 된다. 피해자 숫자에 따라 꿈쩍하는 시늉이나마 할지말지 결정하는 인간들이 하도 많으니까.

3. 책을 다루는 글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뭔가 우습지만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도 솔직히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면 펼쳐보지 않았을 책이다. 머릿속을 떠돌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 중에 '사이비종교'와 관련된 부분이 들어있다보니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펼쳐든 것이었으니까.


1부 「언더그라운드」의 테러 피해자들이나, 2부인 「약속된 장소에서」에서 다뤄지는 옴진리교 신자들이나(이들은 사건의 직접 관계자들은 아니다) 뭔가 비슷한듯 하면서도 다른 인간군상을 보여주기에, 창작에 있어서 뭔가 어두운 면이 있는 캐릭터를 연구할 일이 있다 하시는 분이라면 보실 법 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이 책을 읽으실 필요가 있을까. 개인적으론 쉽게 추천을 할 수가 없다.


일단 심정적으로 쉽지가 않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손쉽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너 그냥 화 한 번 세게 내고 때우려는 거지?" 그렇다. 분노는 쉽다. 간편하다. 레토르트 식품처럼 한 3분 데우고 밥 위에 부어 한 끼 때우고 잊어버리면 된다.


옴진리교 신자들의 이야기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보다 더 흥미롭다. 뭔가 신기한 동물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결국 그들도 어떤 아픔을 가진, 분명한 인간이다. 인간을 신기한 동물취급하며 바라보는 나란 놈은 대체 뭔가 싶어진다. 따져놓고보면 이래저래 내 속에 숨어있는 괴물이 얼굴을 들이밀고 씨익 웃고 있는 기분도 든다. 여러모로 유쾌함과는 몇 광년 떨어진 기분에 빠져든다.


국민일보 2017년 4월 2일자 기사 사진

4.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꼭 말하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사건을 집요하게 기록하고자 하는 작가의 방식 그 자체에 대한 경의다. 내게 어떤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모든 글 중에서 가장 덜 팔린게 이 언더그라운드 1, 2편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책 몇 권 덜 판다고 당장 생활고를 겪을 무명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덜 읽힐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쓰는 이에게는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글을 읽다보면 반복적인 이야기가 많고, 때로는 질문만 있고 정답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건의 원흉인 교주나 핵심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한다는 건 여러 의미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범죄자들을 취재 할 수 있었다 한들 그들이 거짓없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리가 있나 싶기도 하고, 가해자에게 마이크를 줘서 변명이나 자기합리화의 기회를 조금이라도 줄 필요 또한 없지 싶다. 하지만 주변만 빙빙 맴돌아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작업은 처음부터 한계가 분명하다. 대신 그 한계를 안고서라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작업 또한 맞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록의 민족이라 부른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놀랍다. 기록해둔 양의 방대함이 문제가 아니다. 선조들이 남긴 기록의 태도가 진짜 놀랍다. 절대 권력자인 왕 조차도 이 기록엔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진정 자신들이 '역사' 앞에 서 있다는 겸허함으로 '오늘'을 기록했다. 실록은 그런 의미에서는 역사서라기보다 종교의 경전에 가깝다. 그들이 믿는 신은 역사이고 동시에 진실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 난 세월호 참사의 그날이 다가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이 세월호와 연관되어 해석될 일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기록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잊고, 덮고, 묻어버리기에는 여전히 많은 아픔들이 남아있다는 걸.


권력은 진실을 바닷속에 묻어버리고 영영 잊어버리라고 한다. 허나 우리는 역사라는 절대자 앞에 오늘의 진실을 애써 그러모아 두 손으로 받쳐들고 겸허하게 나아가야만 한다.


잊으면, 편하다. 가만히 있으면, 편하다. 모른체 하면, 편하다. 눈 감고 고개 돌리면, 편하다. 그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내 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능력이 되지 않아도, 그 어떤 보장이 없어도, 우리가 인간인 이상 감당해내야만 하는 오늘이라는 현실이 있다. 인간을 포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옥상 위로 올라가 몸을 던지는 게 아니다. 오늘 하루를 그저 최선을 다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만 보내는 것, 그게 인간을 포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이 두 권의 「언더그라운드」는 읽지 않아도 좋다. 대신 우리 모두가 매일의 현장에서 각자 써 내려가야 하는 삶의 진실을 기록하는 일만큼은 외면하지 말도록 하자. 그게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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