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우연히 마주한다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맡은 향수 냄새처럼

by Miriam
한때 작가를 꿈꾼 적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말에 꿈을 내려놓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시들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들어버렸다. 더 이상 시를 쓸 이유가 없었고, 쓰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시를 쓰는 시험은 없었으니까.


남들처럼 입시 준비를 하고, 시험을 위한 시를 접하게 되면서 나 역시 시를 싫어하게 되었다. 감상이 아닌 해석이 필요한 시들. 그저 어려운 글. 쉽게 전할 수 있는 말을 이리 꼬고 저리 꼬아 알아듣기 힘든 말들.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여 누구는 독립을, 누구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노래. 작가의 생을 반영하여 누구는 잃어버린 가족을, 누구는 북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 시들 속에서 ‘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내 삶에서 시는 사라졌다.



시는 우연히 마주한다

영원히 마주할 일 없을 것 같던 시는 아주 우연한 기회로 내게 돌아왔다. 연예인이 고등학교로 돌아가 그 생활을 담은 TV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시를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시는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었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장면에 등장한 연예인은 두 아이의 어머니였는데,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학생들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동시에 마주한 기분이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과 시를 느끼는 사람. 시를 읽는 사람과 자신이 시가 되는 사람. 내가 잊어버렸던 시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의 시를 기다리며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또 내가 그랬듯이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분들에게는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억지로 읽으려 하지 말고, 해석하려고 하지 마라.

우연히 시를 마주하고, 나의 시를 찾아라."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시가 있다. 시가 어려운 사람들은 이해하기 쉬운 시를 읽으면 된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이라고 한들, 어느 공모전의 수상작이라고 한들 나에게 와 닿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전문가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그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아가 감정에 작은 물결을 만들 수 있다면, 단 한 문장이라도 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자신의 상황이 더해지면 '나의 시'가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쉬운 시를 좋아하고, 나만의 기준을 가진 보통의 사람이다. 놀라운 점은 쉬운 시만 골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꽤나 다양한 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할 '나의 시'를 기다리는 중이다. 참고로 내가 처음 만난 '나의 시'는 나태주 시인의 "시"라는 시이다.



나태주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시를 뿌린다
내가 만약 시인이어서 그대의
따스한 빛이 되어주고
한 방울 눈물도 흘려주면
그대 가슴에도 꽃이 피리라



다시 시를 쓰기로 했다. 물론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시는 씨앗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열심히 씨를 뿌릴 뿐이다. 나의 글이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그 사람을 젖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마음에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면 나는 비로소 그 사람의 시인이 될 것이다. 시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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