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 Aug 20. 2024

분노의 날

열네 번째 편지. 타오르는 불을 보며


너희의 그 어리석은 행태와

누추한 욕망에 대한

나의 분노는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으며

역사의 흐름에도 합당하고

인류가 정립한 정의의 감각에도 부합한다.


그러므로 난 수없는 순간

정의가 자신의 길을

너희의 피로 닦아내길

원하는 날이 오리라

그리 저주하며

가끔 깨진 보도블록을

집어들어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너희는 강자의 발가락 사이를 핥은 입술로

약자에게 침을 뱉었고

가진 자에게 흔들어댄 엉덩이로

가난한 자를 깔아뭉개려 했으며

넘어진 자의 지갑을 훔치고

무너진 자의 심장을 찌르고

빼앗긴 자의 살을 도려내려 했다.


신을 믿는 자가

어찌 이런 분노를 품는가

라고 할 수 있지만

미친 버스기사가 인도를 질주하려 들 때

그에게서 핸들을 빼앗는 것은

신의 자녀가 해야할 일.


그러나 난 오늘 돼지고기를 썬

칼을 갈아 도로 제자리에 집어넣는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식칼은 결국

내 사랑하는 이들을 먹이기 위해 있는 것.


이렇게 난 또 내일을

너희를 향한 분노에 빼앗기지 않은 채

충실하고 또 견실하게

나와 우리를 지켜내는 시간으로

채워내리라 다시 한번 다짐하며

또 기도한다.


내게 저들을 향한 칼을 주시고

합당한 보복의 날을 주소서,

합당한 보복의 날을 주소서.


그 합당한 보복의 날이 속히

내가 저들을 향해 맨발로 달려갔을 때에

이미 그들이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찔리고

서로의 욕심에 자기들끼리 찢어발기고

제 살을 도려 제 아가리에 처넣기로

그렇게 이미

당신의 보복이 이뤄진 것을 보게 하소서.


그 모든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으로

억울하게 멍들고 피흘린 자들이

위로를 받게 하소서. 아멘.


2024. 08. 20.

이전 13화 옥수수를 먹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