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 오늘과 내일, 그 곳과 이 곳
기억력이 좋지 않다보니
오래된 시가
하나의 온전한 형태가 아닌
몇 구절만 남아 떠다닐 때가 많다.
예를들어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같으면
'마음도 한 자리에 못 앉아있는 마음'이나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 같은
말들만 떠다니다
멋대로 계기도 없이
쿵 하고 마음벽에 부딪히곤 한다.
특히 저 시는 왜 그런지
'저것 봐, 저것 봐' 가
늘 귀를 쟁쟁 울려대는데
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하여
난 내가 보았던
타는 하늘의 기억들을 뒤적거려보지만
정확히 그 강가를 거닐어 본 일이 없어
어떤 하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필 또 저 시는 제목부터가
'가을 강'이어서
오늘처럼 빈틈 없는 여름에는
그 정취를 흉내내보려고
에어컨을 가을 온도로 낮춰보아도
도무지 되지 않는 것이라서,
나란 놈은 왜 이 여름에
가을 강 생각을 하고 앉았는 것인지
내 속인데 속을 알 길이 없다.
꼼짝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도무지 답이 없는 저 가을 강.
난 또 글을 쓰며 생각한다.
이야기는
이제 고작 25페이지를 지나가는데,
적어도 200페이지는 지나가야
그나마 글입네 할 텐데,
무슨 레 미제라블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리 고단하고 고민스러운지
과연 이 이야기에
200페이지가 있기는 한지
그때까지 난 이 모니터 앞에
버티고 앉아있을 수는 있는 것인지
그때까지 내가 만날 계절과
그때까지 날 때리고 갈 소리와
그때까지 내가 잃어버려야 할
바람들을 생각한다.
이야기를 쓰는 일이
가을 강을 기다리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나 내리자.
이걸로 오늘 하루 5잔 째,
아직 속은 쓰리지 않다.
2024. 0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