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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May 28. 2024

생의 조각들

네 번째 엽서, 우연에 대하여

사진출처 unsplash.com

솔직히 난 너를 그리워 해 본 일은 없다.


너도 나에 대해서 그러했을 것이다.


너는 20년 만에 모바일메신저에서

내가 맞느냐며

나를 20년 전의 이름으로 불렀다.


나도 잊어버린 그 시절 치기어린 닉네임.


네 안에는

그 시절 내 닉네임이 저장되어 있었고

내 안에는 그 시절

너와 메신저에서 대화하던 말투가 남아

우린 그렇게 20년 만에

20년 전의 목소리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난 네게

서로 삶의 여유가 생기는 날에

꼭 한 번 보자

그 대신 그 전에 가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자 했고

우리는 서로

그 '언젠가'가 꼭 오진 않아도

썩 나쁘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나누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린

그런 사람들이므로.


생의 조각 하나가

모두의 망각 속에 잠겨있다가

햇살이 무던히도 반짝이는 어느 막막한 날에

이렇게도 떠오를 수 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오늘 이 하루도

생의 조각들을 한참 품고 닦아

너의 망각 속으로 던져둔다.


나도 모르게 난 거기에서 너를 따라 가고

너도 모르게 넌 여기에서 나와 함께 간다.


2024.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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