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향, 오사카 #엄마가 행복하다 #모녀 여행
한국에 돌아와서도 2년간은 일본말을 썼다는데 우리 엄마 일본말 하나도 못하신다.
"죽기 전에 나 살던 동네 한번 가보고 싶다."
"어디? 영도?"
"아니, 오사카 말이다."
사람을 태우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늦여름, 뜬금없이 그리 말씀하셔서 뭐라 대답을 못했다.
그러다 9월에 언니들이랑 밥 먹을 때 또 그러시는 거다.
"요즘, 나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자꾸 꿈에 보이네.. 한번 가보고 싶다.."
큰언니가 명령을 했다.
"미리애 니는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날 잡아라. 금요일 하루 연가 내서 엄마 모시고 오사카에 다녀오자.
언제 엄마 모시고 여행 또 가보겠노. 알았나?"
그렇게 9월 말에 큰언니의 명 받아 11월 둘째 주 주말로 일정 잡고 티켓팅, 숙소 예약까지 다 했다.
우리는 '큰언니가 명령하면 따른다' 시스템이다..
대장 큰언니, 회계 작은언니, 진행 막내는 vvip 송여사 모시고 오사카에 왔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어둑하다.
부산보다 30분 정도 일찍 해가 저문다.
우리는 다이고쿠초에 있는 아담한 아파트를 빌렸다.
좁은 호텔 룸 2개를 빌리느니 작은 아파트를 빌려 네 모녀가 한 공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
간사이 공항역에서 '라피트'라는 특급열차를 타고 종점인 난바역까지 가서 '미도스지'선으로 한 정거장만 가면 '다이고쿠초'에 위치한 아파트가 있다.
라피트를 타고 내리고, 미도스지 센으로 환승을 하는데도 제법 걸어야 했다.
배낭 메고 비행기 타고, 특급열차 타고, 지하철 타고 와도 별로 피곤함이 없다는 83세 울 엄마..
엄마의 연세가 있으니 자연 초긴장한 나는 후다닥 뛰어가서 동선을 파악하고 다시 후다닥 뛰어가서 이 쪽으로 가야 한다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휴.. 나도 쉰이 코앞인데, 두 언니와 엄마 앞에선 짐꾼 이서진 마냥 기꺼이 열혈 가이드 모드로 뛰어다닌다.
그리하여 어렵지 않게 숙소에 왔다.
언니들은 좋다고 아주 만족이다. 작은 언니는 이층 침대가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자기가 위층에서 자겠다고 먼저 올라간다.
언니야, 침대 위칸에서 내가 자봐서 아는데 억수로 불편하데이..
우리 언니,, 자다가 내려와서 방바닥에 요 깔고 잤다.
마침 아파트 1층에는 식당 두 곳이 있다
그중 한 곳의 비주얼이 심상치 않다.
'쯔루동탄'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우동과 전골 요리가 주메뉴이다.
느낌이 확 좋다.
안 되는 일본어로 네 명 앉을자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폭풍 대답을 하는데 나는 젠젠 와까리마셍..이다.
와따시와 니혼고가 헤따데스..에이고데 데끼마스까.
(저는 일본어가 서툴러요, 영어.. 되세요?)
다행히 지배인이 영어를 술술 잘한다. 휴~
맛있는 전골요리를 앞에 두고, 평균 연령 61세인 네 모녀의 첫 배낭여행을 축하하며 건배!
오사카에서의 첫 밤은 '쯔루'라는 말처럼 그렇게 '후루룩' 흐른다.
엄마, 엄마 살던 동네 이름이 뭔지 기억나나? 너무 오래돼서 이자뭈제?
미쿠니.. 미쿠니다.
걸어서 20분쯤 가면 오사카 시내가 나왔었는데..
구글맵에서 미쿠니를 검색해보니 진짜 난바에서 18킬로 정도 떨어진 거리에 미쿠니가 있다.
그럼 우리 오늘은 교토 다녀와서 저녁에 미쿠니 찾아가 보자, 엄마.
아이다, 딸들하고 오사카 다시 온 것만 해도 나는 됐다. 됐고말고. 됐다.
자꾸 됐다고만 하시는 엄마.. 엄마의 '됐다'는 '괜찮다' 보다 '좋다'라는 의미일 터.
엄마, 우리도 이 여행이 무척 됐어. 됐고 말고.
미리 섭외해 둔 오사카 지식 가이드를 만나 그녀의 차를 타고 교토에 간다.
협곡을 쭉 둘러보는 <토로코 열차>를 타려면 대나무 숲을 걸어야 하는데 엄마에겐 무리가 될 것 같아 인력거를 타기로 했다.
엄마 덕에 딸들도 호강이다.
인력거 기사(?)는 앳되고 잘 생긴 총각인데 어찌나 야사시이(친절) 한지..
설렌다, 이 눔..
토롯코를 아라시야마 역에서 타야 하는데 인력거 총각이 엉뚱한 데로 데리고 가는 바람에 우리는 아라시야마 시내를 인력거 타고 쭉 둘러보는 불편한 행운을 거머쥐었다.
내 몸무게가 만만치 않아 총각에게 엄청 미안했는데, (뒤에 따라오는 언니들도 그랬다) 총각은 오히려 자기가 잘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라며 더 미안해한다. 진한 포옹으로 마무리하려다 수갑 찰까 봐 가벼운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언니들과 나는 인력거 두 총각 얘기로 계속 화기애애했다.
50대 아줌마들도 낯설고 잘 생긴 젊은 남자에겐 마음이 간지럽다.
토롯코 열차는 만석이라 갈 때는 다행히 앉아서 갔지만 돌아올 때는 입석으로 와야 했다.
도깨비 탈을 쓴 역무원이 지나가면서 "엄마! 엄마! 여기 ~" 우렁찬 한국말을 하며 엄마 손을 덥석 잡고 다음 칸으로 갔다.
고마운 일본 도깨비님이다.
정원을 쭉 둘러보려면 오르막이 있어서 엄마는 딸들만 올려 보내셨다.
두 언니들과 여행을 오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어쩜 그 긴장감이 좋아, 실수와 실패의 쓴 맛이 좋아, 나는 시간 날 때마다 길 위에 선다.
그런데 이 마약과도 같은 긴장감이 없어도 좋았다.
언니들과도 가끔씩 다녀야겠다.
이런.. 껌딱지 형부들을 깜빡했다.
게다가 두 언니들은 어느새 손자, 손녀가 생겼고, 그들의 딸들이 호출하면 수호천사처럼 날아간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금각사의 사람 물결은 대단했으나 희한하게도 시끄럽지 않았다.
부산 여자들인 우리만 살살 말하면 된다.
금각사를 나와 은각사를 '스치고' 지나가다 '철학의 길'이 길게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약 1.5킬로미터의 산책로인데 흡사 진해의 '여좌천' 같다. 두 곳의 공통점은 말할 것도 없이 수로 양쪽에 쭉 심어진 벚꽃나무이다. 이 곳은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가 걸었다고 해서 철학의 길로 불린다.
걷다 보면 사색이 깊어지기 전에 '요지야'라는 유명한 찻집의 '말차 라테'가 유혹하니 사색은 글렀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에 가기 위해 서두른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따뜻하기까지 하니 사람들이 엄청 많다.
1994년에 친구랑 둘이 왔을 때도 사람들로 가득 찼던 곳인데 22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엄마와 나는 청수사 입구까지만 가기로 하고 언니들과 지식 가이드, 그리고 어쩌다 동행하게 된 미국 총각까지 넷은 청수사의 꼭대기까지 후다닥 다녀오기로 했다. 이미 날은 저물어 그들이 제대로 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평소보다 많이 걸어 다녀서 피곤하기도 하고 시장기도 느끼시는 엄마를 위해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고, 언니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어서 엄마 것만 주문하려고 하니 주인 영감님이 별로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제일 비싼 것을 주문했다. 1,200엔짜리 벤또..
나는.. 내 지갑에 돈이 있는 줄 알았다. 아니 실제 돈이 넉넉하게 있었다.
아라시야마에서 인력거를 타기 전까지 말이다.
인력거 비용을 회계인 작은언니에게 받아서 지불했어야 했는데 내 지갑에서 낸 것을 잊고 있었다.
음식값을 미리 내려고 지갑을 보니..아이구야, 1,100엔 밖에 없다.
카드 되냐고 물으니 할배가 단호하게 데키나이~라고 한다.
갑자기 눈 앞이 노래지고 내 작은 짱구는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후딱 뛰어가서 환전을 하고 오느냐, 100엔을 깎아 달라고 하느냐, 아니면 청수사 내려오는 길목이니 앉아 있다 언니들을 기다릴 것인가..
설상가상 폰의 배터리는 1%밖에 남지 않았다.
문자를 먼저 했다.
"엄마랑 식당에 있는데 100엔이 모자람. 폰 배터리 없음. "
그리고 부리나케 오카네 체인지하고 오겠다며 나갔다. 헐레벌떡 뛰어가며 가게들을 스캔해도 오카네 체인지할 곳이 없었다. 낙담하며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니 큰언니가 엄마 드신 벤또의 삶은 계란을 먹고 있다.
앙.. 다행..
나는 왜 그토록 짱구를 굴렀으며, 왜 그토록 뛰었으며, 식당 할배의 눈치를 그토록 보았던가..
"우리 언니들이거든~"이란 눈빛으로 당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당당하게 화장실을 한번 더 사용하고 나왔다.
오사카로 돌아와 도톤부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분명 한 시간 전에 기요미즈데라 근처에서 벤또를 드셨는데 오늘의 첫 저녁인 것럼 또 맛있게 드신다.
회, 마끼, 옥돔구이, 새조개, 튀김 등을 시켰는데 쪼잔한 일본.. 양이 너무 적다.
일본에 가면 꼭 사야 할 필수 품목들이 제법 있다.
내 경우엔 1/2 화장솜, 휴족시간, 용각산, 구심 이다.
회비에서 돈이 너무 많이 남았다. 언니들과 나는 미친 듯이 쇼핑을 했다.
뭐 그래 봤자, 휴족시간, 용각산, 구심, 화장솜이지만 말이다.
도톤부리에서 아파트까지 택시로 기본요금이라 택시를 탔다.
오사카에 들어와서 헤어진 지식 가이드가 '쯔루동탄'이 워낙 유명하니 식당 이름을 말하면 데려다 줄 거라고 했다.
"다이고쿠초 쯔루동탄 오넹아이시마스~"
택시 기사가 우리를 내려 준 곳은 엉뚱한 쯔루동탄.. 본점이었다.
어리바리 상황 파악을 하고 다시 택시를 탔다.
거기서부터 내 일본어는 포텐 터지기 시작한다.
"와따시다찌 다이코쿠쵸 쯔루동탄에 이끼마스께도 마이니 다꾸시 도라이바상가 치카우 쯔루동탄데 키마씨따!"
(아니, 우리는 다이코쿠에 있는 쯔루동탄에 간다고 했는데 좀 전에 택시기사가 다른 쯔루동탄에 왔어요..)라는 의미로 엉터리 니혼고 드리블..
오, 아부지..아부지 살아계실 때 나한테 한 문장씩 가르쳐 준 일본어를 어찌어찌 조합해서 이렇게 항의도 한데이..
새 다꾸시 도라이바상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이해되었는지 '아하, 와까리마시따~' 하며 우리를 무사히 숙소에 데려다준다.
오사카의 마지막 밤은 또 쯔루동탄의 '쯔루'처럼 또 '후루룩' 지나간다..
오전에 오사카성을 잠시 보고 오후 두 시 비행기로 부산에 돌아간다.
오사카성 근처엔 큰 공원이 있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오사카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인 것 같다.
엄마와 작은 언니도 손을 꼭 잡고 연인처럼 걷는다.
흐뭇한 뒷모습에 뜨거운 감정이 훅 올라온다.
맞잡은 손이 오래도록, 오래도록 가면 좋겠다.
김해공항에 도착하고 입국 수속대로 가는데 엄마가 우리 세 자매를 불러 세우신다.
"내 딸들, 참 고맙다. 엄마를 위해주는 딸들 마음에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 엄마가 너무 행복했다.."
감히 말하건대, 엄마가 느낀 행복함 보다 우리가 받은 행복감이 훨씬 컸다.
우리에겐 일본돈이 아직 남아 있다.
엄마, 언제든 꿈에 일본이 또 나오면 또 말하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