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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May 21. 2024

파란 하늘 아래서

두 번째 엽서. 다행의 방식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김남조 선생의 '설일'이라는 시가 실려 있었다.


아무리 혼자인 사람에게도

하늘만은 함께 해 준다는 그 끈적함이

덜 자란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에도

조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졌더랬다.


어느새

시를 모르던 시절보다

알고 산 시절이 더 길어졌는데

이제와

정말 오늘도 함께인가 하여 하늘을 보니

파랗게 성질을 낸다.


모든 독毒은 순도가 높아

이물질 덩어리인 내 안에 들어오면

부끄러움 탓에 몸뚱아리가 바스러지기 시작한다는

비온 뒤 하늘은

서울 하늘조차 독성이 높다.


함께하는 하늘이 독성이 높은 건

김영랑 선생처럼 내가

'독을 차고' 다니지 않아서 일까?


은총의 돌층계를

자꾸 거슬러 내려가는 날

독하게 후려칠 각오인 듯 하여

고갤 숙인채

하늘을 피해 지붕 아래로 숨어든다.


영영

지하에서 지하로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면

하늘 몰래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저 하늘은 끈적하게 날 기다리고 있을 터라

어느 날엔가는 분명

하늘 아래 서 있어야만 한다.


휴대폰을 열어 날씨를 확인한다.


언제 다시 비가 온다 하는가?


아, 이번 주는 도통 답이 없구나.


2024.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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