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즈 호텔 #카즈베기의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곳, 에필로그
룸즈 호텔
카즈베기의 자랑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산꼭대기에 위치한 게르게티 교회(공식 명칭은 카즈베기 사메바 교회)라고 할 수 있지만, 여행자에겐 카즈베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Rooms Hotel이다.
룸즈의 외관은 화려하거나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칙칙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러나 일단 나무문을 열고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곳은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며 최소한의 장식이 주는 편안함을 추구한다.
심신이 지친, 또는 자연을 사랑하는, 그도 아니면 그저 복잡한 상념들을 잠시나마 던지고 자연을 벗 삼아 책을 읽으러 오는 트래블러들에게 최소한의 사치를 허락하는 곳이다.
조지아 현지 물가 대비 이 곳은 분명 비싸다.
그러나 여행자들 자국 물가에 비해 룸즈의 서비스와 경치와 사려 깊은 인테리어는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소박하다 못해 성의가 없어 보이는 호텔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오면 이 곳이 호텔 로비인지 도서관인지 알 수가 없다.
곳곳에 책꽂이가 있고, 편안하게 누워도 좋을 만큼 긴 카우치들이 소박한 차림의 여행객들을 반긴다.
아무리 특급 호텔이라도 손님을 위해 이 정도의 편안하고 다양한 카우치들을 준비한 호텔이 또 있을까 의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룸즈 호텔의 자랑은 바로 모든 것이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호텔 룸의 바닥, 화장실 바닥, 책상, 침대, 램프 그리고 문까지 전부 나무다.
이는 며칠만이라도 맨발로 나무를 밟거나 앉거나 눕거나 보거나 하며 심신을 제대로 평온하게 만들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룸즈 또 하나의 자랑은 바로 로비 테라스이다.
로비 테라스 또한 모든 것이 다 나무다.
라탄 의자도 스케일이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 하루 종일 이 의자에 앉아서 눈 앞의 자연을 느끼고, 자연 속에서 숨 쉬고, 책 읽고, 잠들고.. 카즈베기산을 올라가기 위해 이 곳에 왔다 해도 쌕쌕 거리며 산을 오른 당신, 하루 정도는 호텔 안에서 푹 쉬어도 좋을 듯하다. 굳이 산을 오르지 않아도 나는 이미 깊은 산 중에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저 릴랙스& 릴랙스만 하여도 나는 이미 등산한 것이다.
하루는 게르게티 성당을 오르고 하루는 그저 로비의 라탄 체어에 다리 뻗고 앉거나 누워 자연만 감상해도 좋다.
단, 고산지대라 추우니 꼭 담요를 달라고 해야 한다.
이 곳은 프레임에 갇힌 실내이기보다 자연과 같이 호흡하는 곳이다.
여기선 배낭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특급 호텔의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룸즈엔 도시의 호텔이 가질 수 없는 자연의 맛이 있다.
자연 속에서 방목하는 소들이 주는 우유가 맛있고, 그 우유로 만든 요거트가 맛있고, 피자가 맛있고, 돼지고기가 맛있고, 와인이 맛있고, 커피가 맛있고, 농약 살 돈이 없어 유기농으로 키우는 각종 채소와 과일이 맛있고, 꿀벌들이 부지런히 만든 꿀은 특히 더 맛있다.
조식 메뉴에 있던 꿀의 아름다운 때깔을 잊을 수가 없다.
백 마디의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혹시 조지아에 여행 갈 계획이라면 카즈베기는 꼭 놓치지 말고 가보기를 권한다.
카즈베기에 간다면 룸즈 호텔의 숙박을 나에게 선물해보길..
나에게 선물한 그곳에선 이런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냥 즐길 수 있다.
룸즈를 나와 마을 산책을 할 때 만나는 말 떼, 소떼, 돼지떼, 닭 등은 카즈베기를 홍보하는 알바 애니멀 같다.
눈물 쏙 빠지게 정겨운 모습이다.
아, 해 뜰 때 침실에선 마법이 일어난다.
황금으로 변하는 카즈베기 산의 모습은 진정 감동이다.
카즈베기로 가던 날, 3000 고지가 넘는 산을 넘어가니 가슴이 조여 오고, 머리도 마구 아프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제니에게,
'제니는 숨이 안차요? 저는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네요.'
'어떡해요, 미리애. 그러면 큰 일인데..'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제니.. 그녀의 우정은 핫팩처럼 따뜻하다.
'청심환이라도 먹어야겠어요.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하나 갖고 왔거든요.'
'그래요, 어서 먹어요. 여기서 아프면 큰 일이다. 내가 까줄까?'
손까지 덜덜 떨며 청심환을 꺼내 먹으려는 찰나,
'근데.. 미리애, 나도 반만.. 줘요..'
헉, 제니도 숨이 차고 두통이 시작되었으면서 아프다 말을 안 하고 내 걱정만 하고 있다가 갑자기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작은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 바보야, 아프면 아프다고 왜 말을 못 해!'
우리는 청심환을 사이좋게 반씩 (사실은 내가 좀 더 많이) 나눠 먹고 무사히 카즈베기에 도착해서 점프샷도 찍고 탄성도 자아내며 즐거운 이틀을 보냈다.
우정은 청심환을 타고~
샤틸리 가는 길은 들은 대로 험난했다.
아름다운 야생화와 스펙터클한 산 능선을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져 탄성을 자아내다가도 절벽길을 지날 때는 오금이 저렸다.
샤틸리 가는 길에 폐허가 된 캄캄한 건물에 차를 세운 데이비드 님이 우리에게 요구한 건 딱 한 가지..
자연인으로 돌아가라.. 그 첫 번째 미션은 자연에 영역표시 하기였다.
더 가면 영역표시할 수 없으니까 건물 뒤에 가서 얼른 영역표시를 하라..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긴 했다.
자연인이었던 적이 생애 한 번도 없었건만, 자연회귀 본능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건물 뒤로 가긴 갔는데.. 뇌에서 도통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자, 바다에 있다고 생각하고 어서.. 시원하게.. 파도소리가 들린다~들린다~'
자기 최면을 걸어도 이성과 습관을 담당하는 뇌는 배설 본능을 허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귀신 나올 것 같은, 아니 쥐가 득실거릴 것 같은 폐허로 들어갔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들어가서야 내 뇌는 나를 놓아준다.
그러다 샤틸리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오는 길에 또 신호가 왔다.
참으려고 했지만 돌아가는 길도 험난한 긴 여정임을 알기에 과감하게 차를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폐허가 되어 한쪽 벽면만 남은 곳을 발견한 직후였다.
그래, 저기 벽 뒤로 돌아가면 되겠다..
달봉님이 먼저 씩씩하게 다녀오더니 안심하고 다녀오란다.
그녀를.. 믿었다.
그런데 워낙 꼬불꼬불한 길이어서 벽 뒤로 들어가 앉았는데도 저 쪽 돌아오는 길에선 내가 훤히 다 보일 것 같았다.
비록 지나가는 차는 없지만 혹시나 목동이랑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쩌지?
좀 더 벽 쪽으로 올라가야지..
그렇게 조심스럽게 볼 일을 보려 앉았는데 이번엔 높게 자란 들풀들이 너무 따가웠다.
이건 선 것도 아니여, 앉은 것도 아니여..
어정쩡한 자세로 있으면서 뇌가 명령을 내리길 기다렸다.
조금씩 조금씩 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연인이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풀에서 뭐가 튀어 올라온다.
으아악..
개구리가 비 오는 줄 알았는지 신나게 튀어 올라온 것이다.
너무 놀라 멈춰버린 빗물..
눈물이 나올 뻔했다.
오줌 한번 누기가 이렇게 힘드나..
입에서 나오는 욕지기를 꾸역꾸역 삼키며 일어나는데 내 빗물에.. 미끄러졌다. 절벽은 한참 저기지만 죽을 것 같았다.
아아악!!!! shit, shit, shi..... t!!!
겨우 겨우 올라와서 절뚝거리며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미리애,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어디까지 갔었노?'
'풀이 따가웠어요. 개구리가 나왔죠. 놀라서 미끄러졌어요..'
그 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쪽 팔려서.. s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