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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Oct 20.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15

*오늘도 반성문 2


2000년이 되고 조카딸은 7살이 되었다.

처음 남편을 만나고 너무 너무 이쁜 조카딸이 있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 얼굴을 보고(여보 미안해!!!!^^) 속으 설마, 뭐 그렇게 이쁠라고 ...했었다.

그런데 양가 상견례 자리에 시어머님이 데리고 나온 조카아이는 너무 예뻤다.

쌍거풀 없는 동그란 눈에 뽀얀 피부.

무엇보다 오똑한 코가 너~~무 이쁜... 도도하면서도 깜찍하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두돌 되기 전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 아이는 젊은 여자인 내가 작은 엄마로 한집에서 살게되자 너무 좋아했다.

아무래도 할머니보다는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내가 더 좋았을 일.

남편도 조카아이를 너무 사랑했고 나도 예쁘게 생긴 조카아이를 이뻐했다.

남편은 급기야 우리가 분가하게 되면 조카아이를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시아주버니는 이혼의 여파인지 본성인지 정착을 못하고 방황중이셨다)

나도 좋다고 했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그냥 평범한 부모처럼 보이는 우리 집에서 자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한 사람으로 살기를  추구하는, 얼핏 보면 착한 사람인 것 같은  나는 잘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댁에 같이 살때 다행히 시어머니는 나에게 작은 엄마로서 과한 걸 요구하지않으셨다.

그 아이를 챙기는 1순위는 당연히 본인이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아침에 머리를 빗겨준다거나 어린이집에 엄마인척 하며(주위 아이들은 그렇게 보았을 거고 그걸 굳이 정정하지 않는 수준) 데려다 주기, 밥 먹이기(밥을 징글징글 하게 안먹음) 뭐 그런, 같이 살면 당연히 해야할 일들을 했다.

그런 자잘한 일 외에 그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시부모님이 했다.

어린이집 교육비를 낸다거나, 옷을 사준다거나, 예방접종을 한다거나... 어머니는 친구분들을 만나러갈 때도 잘 데리고 가셨다.

우리에게 주말이니 애데리고 놀이 공원이라도 다녀오거라, 내가 맨날 데리고 다니기 힘드니 너 친구 만날 때도 한번씩 데리고 가,

뭐 이런 요구는  한번도 없으셨다.

내가 같이 살고 부터 그 어린 아이는 우리 부부와 자고 싶은 티를 좀 내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시어머님은 저녁 식사가 딱 끝나면 조카애를 데리고 "이제 잔다. 애가 들어갈 수도 있으니 문 잠그고 자라" 하시며 안방으로 들어가시곤 왠만해서 거실로 나오지 않으셨다.-다시 한 번, 맺고 끊음 확실하신 우리 어머니!!^^

비록 시댁 현관 옆 문간방에 살았지만 어머니는 신혼 부부로서의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보호해 주셨다.

분가를 할 때 데리고 나오지 않음은 물론이다.

어머님이 절대 그렇게는 안하신다고.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조카애가 7살이 되어 보살피기 더 쉽겠거니 하셔서 그런지 나에게 부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외출을 하실 때면 오후 하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으로 가서 조카애를 데려다가 저녁을 먹여달라고 하셨다.

학습지를 채점하다가 시간이 되면 3층에서 유모차를 내려 아가와 함께 조카애를 데리러 갔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여야 하는데 이 아이는 정말 정말 밥을 안먹는 아이.

밥 한숟가락 입에 들어가면 몇십 분 쯤  물고있는 아이였다.

밥 대여섯 숟가락 정도 먹이기가 1시간 쯤 걸리는.

시어머니가 저녁을 먹여놓으라 했기 때문에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밥을 먹여야 했다.

이 아이가 밥을 잘 먹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시어머니의 하달을 받은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는 "얘가 너무 안먹으려해서 제대로 못먹였어요. 아시잖아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요령껏 반그릇 이라도 먹여야 했다.

만약 못먹이면 "니 애라도 그렇게 굶길래? 니 애라면 어떻게든 먹였겠지. 니 애 아니라고 대충 먹이는 거냐?" 이런 말씀을 하실까봐(안하셨다. 또 나혼자 전전긍긍하는 상황. 눈치보며) 이 반찬, 저 반찬을 권하며 1시간도 넘게 아이랑 씨름을 하는 날이 많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애라면 "그래. 배고프면 니 배고프지 내 배고프냐? " 하며 습관을 잡았을 텐데 조카애에게는 그렇게 못했다.

그렇게 하면 흡사 동화속 나쁜 계모처럼 비쳐질까 염려했다.

아이와 밥 때문에 씨름하다보니 아이가 점정 이뻐보이지 않았다.

그냥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느껴졌다.


조카 아이가 오면 내 딸에게 다정한 말 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아이구, 우리 아가 이쁘다~이쁘다~"하면 그 아이가 너무 부러워 할까봐, 엄마 보고프다 할까봐 그렇게 할수가 없었.

그렇다고 내 아이에게 하는것처럼 자연스러운 애정이 그 아이에게 가지도 않았다.

그 아이로 인해 지쳐 내 마음이  닫혀버렸다.

둘 모두에게 공평하게 해 줄수  없으니 내 딸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그러자니  맘껏 딸에게 사랑 표현을 못하는 그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내 핏줄이 안섞인 시조카지만 어린앤데... 엄마랑 떨어져 사는 불쌍한 아이인데... 그런 아이를 이렇게 밖에 못 대하나,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며 좌절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은 정말로 어떤  일은 직접 겪기 전까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행동할 지 전혀 모르는 부분이 있다.


나에겐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대하는 일이 그랬다.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며 동정심이 많은 성격이라 생각했고 그런 나란 사람은 어린 아이라는 힘없는 존재에게는 무한 사랑을 주는 천사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나 자신을.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아이에게도 짜증이 너무 나며  내 뜻대로 하지 않는 아이에게 분노가 일기도 했다. -이건 조키애 에게 뿐 아니라 내 아이 에게도 그랬다.

나란 인간의 실체를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아..나는  절대 천사가 아니며 될수도 없는 인간이구나.

나란 인간은 입양같은 건 절대 하면 안되겠다, 생각하며 나 자신에 대해 많이도 실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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