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편지. 해로운 깨달음에 대하여
아, 난 왜 이런 일에 일희일비 하는가.
저 놈들이 뭐라고
초반 14점을 얻어놓고
에이스 투수라는 놈이
결국 15점을 내주는 꼴을 보며
화를 내고
또 실성한 듯 웃다가
마치 모든 것을 깨달은 양
해탈한 마음이 되어
드디어 글 쓸 생각을 하는가.
난 요즘 글을 쓴다는 핑계로
책도 읽지 않고
브런치에 쓰는 글도 쉬고 있다.
글을 쓴다는 핑계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을 좋은 핑계가 되는데
왜 야구를 안 볼 핑계는 되지 않는가.
아, 저 해로운 공놀이는
왜 매일하고
난 이 매일하는 공놀이 때문에
욕이 늘고
인성이 파탄나고
글쓰기가 밀리고
그러면서도 내일 또 기웃거리는가.
1위는 초반 14점을 내고도 못 이기고
2위는 하루 종일 1안타만 치고 진 날
대체 누가 더 열불을 내야 하는가.
내 평생 야구를 보며
야구 최고의 명언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얼마 전 예능에 나온 유튜버 일주어터님이
"누가 야구를 즐겁게 봐요."
라고 하는 걸 듣고
아, 저것이 진정 명언이구나 했더랬다.
즐겁지도 않은데
대체 야구의 존재목적은 무엇인가?
그래, 역시나 이래놓고 또 내일이면
또 야구를 기웃거릴 내가 문제다.
다 내 잘못이다.
2024.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