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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Jun 01. 2024

고장

다섯 번째 엽서. 통풍 진단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자고 일어나보니

갑자기 오른 팔꿈치가 부어올라서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그다지 아프진 않고 뻑뻑하기만 해서

자는 동안 누가 밟고 갔나,

내가 잘못하고 산 게 그리 많나

누구의 원한을 샀나 했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 한 내용을 확인하니

통풍이란다.


면역력도 낮고 염증수치도 높아서

한동안은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단다.


워낙 아픈 게 많고 부실한데다

몸뚱이를 자유방임하고 산 인생이라

그냥 또 하나의 병명을

더 달고 사는 것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프다는 악명에 질려

여기저기 기웃거려 나쁜 음식

좋은 음식 찾아 메모도 해본다.


온 세상 역사를 온통 뒤집어 까 찾아보아도

가장 맑았던 시인의 부끄러움만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픈 이유인 줄 알았더니

지금껏 꾸역꾸역 먹어온 그 미끈한 것들이

몸에 가시가 되어 쌓여 바람만 불어도 아프게 한다니

그것은 조금 신기했다.


이제 이 둔하고 비루한 몸뚱이로도

그를 흉내낼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괜찮은 일인지

곤란한 일인지 꽤나 헷갈려

길에서 한동안 방향을 못 잡고 서성였더랬다.


이리 저리 찾아보아도

마땅한 먹을 게 없다.


하나 마음에 드는 건

이제 내 몸뚱아리에 술은

확실하고도 치명적인 독이라

술을 피할 핑계도

술을 마실 핑계도

분명해졌다는 사실이다.


2024. 05. 31.




추신. 내 생활습관이라는 것이 무엇하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라 하나하나 체크해보니 다 바꿀 것 투성이인데 유일하게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게 바로 블랙커피 마시는 습관이었다. 어쩌면 이 것 때문에 잠을 못자네 때문에 속이 쓰리네 장이 뒤집히네 하고 살았지만 이 습관이 아니었으면 한참 전에 통풍을 앓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싶다. 감기만 걸려도 비강의 점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커피를 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통풍이 그보다 더 안좋은 병이라 하는데도 당장 커피 줄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 덜 심각한가보다. 내게 커피가 이 정도였던가 이 참에 다시 확인하게 된다. 모든 고통은 자신도 모르는 우선순위를 확인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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