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걷고싶다, 불행이 깨닫게 하는 행복, 소소한 일상
퇴근길 라디오에서 조용필의 <걷고 싶다> 란 노래가 나왔다.
노랫말 하나하나에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 그리움, 그 사무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을 때의 상실감은 내가 그를 또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잔인하게 알려준다.
행복하다는 것은 잘 모르고 살면서 불행은 불에 데인 듯 극명하게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불행을 느끼지 않는 그 시간들만큼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들으면서, 그리고 듣고 난 후 일정 시간동안 '오늘 저녁은 남편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두부부침개를 해야지..' 라 다짐했다.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 밖에서 먹을까?"
0.5초만에 답장 했다.
"콜!"
행복은 뭘 자꾸 잊어버리게 한다..
여자나 남자나 앞머리가 이마를 살짝 가리면 좀 어려 보인다.
문여사도 3년전까지는 앞머리가 짧았다.
그러다 어느날 문여사 눈에 관상법에 관한 한 문장이 딱 들어왔다.
'여자가 이마를 시원하게 내면 남자 하는 일이 잘 풀린다..'
문여사, 처음엔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그 문장이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에 문여사 남편은 다니던 대기업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 두고 나와야 할 시점이어서 불안이 이성을 잠식하기 충분한 시기였다.
그 후부터 앞머리를 자르지 않고 냅둔 탓에 문여사의 이마는 지금까지 시원하게 까져있다.
가끔씩 얼굴책이 보여주는 '과거의 오늘' 사진들을 보면 문여사는 예전의 헤어스타일이 그립다.
더 세련되어 보이는 것 같고, 그 때 나이에 비해 몇 년 더 젊게 보이는 것 같아서 앞머리를 다시 자를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여보, 이제 나도 예전처럼 앞머리를 잘라볼까?
응, 당신 마음대로 해~
내가 전에 말한 적 있지?
여자가 이마를 훤히 내놓으면 남자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나 계속 올빽 스타일 하잖아. 미신인지 알면서도 괜히 신경 쓰여서 안자르고 기른거야.
여보, 요즘 경기 안좋아. 계속 이마 까줘.
이거슨, 대학 나오고 멀쩡한 직장 다니는 두 남녀의 대화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도 인생은 여전히 샤먼의 영역에 상당 부분 의지한다.
인간이니까. 얼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