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 Jun 11. 2024

연필과 지우개

일곱 번째 편지. 글을 남긴다는 것에 대하여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사실 어제 새벽 나는 모르는 이의

무신경함에 대하여 글을 썼다.


그의 사소한 무신경함을

어울렁더울렁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한,

너그러운 개국開國의 심정으로

넘어가주려 하였으나

나뿐 아니라 여기저기 무신경한

사람이어서 참을 수 없었노라고

 글을 썼다.


약간은 비웃으며,

저래서 뭘 하겠느냐고

평까지 달아가며.


오늘 난 그 글을 차마 남기지 못하겠다.


나름 웃긴 글이라 생각했는데

남의 실수를

어울렁더울렁 넘어가주려 했다는

알량한 관용까지 붙여가며

더더욱 몰아붙이는 나의 옹졸함은

하루가 지나자

눈뜨고 못 볼 글이 되고 말았다.


글을 남긴다는 것은

정말 마냥 부끄러운 일이다.


또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럽다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부끄러움을 다 모른다는 뜻이다.


하얀 종이를

하얀 지우개로 닦고 또 닦아

결국 뻥 뚫린 구멍이 되었을 때

나오는 부스러기 같은 것으로

글을 쓸 순 없을까?


그건 아무도 읽을 수 없어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텐데.


2024. 06.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