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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May 25. 2024

뿔난 것

세 번째 엽서. 세상은 마음의 반영

조카들과 보낸 늦은 주말 오후

천진함에 쫓기다

멍하니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올려둔 돌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찌뿌러뜨린 미간에

툭 튀어나온 주둥이며

염소처럼 꼬인 뿔에

당장이라도 자갈을 집어삼키려는

으르렁거리는 이빨의 의지까지.


정황상 어딘가에서 떨어진 조각임에 분명한데

일부러 누군가 빚어둔 것인양하여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들여다볼수록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점점 강화되는

저 기괴한 이미지.


이 그림은 저 돌덩어리 속에서 나온 것일까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혼자 쪼그리고 앉아 섬뜩해하면서도

괜히 탐이나

이 돌덩어리를 들고 갈 것인가

재수없다고 용기를 내어 걷어찰 것인가

고민하다 그냥 돌아섰다.


더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참 홀려있을 듯 하여.


아무 것에나

무릎꿇고 살려달라 빌고 싶은 마음일 때

마침 저런 것이 보인다.


그래 난

그 뒤에 벌어질 일은 감당할 수 없으나

지금은 충분히

저 뿔난 것을 걷어찰 수도 있었다.


내가 애써 지켜야 하는 것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뿔난 것을 걷어찰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나의 뿔난 마음이다.


2024.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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