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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Oct 17.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14

*오늘은 ㅡ 반성문 ㅠ


나의 시어머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

"야!!  나는 뒤끝은 없다. "


이 말씀 진짜였다.

울 시어머니는 뒤끝이 없으셨다.

분가하고 우리 집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다.

시댁과 우리 집은 걸어서 5분 정도.

더구나 어머니 시장 가는 길에 우리 집이 있는데도 오며 가며 들른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아니, 딱 한번.

지금은 누구보다 신실한 교회 장로님이시지만 그 당시는 술, 담배 하는 (날라리..죄송합니다. 아버님..헤;;^^) 성도였던 아버님의 주사는 사람 붙잡고 밤새 이야기하기.

평소에는 말씀이 거의 없으시고 그나마도 어머니의 기에 눌려 그림자처럼 행동하시던 시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어머니를 붙잡고 밤새 잠을 안 재우고 그동안 쌓였던 얘기들을 하셨다.

 어느 날 아버님이 술을 고 오시자

밤새 시달릴 걸 걱정하신 어머님이 조카애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피난 오신 거다.


오죽하면 오셨을까?

우리 집 단칸방인 거 다 아시는데.

어른 대여섯 명이 잘 수 있는 크기여서 그다지 좁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아들 부부 옆에서 자는 건 아니라시며 굳이 한 명 누울까 말까 한 주방 싱크대 앞에서 주무신다고 하셨다.


안된다고 안된다고 했는데도, 어머니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시며 고집을 꺾지 않으셔서 결국 방에서는 우리 부부와 딸, 조카애가 자고 어머니는 싱크대 앞에서 주무셨다.

그러곤 식사하고 가시라는 나의 (인사치레) 얘기를  마다하시고 아침 일찍 조카애를 데리고  집으로 가셨다.

해장국 끓여야 한다고 하시며.

-예의를 아시는 우리 어머니..ㅎ

맺고 끊음 확실한 우리 어머니..ㅎㅎ-




이듬해, 마침내 대망의 21세기, 2000년이 되었다.

아기는 두 살이 되었고, 나는 학습지 교사를 하는 남편이 가지고 오는 학생들 교재를 채점하며 남편을 도와주고 있었다.


별거 아닌 채점인 거 같지만 하루에 꼬박 서너 시간이 소요되었다.

첫아이를 키우는 초보 맘인 나는 어떻게 아기를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눕고 기고 막 걸음마를 하려고  하는 아가들에게는 엄마들이 말을 많이 걸어주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몰랐다.

평소에도 그다지 수다쟁이가 아니니 그저 평소처럼 행동했다.

집안일 외에도 서너 시간 식탁에 앉아 채점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가랑 잘 놀아주지를 못했다.


무엇보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기가 깨어있을 때는  아기랑 충분한 상호작용을 하고 아기가 잘 때 채점을 하던지 집안일을 하던지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기에게 티브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돌도 안된 아기에게..ㅠ) 아기가 낮잠을 자면 나도 옆에서 자거나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며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아... 정말 많이 반성한다..ㅠㅠ


첫아이라 뭘 몰랐다고 하기에는 서툰 게 너무 많았고, 다른  말로 하면 아직은 아기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걸, 내가 해야 하는 걸 포기해야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아기와 함께하는 삶은 내가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저절로 알아지는 게 아니었다.

노력하고 공부하고...

내가 살아온 방식을, 내가 타고난 기질까지도 통째로 바꿔야 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그땐 하지 못했다.


미숙한 엄마... 알아야 할 것이 더 많고, 나도 또한 자라 가야 하는 엄마였다.


딸아.. 미안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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