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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Jan 23. 2021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20

*쉰에 시작했는데, 나는 어느새 쉰 하나.

오늘부턴 아메리칸 서타일로 간다.

다시 쉰..ㅎㅎㅎ


결별.

찢어지기로 했다.

각자 도생.


A선생님이 먼저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작은 학원을 차렸다.

그의 부인과 함께.

학생들이 쏠쏠히 모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B선생님은 그저 퇴사를 했다.

당분간은 가정에서 아이들 육아를 책임진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이 있는데...뭐 그래도 되지.

수긍이 갔다.


C선생님은 그 자리에 남았다.

모두에게 초기 투자금을 돌려준 후.

유능한 수학과외쌤인 그의 부인이 합류했다.

이번에도 학원이 쏠쏠히 굴러간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우리는?


나는 꿈을 꿨다.

서울 변두리일 지언정 서울은 서울.

아파트로 둘러싸인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드디어 실현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예 지방으로는 못갈지언정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시댁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 몫. ㅋ 당시 차로 5분 거리)

자연이 가까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었다.

칠천오백 전세에 네식구가 살고있는 19평 아파트는 그즈음(2009년) 전세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었다.


6살이 된 둘째딸이

"엄마, 큰 집에서 살고싶어!!!"

라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11살(5학년) 지 언니는 여태껏 이런 소리 한번도 안했는데...얘는 뭐람? 잉? 하면서도 어서어서 그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주말마다 집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첨엔 혹시나(적당한 집이 있을까)... 하고(막상 서울을 떠날까? 하니 그것도 패잔병이 된 듯 한 느낌이 들어)

이웃 동네인 우이동으로 갔다.

북한산 밑자락 동네인 그곳은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동네.

아파트가 별로 없고 높이도 높지 않았다.

(산의 경관을 가리지 않기 위해 그렇다고 하던데...맞나?)

만약 이곳에 적당한 집이 있으면 이곳에서 살아야겠다.

아니 살게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대학교도 하나 있고 드넓은 솔밭 공원에 몇발짝만 걸어가면 북한산 초입.

너무너무 살고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도 이미 우리는 재택 공부방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집도 얻고 사업장도 차리자.

일타이피. 왜?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아파트 위주로 알아보는데, 일단 그 동네는 아파트가 몇개 없었고 가격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두배쯤?(살림과 사업장을 겸해야했기에 삼십평대는 되야한다고 판단했다)


언감생심이었다(라고 생각했다).

 간땡이 작은 우리 부부는 대출을 한다고 해도 많은 액수는 겁이 났다. 지금 남편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알수 없는 모험은 하고싶지 않았고 할 배짱도 없었다.


사실, 요즈음 펄쩍펄쩍 뛰는 서울 집값을 보노라면 그때 어떻게든  서울에 남아있어야 했나 생각할 때도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으니..그러나 이것은 요즘에와서야 그것도 가끔 드는 생각. 난 대체로 이 소박한 도시에서의 번잡스럽지않은 삶에 만족한다.

누군가, 그러니 돈을 못버는 거예요. 부동산이고 뭐고 재테크에 관심을 가져야 돈을 모으지요...라고 한다고 한들

...그래요...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에요. 과하게 욕심을 부리고싶지도 않고 영끌이니 뭐니 하며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에, 주식 그래프 상하 곡선에 정신을 온통 뺏기며 살고싶지 않아요. 내 삶을 채우는건 그런 것만 있는건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하니 태클거는 코멘트는 자제바랍니다...ㅎㅎㅎ

 

나의 로망 우이동을 버린 나는 이번엔 도봉산 아래 동네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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