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아찔하고도 아름다운 게임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종 장치가 있다고 한다.
차에 달린 자율주행 모드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심장 박동, 호흡, 소화 같은 것들을 스스로 조절하는 기능!
교감신경은 액셀 페달이다.
긴장하거나 움직여야 할 때 몸을 앞으로 내보내고 에너지를 끌어 모아 달리게 만든다.
반대로 부교감 신경은 브레이크 페달이다.
쉬어야 할 때 몸을 멈추고 회복하게 해 주며 긴장을 풀게 만들어 준다.
교감신경이나 부교감신경 어느 하나만의 문제라기보다
두 신경의 균형이 어긋날 때 증상이 나타난다.
한쪽이 과도하게 뛰거나 반대로 눌려버리면서 몸과 마음의 리듬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내 몸에서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부교감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몸은 쉴 틈 없이 달리고 마음은 지치고 에너지는 소진되는데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마치 긴장과 불안이 연료가 되어 끊임없이 달리는 차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달까.
그때 깨달았다. 몸이 쉬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게 아니라 조종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것을.
회복은 차를 멈추고 브레이크를 고치는 과정과 같았다. 조금씩, 천천히, 나를 이해하며 멈추는 연습을 하는 것!
자율 신경이 보내온 회복의 보고서
스스로도 좋아짐을 느끼며 주책을 떨었다.
2024년 7월 18일 목요일
결과를 칭찬하기보다는, 내가 지나온 고통의 길 자체를 존중해주셨다.
내가 극복했다는 평가보다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감정을 다스리는 나의 태도를 더 귀하게 여겨주셨기에 자율성과 평온을 듬뿍 얻었다.
작은 긍정이지만 체온이라는 객관적 지표 속에서 내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함께 보시며 희망을 나누셨다.
정신과 감정까지 포함해 나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 덕분에 나 스스로를 조금 더 가까이 믿게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숙제 보고를 위해 톡을 할 때도, 진료실에서도, 치료실에서도 늘 말씀하셨다.
“이만큼이나 왔어요. 여기까지 왔어요, 수고하셨어요.”
그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건드렸다. 내가 견뎌낸 시간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나도 되돌려주고 싶어졌다.
“저도 원장님 덕분에 좋아졌어요.”
자꾸자꾸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다.
웃긴 건 좋아졌다는 것을 꼭 확인시키고 싶어 하는 내가 더 집요해 보였다는 거다.
마치 칭찬받은 아이가 잘했다는 말을 놓치기 싫어 자꾸 손을 흔드는 것처럼.
어쩌면 고마움의 표현이라기보다 내가 잘 살아내고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계속 증명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원장님 말은 내게 위로였지만 동시에 나를 자꾸 비추는 거울 같았다. 그 거울 앞에서 나는 내가 괜찮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고 있었다.
노력과 과정을 보듬어주는 따뜻한 피드백이라서.
그런 말을 들으면 안심되고 힘이 나니까 나도 그 감정을 되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이만큼 좋아졌어요”라고 전하고 싶은 마음은 치료 과정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환자는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라 의사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내가 느낀 감사와 행복을 꼭 표현하고 싶어졌다.
원장님의 격려가 나에게는 회복의 힘이자 안전한 울타리였어서 나도 그 울타리를 타고 진심을 나누고 싶었다.
사실, 의사가 짚어주지 않아도 환자는 몸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함께 동행하는 의사가 한 번 더 짚어줄 때는 마치 내 고생을 알아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네가 느낀 게 맞아요. 정말 좋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확인해 주는 그 한마디에 불안이 풀려버린다.
스스로의 회복을 느끼고 있었는데 전문가가 다시 한번 그것을 확인해 줄 때 치료를 이어갈 힘을 주는 확신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갈수록 말이 많아졌는가. 처음엔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환자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방언 터지듯 쏟아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개 숙여 죄송할 일이다.
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셔서 그런 건데, 정작 그분은 친구가 아닌데 말이다. 나는 자꾸만 속내를 풀어놓고 있었다.
상태 보고라는 숙제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끝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사람 같았다.
“여기까지 왔어요, 수고했어요”라고 말해주실 때마다 나는 그 한마디를 과제로 착각했나 보다.
성적표라도 내밀 듯 나도 부랴부랴 대답했다.
“이거 보세요! 저 진짜 좋아졌어요.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아픈 몸을 이끌고 견뎌낸 날들을 꿋꿋하게 버텨낸 나를 살펴주는 한마디였다.
다시 걸어갈 힘이 솟아났다.
그 마음에는 감사만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길에 대한 깊은 공감이 담겨 있었다.
마음은 상호성의 원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힘이 되고 그 힘을 다시 건네고 싶어지는 것.
주고받는 말속에서 마음이 회복되고 그 따뜻한 순환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멋지네요. 그렇게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헷갈리기만 했던 질문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이 길이 맞는 건지 그 모든 물음들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그때 들었던 말이 다시 가슴을 뛰게 한다.
나의 삶, 그리고 병마와 싸워온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그 태도.
그게 얼마나 깊은 위로였는지 지금에야 깊이 실감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그런 말을 건넨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기적에 가깝다.
"당신이 아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그 시간들, 위대합니다."
내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견뎌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누군가 나의 고통과 존재를 진심으로 바라봐줬구나."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깊은 위로와 존중으로 남았다. 그분은 삶을 동행해 주는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진짜 "찐" 의사 선생님.
2023년 9월부터 작년 한 해, 나는 일상을 멈추게 할 정도로 빈번한 통증과 마주했다. 백 번이 넘는 날들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일에 몰두할 때도, 발열과 통증은 언제나 예고 없이 훅 하고 다가왔다.
자리를 박차고 도망칠 힘도 없었고 누운다고 해서 그 파도가 가라앉지도 않았다.
통증은 오롯이 제멋대로였고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주파수에 그대로 조율당했다.
어떤 날은 현재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는데도 몸은 옛날의 통증을 되살려 냈다. 플래시백처럼.
소리도, 냄새도, 시선도, 촉감도 사라졌는데 통증만은 정확히 그 자리에 출현했다.
반복되는 고통은 익숙함을 이유로 더 잔인하게 다가왔고 빈번함 속에서 몸 어딘가에 각인되며 살아 있었다. 그 흔적은 육체에만 남지 않았다. 감정의 내벽을 긁으며 때로는 내가 나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기억 속의 장면이라기보다는 신체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PTSD) 같았다.
마음은 기억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여전히 그것을 저장하고 있었다. 뇌가 기억을 불러낼 때마다 몸은 그 고통을 현재진행형으로 다시 체험했다.
세포에 박힌 감정 덩어리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원초적 기억이었다.
이렇게 깊고도 치명적으로 새겨진 통증은 심리와 맞닿아 있었고 몸은 그 무거운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날의 기억을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아마도 통증은 몸이 끝까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잊지 말라고, '무너졌던 날들을 무효로 삼지 말라'고.
그 시간을 통과해 온 나를 다시 내 손으로 부정하거나 지워버리지 말라고.
몸은 그렇게 모든 것을 기억하며 속삭이고 있었다. 고통은 견디기 어렵고 두려웠지만 나 자신의 깊은 면모, 감정, 기억, 생존 본능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고통을 미워하면서도 그 안에 고마움이 섞여 있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갔다. 힘들었고, 겁났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었지만 나는 보였다.
내 감정, 기억, 그리고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내 안의 얄궂은 야성까지.
그 모든 것이 통증의 틈새에서 도드라졌다. 지금은 가끔 컨디션이 좀 나은 날이면 그때처럼 그렇게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가끔 북받쳐 오른다.
아프지 않음 = 평범한 날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건 통증이 없는 평온한 날들을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평온한 날을, 아무 말 없이 감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완전함을 좇는 집착은 불완전함의 고통을 낳는다.
반쪽인생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유를 찾는 태도가 아닐까.
전체를 향한 집착은 지금 가진 삶의 진가를 놓치게 하지만 반쪽을 품고 의미를 발견하는 삶은 허무하지 않다.
인간이 완전함을 추구할 때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자신과 현실을 마주하며 고통을 겪는다.
완전함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부정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 시기, 나는 ‘완벽하게 고쳐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통증 없는 삶은 없고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이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했었다.
반쪽인생.
전체를 다 가지지 못함을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자유를 찾고자 갈망했다.
플라톤의 비유처럼 반쪽만 보고 전체를 추구하면 전체를 향한 집착 때문에 지금 가진 삶의 진정한 가치를 놓치게 될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지었다.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결코 허무하지 않다고.
반쪽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포기라기보다 완전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제한 속에서 누리는 자유와 선택의 결과이리라.
완전함에 집착하면 불완전함 때문에 고통받지만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의미를 찾으면 자유로워진다.
내가 알고 있는 김정훈이라는 의사는 내면의 완성도가 매우 깊이 있는 분이다.
그때는 조언이 선뜻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들을 때마다 ‘정말 그럴까?’ 하고 갸우뚱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두 달 전, 세 달 전에 건네받은 그 말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났다. 마치 수학 공식이 어느 순간 술술 풀리듯이 삶의 곳곳에서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을 만났다.
그때는 단순한 충고 같았지만 지금은 삶의 비밀을 살짝 열어 보인 듯한 귀한 가르침으로 느껴진다.
물러설 곳도 갈 곳도 없는 나였기에 그분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긴가민가 했던 그 말들이 하나씩 풀려서 내 삶에 꼭 들어맞아 인생이라는 문제를 그 말로 풀어내고 있었다.
뒤늦게 답안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삶에도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미처 읽지 못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드러내는 걸 보면 삶은 시간이 풀어주는 퍼즐 같은지도 모른다.
내 자율 신경은 요즘 눈물 바람입니다
자율신경계가 과활성 상태였을 때 불안, 공황, 만성 긴장, 통증은 친구였다.
주사를 맞으면 신경 감도가 낮아지는 걸 느껴서 안정감, 편안함, 눈물 날 만큼 행복한 적이 많다. 그래서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
공황은 마치 내 몸속에 출동 대기 중인 소방차 전체를 한꺼번에 부르는 느낌이었다.
그런 내게 주사 치료는 경보음 음소거 버튼 같았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지?”
“뭔가 올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 오네?”
그 틈으로 눈물이 나는 것.
이전에는 울 틈도 없었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울고 본다.
반쯤은 감동이고 반쯤은 자율신경의 회복이라 믿고 있다.
어쩌면 내 자율신경은 지금,
세상과의 휴전 협정을 갱신 중일지도.
눈물샘도 신경계와 함께 재활 중이다.
나는 주사 치료를 받을 때, 이제 어느 부위에 맞을지, 오늘은 어디에 맞을지를 대충 알고 있다.
주사 전에 시뮬레이션을 그리면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
어떤 느낌일지, 어디를 찔릴지ㅠㅠ를 시각화하면서 불안감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통증이 일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똑같은 부위, 똑같은 주사인데도 어떤 날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어떤 날은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 경험은 나에게 한 가지를 알려주었다.
통증은 짐작할 수 없지만 마음은 준비할 수 있다는 것.
통증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마음과 반응은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자율신경 주사를 몇 번 받고 나니까
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예전엔 살기 위해서 참는 것이 자동반응이었는데 요즘은 살고 있어서 더 울컥하는 일이 잦다.
무릎 까져도 안 울던 내가, 지금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어머 감동이야” 하며 왈칵한다.
솔직히 말하면 주사 치료받고 나서 제일 큰 변화는 '운다'는 것.
이게 회복인지 감성 터짐인지 아직 헷갈리긴 하지만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안 나오는 날이 늘어난 건 확실하니까.
뇌피셜일지라도 지금 내 몸은 원장님을 만나면 이렇게 보고한다.
“오늘은 안 무너졌어요.”
소리 없이 제출되는 회복의 보고서.
보낸 이는 자율신경계, 수신인은 나.
그리고 가끔 그 보고서를 받아 든 원장님의 작은 고개 끄덕임이나 인자한 웃음은 나에게 또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아이고, 다행입니다. 너무 축하합니다. 잘 지나가고 있어요.”
그 짧은 응답에 몸은 다시 하루를 버틸 근거를 얻는다.
주간 결산 환자, 넋두리도 치료다
2024년 8월 7일 수요일
발열 보고 숙제는 꼬박꼬박 내고 있었다. 혹여 원장님께서 지치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도 되었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고쳐주시겠다는데.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할 말이 점점 불어나 버렸다. 보고가 아니라 넋두리가 되어버린 셈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모아둔 고통과 행복을 수요일마다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시장 바닥에 잡동사니를 보따리째 쏟아내는 장사꾼처럼.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는 환자가 아니라 주간 결산을 내는 회계원인지 고해성사하는 신도인지 모를 꼴이 되었다.
치료가 성공적이던 작년 7월, 원장님께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내가 브런치에 지난 치료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원장님도 글로 써보겠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글을 쓸 용기가 없었다. 다만, 원장님이 내 아팠던 시간을 세상에 대변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묵혀 있던 지난 설움이 시원하게 풀려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드릴 수 있었다.
이 지구별 여행을 평화롭게
즐기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환자가 겪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의사 선생님은 마치 먼바다에서 등불을 지켜주는 등대처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공감과 염려를 보내주셨다.
그 겸손한 마음이 내 마음을 너무나 숙연하게 만들었고 삶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했다.
그 따스한 등불 아래에서 우리의 치료 과정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은 배처럼 이렇게 성공적으로 항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 그래서 행복한 의사와 나이다.
치료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풀고 싶은 마음이 참 공감되었고 의사로서 환자분들께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시어 내게 부탁하신 모양이었다.
주말도 쉬지 않으시고 그 바쁜 시간 속에서도 늘 뭔가를 하셨다.
글을 쓰면서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혹은 위로가 될까 고민하는 마음과 동시에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고 싶으셨던 것 같다.
원장님은 나보다 한 발 앞서 가고 계셨고 나에게 가끔 인스타에만 남기기엔 아깝다며 주변 친구들에게도 도움이 되니 꼭 써보라고 글쓰기를 권유하셨다.
그 말이 마음 어딘가를 눌렀고 나도 조심스럽게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글을 써오시던 원장님께서 연재를 시작하셨다.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이라 전문적인 통찰이 담겨 있고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녹아 있다.
나에 관련된 "대환장파티" 글뿐 아니라 여러 글들이 사람의 삶과 마음을 다루는 시선으로 다가온다.
환자분들은 물론,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께도 꼭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박제한다.
https://brunch.co.kr/@nothing8/263
늘 나에게 글을 먼저 공유해 주셨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떨렸고 감동했다.
내 치료의 삶, 그러니까 대환장파티를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세상에 내보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의사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설령 내 모든 민낯을 드러내더라도 나를 창피하게 만드시지는 않으리라, 뒤에 가려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
딴 데 보낼 생각(포기)하시면 안 되세요.
나의 심리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아직 상황이 불확실하고 가끔은 완전한 결과가 불안하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생긴 불안과 두려움 즉, 경계심이었다.
포기하는 순간 더 나빠질까 놓치고 후회할까 하는
걱정...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소한 나의 의지와 결정을 확인하며 마음을 붙잡고 상황을 조금이라도 내 손안에 두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데 (최근에 흔들린 적이 있다고 하셨다ㅎㅎ) 반복해서 강조하는 건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심리적 노력’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불안과 통제를 잡으려는 마음, 희망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반복적으로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저랬나 싶다.
2024년 8월 11일 일요일
토요일, 내 컨디션이 안 좋았었나 보다. 늘 그렇듯, 원장님은 또 톡을 보내오셨다.
다음 주에 병원 예약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걱정을 해주셨다.
그날 내 상태는 미이라 같기도 하고, 연체동물 같기도 하고 누가 보면 바이탈이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병원 문을 나선 환자를 이렇게까지 그것도 매번은 없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확신한다.
나는 늘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이 많았다.
지금도 컨디션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치료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더 이상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오래 머물지 않게 되었고 설령, 그런 생각이 스쳐가더라도 금세 빠져나올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 변화를 ‘감정이라는 야생마에 올라타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게 치료의 핵심이라고도 하셨다. 물론 통증도 줄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수년간 나를 괴롭혀 스스로 척추 수술병원에 찾아가 수술하겠다며 나를 힘들게 했던 목디스크와 등 통증은 지금 거의 무통 상태다.
물론, 가끔 잠을 잘못 자면 담이라도 걸린 듯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금방 회복된다.
감정이라는 야생마는
괴물이었지만 반복, 재발이 날 성장케 했다
처음 목이나 등 통증이 생겼을 때는 작은 움직임에도 날카롭고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느껴졌다. 몸과 마음 모두 긴장하고 두려움이 앞섰다.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는 통증을 기록하고 관찰하면서 ‘이 통증은 나를 해치진 않는다’는 경험을 쌓게 되니 같은 통증이라도 이전만큼 공포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적응인가 보다. 누구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환경에 맞춰 조절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통증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힘을 길러가는 것이다.
내면이 단단해지면 통증은 있지만 더 이상 삶을 마비시키지 않고 ‘살아가면서 감내할 수 있는 무게’로 변한다.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내면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 통증을 ‘닳게’ 하고 삶을 덜 괴롭게 만드는 나만의 팁이다.
진심으로 다시 한번 기록을 추천한다. 권한다.
통증(일기) 기록은 고통을 정리하게 해 주고, 지나온 시간을 다르게 바라보게 해 준다.
말로는 끝내지 못한 것들을, 글은 끝까지 안아준다.
기록은 회복의 시작점이자 힘이 생겼다는 뜻이다.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이해하게 해주는 건 기록밖에 없었다. 흐릿했던 마음이 글을 통해 명료해지는 순간이 분명 온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밖에서 바라보는 연습이기도 하다.
기록한다고 치유가 된다기보다는 치유를 이해하게 해 준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니까.
살아냈다는 걸 나 스스로 증명하는 게 일기다. 쓸 때는 민망해도 나중엔 쓴 나 자신이 대견해진다.
생각보다 나도 꽤 괜찮은 서사를 가진 사람이구나, 싶어진다.
글로 써보면 나의 대환장파티도 꽤 서정적으로 보였다. 썼다고 바로 낫진 않았지만 안 쓰는 것보단 백배 나았다.
통증은 줄었고, 삶을 감내할 힘은 늘었다
나는 이제 너무도 잘 안다. 결과가 좋아야만 성공인 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내면의 힘을 길러내는 것!
그 변화야말로 진짜 치료의 출발이자 성공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이 다 그렇지 않나.
막상 ‘좋은 것’을 손에 쥐었을 때보다 그걸 향해 허둥대고 애쓰던 시간이 훨씬 더 값지고 때론 좀 웃기고,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보다 어떤 사람으로 변해갔느냐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목표를 찍고 나면 이상하게 허무하고 나름의 성공을 맛보면 간지러웠다.
그러니 또 다른 고통을 만나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매번 고통에 질리면서도 의외로 또 괜찮게 살아내는 중이다. 사는 게 쉽지 않지만 그 어려움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웃고 어디서 주저앉는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그걸 알아가는 동안 사는 건 원래 이런 건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일이 근사하진 않지만 아주 가끔 ‘나쁘지 않다’ 싶은 날이 있는 것! 그게 살아 있다는 뜻 같다.
잔소리 심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잔소리 심한 환자가 되었다.
‘그 의사에 그 환자’는 아니지만(^^) 그분의 올곧은 태도와 시선은 내 말투와 감정에도 옮겨 붙었다.
아무튼 그래서 똑같은 고통도 자주 다르게 느껴진다.
덜 무섭고, 덜 절망스럽고, 때로는 약간 웃기기까지 한 느낌이다. 참 이상하다.
사람이란 동물은 기이하게도 아픈 와중에도 유머를 찾아낸다. 그게 진짜 회복의 징조인지 아니면 그저 살아남는 법을 얄밉게 터득한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둘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슬쩍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이대로도 잘하고 있어요. 참 아름답고 멋지세요”
뭘 잘하고 있는 건지 몰라도 최악의 컨디션에도 그렇게 말해주셨다.
“굿모닝인가요? 굿모닝이면 좋겠네요.”
그 말이 따뜻하게 웃는 눈빛과 함께 도착할 때마다 나는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좋아요, 괜찮아요! 헤헤.
입꼬리는 억지로라도 올렸지만 뒤에서는 눈물 훔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긍정이라는 열매를 자꾸만 내 앞에 건네주시는 그분 덕분에 내 안의 긍정 회로도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고장 난 줄 알았던 마음이 다시 작동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참 많이 노력하며 애썼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몇 번씩 넘어지면서도 어떻게 통원했는지 그만큼 간절했다.
또한, 먹지 말라는 건 안 먹었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했다.
하라한 건 따랐다.
딱 하나 못(안) 한 게 있다면 명상이다.
그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
의사가 시켜도 마음은 끝내 그 자리에 앉아주질 않았다.
+자랑질 추가하자면 원장님은 지금도 내게 말씀하신다.
“그렇게 다 따라온 환자는 미리나님밖에 없어요. 정말 충분히 잘하신 거예요.”
그 말만으로도 벅찼는데 오히려 자신도 성장했다고 고백하실 땐 마음이 저릿했다.
"환자인 내가 의사에게 짐이 아니라 힘이 될 수 있었구나, 아픈 시간을 견뎌낸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 환자는 시킨 거 다 따라와 주었다고
병원 내 독서 모임에서도, 환자분들과 담소 나눌 때도
만나는 분들마다 자랑처럼 곱씹으신다.
나를 자랑삼아 말하는 그 마음을 볼 때마다 나는 의사에게도 환자가 위로가 될 수 있구나, 다시금 조심스레 느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원장님, 그래도 명상은 못했잖아요.”
못 한 것 하나를 괜히 들추고 싶은 건 마음을 다 내어 맡기고도 끝내 다 따라가지 못한 미안함. 빨리 증상을 이야기할 걸, 그래서 더 빨리 좋아지지 못한 점... 서로 고생했다는 생각...
그리고 그조차도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부끄럽지만 칭찬에는 약한 내가 있다. 늘 응원을 해 주시니 나는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이 때론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도 작은 응원이 된다.
병원에 환자분들이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나는 소도구로 운동을 하거나 물침대를 이용했다. 놀라운 건, 수년을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막바지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발열 문제로 구석 어딘가에 파묻혀 잠들면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들이 깨워주겠다며 수액실을 통째로 내어주기도 했다.
집에서는 통증이든 발열이든 자주 깨서 힘들었지만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렇게 잠이 쏟아졌다.
이게 바로, 행보칸 환자의 행보칸 병원 생활이 가진 아이러니였다.
난 그렇게 운동도 하고, 치료도 받고, 잠도 자고, 뽕을 뽑다시피 했다.
발열 증상이 심하거나 얼굴색이 좀처럼 빨리 좋아지지 않는 날이면 어지러움까지 겹쳐 몸을 가누는 게 더 힘들었다.
황당하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열이 나는 날 때는 간호사 선생님들도 의사 선생님도 마치 출근 도장 찍듯 내 이마에 손을 얹고는 다시 떠나셨다.
10분도 안 돼서 또 오시고, 또 만지고, 숨이 막힐 만큼 힘들었지만 그 따뜻한 손길 덕분에 마음 한구석은 조금 녹아내렸다.
아파도 따뜻했고 아파도 행복했다.
함께 걷는 맨발, 함께하는 회복
작년 여름, 수많은 환자분들과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한 맨발 걷기 행사.
이젠 거의 병원의 ‘정례 행사’가 되어 내가 몇 번째 참가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아마 4~5번쯤 될 텐데 확장한 병원에서만 벌써 두 번이나 참여했으니 총 일곱 번 정도 걸었던 것 같다.
맨발로 땅을 딛고 걷는 그 순간들처럼 내 치료 여정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스텝 선생님들이 찍어 준 사진 그리고 셀카 샷!
자연스러운 햇살의 조명은 예쁘게 나오게 해 준다.
마음의 영양제 같은 말들
늘 안전하고 싶지만 안전한 길 위에서는 배움을 얻기 어렵다.
전혀 예측할 수입 없는 당혹감, 한계 앞에 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경험한다. 아찔함은 나의 경계를 제멋대로 흔들어 놓는다.
아름다움은 혼돈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게 해주는 빛이자 희망이 된다. 이런 경험들은 시간 속에 흩어지지 않는다. 쌓이고 쌓여 감사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아찔함과 아름다움이 한 자리에 겹쳐진 순간들은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소중한 경험이 된다. 강렬한 감정이나 특별한 사건으로만 남지 않는다.
두려움과 매혹, 불안과 환희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 나는 삶의 본질을 느낀다. 아니, 손으로 만질 수 있다.
그 모순된 감정 속에서 나는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살아내고 있는지.
그래서 원장님은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온갖 일들은 나를 어쩌지 못하고 삶은 안전한 게임이라고 하신 걸까.
때로는 슬프게 느껴진다.
내가 버티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잡히지 않는 말 같지만 요즘은 힘들수록 그 말을 떠올리다 보면 마음의 영양제처럼 다가온다.
왜냐하면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나 자신만 보이지만 그 말을 되새기면 시선이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크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삶은 안전한 게임이다,
지구별은 지금 이대로 온전하다,
아름다운 행성에 살고 있는 건 기적이다.”
그때는 늘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나 충고가 선뜻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들을 때마다 ‘정말 그럴까?’ 하고 갸우뚱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두 달 전, 세 달 전에 건네받은 그 말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났다.
마치 수학 공식이 어느 순간 술술 풀리듯이 삶의 곳곳에서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을 만났다.
그때는 단순한 충고 같았지만 지금은 삶의 비밀을 살짝 열어 보인 듯한 귀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러설 곳도 갈 곳도 없는 나였기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긴가민가 했던 그 말들이 하나씩 풀려서 내 삶에 꼭 들어맞았다.
나는 인생이라는 문제를 그 말로 풀어내고 있었다.
뒤늦게 답안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삶에도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그때는 미처 읽지 못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드러내는 걸 보면 삶은 시간이 풀어주는 퍼즐 같은지도.
올해 2월, ‘집착’이라는 주제에 대해 혼자 깊이 생각하던 중, 과거 경험이 떠올랐다.
특히, 무턱대고 수술을 권하거나 대충 일하는 태도로 상처를 주었던 의사에 대한 기억이었다.
만성통증과 자율신경실조증을 겪은 나는, 통증환자가 집착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지 원장님께 질문드렸다.
과거 상처와 현재 성장, 그리고 통증과 집착이라는 주제가 주치의 선생님의 성의 있는 답변을 계기로 치유되며 연결된 순간이었다.
아래는 주치의 선생님의 답변인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며 공유합니다
만성통증, 자율신경실조 환자들의 집착에 관하여
닥터행보칸 작성일 2025.02.16. 07:33
[만성통증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
1. 통증이 만성화되는 과정
우린 모두 경험의 노예입니다. 아픈 경험이 켜켜이 쌓이고 나면 고통을 피하고 싶은 본능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대체로 본능은 생존에 유용하지만 만성통증 환자분들에게 자연스러운 이 본능은 생존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경험에 강하게 붙들려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현상을 ‘집착’이라고 부릅니다.
낡은 과거에 물든 뇌가 생생한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사피엔스는 동물 중에서
과거에 살 수 있는 유일한 종입니다. 그 어떤 동물도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원래는 우리도 어릴 때는 과거에 묶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죠. 갓난아이는 처음으로 주사를 맞고 1초 정도 지나야 통증을 느끼고 울어 젖힙니다.
통증신호가 뇌로 전달되는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10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놀이를 하죠.
왜냐하면 통증 신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주사기 비슷한 물건만 보아도 울음을 터뜨릴 겁니다.
통증에 대한 경험이 기억을 낳고 기억이 강화되면서 ‘개념’이 생기고 ‘개념’은 신경세포망에 큰길을 내기
때문입니다.
이때 엄마가 포근하게 안아주고 다정한 눈빛으로 이 고통의 이유(더 심각한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를
알려주면 아이는 통증을 느끼더라도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만성통증 환자들은 반복되는 아픈 경험들 때문에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격이 무척이나 좁아져 있습니다.
실제로 신경전달 회로의 센서가 신호를 증폭시키기 때문에 같은 자극에도 더 많이 불편하고 이 불편한 경험이 해마와 편도체를 자극하여 불안, 공포를 가중시킵니다.
이런 안타까운 악순환이 고통을 피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해마에게 통증이 유용한 이유를 기억시켜 주어야 하고
편도체를 안정시켜 주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다정한 연민의 눈빛으로
(편도체 안정화)
통증의 이유를 쉽게 설명해 주는
(해마의 기억회로 재구성)
의사의 태도가 만성통증 치유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교감신경이 안정화되어 있어야 하겠죠.
2. ‘집착’처럼 보이는 만성통증에 대한 반응의 실상
만성통증 환자들의 통증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집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통증은 개인만의 고유한 것이고 타인이 평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만성통증 환자들에게는 사실 ‘집착’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누적치가 매우 크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안의 겁 많은 병아리는 하늘에서 도토리만 떨어져도
커다란 호박덩어리가 떨어진 것처럼 실. 제.로! 경험합니다. 그 수많은 경험의 가시밭길을 지나 여기까지 온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요?
여기까지 온 자신의 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그런 본능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지금 내 몸과 함께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수많은 역경을 거치고도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스마트폰 모니터에서 서로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잖아요? 이것도 경험입니다.
때론 고통스러운 경험도 있지만 이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인가요?
3. ‘삶’은 안전한 게임
이 지구별은 내가 알아본 결과 우주에서 가장 나에게 안전하고 평화로운 별이란 걸 알았습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아직은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분들이라도 이 사실은 인정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지구에 태어난 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베푼 아름다운 축복임을 잊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별에 태어나 별처럼 빛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글을 통해, 몇 마디 말을 통해 때론 아무 말이 없더라도 우린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전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삶’은 절대로 안전한 게임입니다.
낡은 과거의 경험에 붙들리지 않는 이 아름다운 ‘삶’을
예수는 ‘생명’ 또는 ‘영생’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영생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불과 몇십 년 더 살다가 죽었지만 청년 예수는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삶의 질이
온전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4. 개인의 경험과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부처님은 인생을 다섯 가지 감각과 경험의 집합체, 다섯 가지 무더기라고 봅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경험의 무더기로 이루어진 개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태초부터 있던 마음이 육체 안에 깃드는 것을 가리켜 ‘영생’ 혹은 ‘그리스도’ 혹은 ‘신의 성품’이라고 불렀습니다.
개인의 경험이 사라지고 신령한 깨달음이 떠오르는 자리에서 우린 모두 하나로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개별적인 육체의 경험(겉사람)에
속하는 통증은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 참모습‘(속사람)을 뒤흔들지 못합니다.
5. 통증을 대하는 지혜
육체가 있는 한 통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오히려 더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통증을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통증이 있다는 것은 내게 배울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물든 생각 패턴(흔히 다들 집착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우선 멈추고! 바라보세요!
멈추고! 바라보고! 쓰세요!
그러면 통증의 알갱이만 남고 통증을 부풀리던 불안과 두려움의 거품은 사라집니다.
해가 뜨면 새벽안개가 걷히듯 이 신령한 앎(생명주는 영)이 떠오르면 나를 사로잡았던 거품 같던 생각들은
새벽이슬처럼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만성통증 환자분들~
여러분에게 통증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주목하지 마세요!
(통증 일기 쓰는 것 제외, 통증일기 쓸 때도 눈동자에 힘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고 흔쾌하게 쓰려고
연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통증은 눈 덮인 산속의 나무와 같습니다.
스키부대원들이 눈 덮인 산을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
나무를 주목하고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나무에 부딪히게 됩니다.
나무 사이로 나있는 길을 주목하고 그것만 보고 내려와야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습니다.
통증이란 나무에 눈길 주지 말고 그 사이사이로 난 길에 주목하세요.
6. 통증 사이로 뻗은 아름다운 ‘삶’의 길
물론, 우린 오늘도 아픕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사이사이 아름다운 ‘삶’의 길이 있습니다.
주목하면 그것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습니다.
내가 주목하는 그것이 곧 내 삶이 됩니다.
태초의 인류가 옳고 그름에 주목하였기 때문에
선악과가 인류의 정신세계 속에 큰 프레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옳고 그름은 ‘일’을 할 때는 필요하지만 ‘행복’을 가꾸는 일에는 방해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나무를 주셨죠.
저는 ‘생명과’라고 쓰고 ‘밝은 표정’과 ‘용기를 주는 언어’라고 읽습니다.
이건 ‘삶’에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미소와 용기는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언제나 고통은 ‘삶’을 배경으로 합니다. 눈 덮인 산길에 장애물 같은 나무가 눈길을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만성통증을 경험하는 누구라도 그 고통을 겪으면서도 지금 이 자리까지 ‘참 나’를 담아서 비틀대며 도달한 몸에게 ‘참 나’의 시선으로 연민과 감사, 축복의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
7. 고통이 없는 ‘삶’?
고통이 없다면 ‘삶’도 없습니다.
고통이 전혀 없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고통은 신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에게는 고통이 없는 천국으로 가는 것보다 고통을 마주하며 신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깨우쳐 가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입니다.
환자분들의 고통을 마치 게임하듯 감정을 쓰지 않고서도 치료하는 법을 배웠다면 좋으련만 저는 그런 기술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환자분들이 아플 때마다 나도 적잖이 아픕니다.
통증을 외면하고 더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하는 환자분들을 보며 때론 입 밖으로 말은 못 하고
가슴속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린 모두 이렇게 하나로 엮인 것을.
이렇게 연결된 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요?
라포라는 말은 식상해서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삶’이 맺어준 사랑의 띠 같기도 하고 인류애 같기도 하고 하나님 자녀들의 가족애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린 혼자가 아닙니다.
You are not alone.
I am here with you.
Though you’re far away,
I am here to stay.
You are not alone.
혼자라는 ‘생각’, ‘착각‘ 만 있을 뿐
이 세상에서 아직 호흡이 있는 자!
그 누구도 혼자일 수 없습니다.
’ 집착‘은 생명 주신 분이 생명을 대하는 태도이지,
생명을 받은 피조물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아닙니다.
피조물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저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 삶‘은 언제나 ’ 지금‘ ’ 이대로‘ 완전합니다
‘지금’이라는 방식으로 찾아온 ‘삶’의 은혜와 지혜를 찬송합니다.
사람이 힘들 때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때는 지금의 무게도, 아픔도, 깨달음도 없으니까.
올해 6월쯤, 원장님과 담소를 나눴다.
“원장님, 저는 지금이 고통스러워도 과거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때 치료를 잘해주셔서 지금을 버틸 힘이 생겼어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원장님은 늘 내가 치료를 믿고 잘 따라와 주셔서...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내 말에 화답하듯 원장님 자신도 힘든 고비가 세 번쯤 있었다고 들려주셨다.
통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초대형 병원의 경영자로서 수십 명의 직원들을 책임지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삶 속에서 느끼는 고통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묵직했다.
그럼에도 깨달았다. 고통의 크기와 형태는 다를지라도 살아내야 하는 순간의 무게는 서로 통한다는 것을.
내가 걸어온 길과 원장님이 걸어온 길은 달라도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 말은 강인함을 넘어선 뜻을 담고 있다.
나도 조금은 강인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을 그때보다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인식이 깊어진 삶은 힘들어도 더 온전하다. 고개를 넘기며 얻은 삶의 지혜와 무게는 깊이를 준다.
예전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고통도 사라지지만 그 깊이와 성장은 함께 사라지고 말겠지.
아마 그래서 원장님도 되돌아가지 않으려 하셨던 것일까.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게 된다.
과거에는 몰랐던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어도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
행복한 삶은 모르는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알아버린 채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다. 인식을 얻은 이상 모르는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
설령 돌아간다 해도 지금의 나는 그곳에서 다시 질문하고 다시 고개를 넘어 또다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될 것이다.
힘들지만 거기서 얻은 무언가... 사람, 관계, 의미, 깨달음이 과거보다 크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고도 지금 여기에 머물고 싶다.
과거는 안전하지만 얕았고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깊다.
그 깊이를 나는 버리고 싶지 않다.
치료 과정을 이야기할 때
인스타든 브런치든,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TOP 1은 단연코
“병원치료를 어떻게 그렇게 재밌게 받나요?”였습니다.
최근에도 여전히 이 질문을 받곤 하는데요,
“재밌고 쉽게” 느끼는 건 사실 쉽지 않아요.
하지만 포인트는 작은 성취감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에요.
운동을 할 때도, 근육이 바로 붙지 않아도 조금씩 힘이 생기고 몸이 달라지는 걸 느끼면 재미가 생기잖아요?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하루 한 번, 작은 목표
한 동작, 한 상태 변화만 체크해도 충분해요. 변화를 기록해서 내 몸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걸 시각적으로 확인하면 성취감이 쌓여요.
저는 의사 선생님과 함께 즐겼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 왔다”라고 확인해 주는 순간,
저도 내 몸이 나아졌음을 이야기하며 기뻐했죠.
자기만의 보상 루틴을 만들어보세요.
좋아하는 음악, 간식, 작은 활동과 연결하면
치료가 훨씬 즐거워집니다.
치료는 한 번에 완성되는 근육이 아니에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 몸을 느끼며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연속의 기록입니다.
원장님은 언제나 환자들을 안전하게 태워 목적지까지 확실하게 데려다주셨습니다.
힘겨운 순간마다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작은 변화에도 함께 기뻐해 주셨죠.
그 모든 순간이 제게는 치료를 넘어 용기와 위로를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정훈'이라는 리무진 덕분에 이 길이 언제나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오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통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최소한의 안전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회복과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해 주시는 원장님의 마음과 철학이 늘 곁에 느껴집니다.
이제는 100% 동의하겠습니다.
삶은 100%"안전한 게임"입니다.
나의 자율신경치료는 자신감을 준 치료였다.
처음엔 바람 불면 바로 꺼질 성냥불 같았지만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나를 태워 단단한 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