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들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치료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그대에게
고통의 강도와 빈도가 서서히 줄어들고 마침내 나에게도 이어지는 평온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나를 치료해 주신 주치의 선생님께 인정받고, 이해받고, 헤아림과 공감을 받았던 시간들이다.
그분은 내 고통을 함께 견디며 울어주셨고 회복할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그 모습이 마음 깊이 닿아 이렇게 완벽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인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치료를 이어왔다는 게 놀랍고 뿌듯하다.
견디고 버티며 나아온 시간들이 결국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만남은 내 삶의 가장 "따뜻한 치유"였다.
이제는 ‘환자’라는 이름을 벗고 같은 지구별을 여행하는 ‘여행자’로 불러주신 그 말이 참 따뜻했다.
자존감은 만렙에 어깨가 펴지고 마음과 병원의 공기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내 고통을 병으로 보지 않고, 치유를 과정으로만 보지 않고, 살아낸 나의 이야기로 다시 써주신 김정훈 의사 선생님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이제 다시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작품처럼 바라본다. 때로는 터치가 엉성하고 붓질이 번진 날도 있지만 모두 내 인생의 질감이 되어간다.
고통은 내 삶을 구겨놓은 게 아니라 조금 다른 주름을 남겨서 더 오래 기억되게 만들었다.
주치의 선생님께 장문의 톡이 왔다.
지금 내가 이해하는 의사의 마음과 그때 느낀 감정들이 새록새록하다.
육체적 문제를 해결하면 마음도 따라 좋아지리라 믿으셨을 테지. 그러나 치료가 잠깐 효과를 보이고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왜 호전이 오래가지 않을까?”
“무엇이 내 예상을 벗어나게 하는가?”
의사는 환자의 몸 뒤에 숨겨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직감한다.
혼란과 안타까움,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
마음의 울음까지 이해하려 애쓰는 심정.
환자가 몸과 마음을 다시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조용히 동행하는 마음.
나는 그때의 의사가 무엇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환자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모습을 보고, 답답함을 느꼈지만 통증 치료를 넘어 내면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까지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조급함이 아닌 배려, 결과를 강요하지 않고 함께 걸어가려는 마음, 내 몸과 마음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헌신이 담겨 있었음을.
같은 지구를 함께 걷는 여행자로 바라봤음을 안다.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 나도 의사를 ‘치료자’가 아닌 동행자로 느낀다.
의사 선생님의 편지
악몽은 가끔 나를 찾아왔다.
아침 햇살보다 먼저, 내 머릿속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와 “안녕? 또 왔어?” 하고 반갑지도 않은 인사를 했다.
“두뇌 서커스도 아니고 뭐야”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언젠가부터 나는 ‘완치’라는 단어를 피했다. 완치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원장님의 톡을 다시 보며 그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었다. “완치.”
아프지만 나는 걷고 있었다.
아프지만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아프지만 오늘의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병의 끝이 아니라 두려움의 끝이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답장을 드렸다.
나 역시 여전히 흔들리고, 때로는 길을 잃은 채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다.
이 글을 공유하는 이유는 내가 겪은 어둠 속에서 건진 작은 빛을 나누고 싶어서다.
그 빛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위로가 되고 잠시라도 버틸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나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서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쓰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우리 모두가 결국 서로를 통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답장이 왔다.
“당신이 오랜 고통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당신 안에도 밝고 투명한 본래의 자아, ‘배경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통증과 트라우마, 자율신경의 대환장 속에서도 나의 ‘배경’은 단 한 번도 흐려지지 않았다고. 구름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 하늘처럼 삶의 모든 고통과 사건을 담아내는 자리였다고.
그 모든 걸 지켜보는 투명한 주체!! 배경자아는 늘 내 옆에 있었다. 신의 성품, 그 자리... 아직 내겐 너무나 어렵지만 종교적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님은 분명히 알겠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진실이 아닐까.
“아무리 세상이 흔들어도 당신의 본래는 더럽혀질 수 없다.”
한강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며 내가 마치 신성한 자리에 다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같은 마음을 공유해 주셨을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고 있다.”
치유란, 아픔을 없애는 일보다 본래의 투명한 자리를 다시 기억하는 일인 것 같다. 우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서는 나와 당신은 하나다.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인간의 투명한 빛!
그분이 왔다.
이름하여 불명열(원인을 알 수 없는 열)
얼추 이해는 되는데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가슴은 완전히 환장 상태였다.
정말 정말 정신이 어지러웠지만 밥만큼은 맛있었다. 이것도 삶의 균형감각이라면 균형감각일까, 풉!! 하고 혼자 웃었다.
그날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는 판다와 기린 인형이 있었다. 판다는 버티고 있는 내 모습 같았고 기린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은 내 모습 같았다.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며 눈으로 담고 꽉 끌어안았다.
웅크려 매달린 판다와, 다시 고개를 든 기린.
그날의 한 끼는 나와 내가 화해한 의미 있고, 맛있고,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한 끼였다.
원장님은 한참 병원 확장 준비로도 어마무시하게 바쁘실 텐데도 나를 놓지 않으셨다. 멀리서라도 계속 살펴주시고 작은 변화에도 마음을 써주셨다.
"이제 그만 도와주셔도 되는데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다정한 관심이 고맙고 또 아쉬웠다. 그동안 나를 붙잡아준 건 약이 아니라 그분의 진심과 믿음이었음을 알기에 이제는 놓아드려야 하는 마음과 계속 곁에 있고 싶은 아이러니 마음이 교차했다.
그분의 손길이 사라진 자리에 이제 내가 내 마음을 돌볼 차례라는 걸 알지만... 그런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이별의 순간이었다. 슬슬, 이제 결심을 했다. 더는 의지하지 않겠다고. 충분히 기대었고, 충분히 받았다. 이만하면 됐지! 그렇게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한 줄기 미련이 섞여 있었다. 양심의 탈을 쓴 다짐이었을까. 고마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마음...
결심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보려 애를 썼다.
결심하자마자 열파티 구경이라니?? 이걸 의사 선생님께 굳이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지금 보니 헛웃음이 난다. 두려움이 몸의 언어로 표현된 게 아닐까.
몸이 내 뜻과 따로 노는 게 괜히 민폐처럼 느껴져 죄송했다. 그래서 순식간에 또 마음을 먹었다.
"정신과 약을 또 먹는다고 하자!! 못 참겠다!!" 결심과 다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숨과 날숨처럼 오갔다.
몸과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신과 약이라도 먹겠다는 즉각적 대응으로 나를 안정시키려 했다.
다시 또 결심!! 다시 힘을 내자!!
그랬다. 두려웠다.
원장님께서 직접 쓰신 치료 과정을 읽고 답글을 달았다.
마치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내 복잡한 증상을 이렇게 깊이 이해해 주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 주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늘 복잡하고 오묘한 내 증상을 그렇게 표현한 이름이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암호 같은 단어였다.
나도 꼭 써보고 싶긴 했다.
치료의 기록을, 통증의 흔적을, 그리고 숨은 나의 마음을.
원장님께서 통증 일기부터 써보라고 하셨을 때, 글쓰기 권유를 받았을 때 ‘너의 이야기를 네가 주인공으로 써도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늘 당신은 힘들지 않다며 낫기만 하시라, 괜찮다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조금씩 좋아지고 숨을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말하지 않고 견뎌야 했을 그 시간들, 몸과 마음이 지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 있어야 했던 무게. 통증으로 잠 못 자던 나의 수많은 밤들만큼이나 환자를 하루빨리 고쳐주기 위해 밤잠을 설치셨을 것이다.
내가 안정된 상태가 되어서야 원장님의 진심과 감정, 노력과 고생이 드러났다.
진짜 강한 사람은 고통을 숨기는 법만 아는 게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고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미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와 환자.
늘 강자와 약자의 구도로만 여겨졌던 관계.
의사와 환자라는 경계를 넘어 존중과 배움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걸까?
환자는 보통 약하고 의사는 강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나? 의사 선생님의 말은 그 역할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된 순간이 된 것만 같아서 뭉클하고, 감사하면서도 묘한 책임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누군가에게 배움이 된다고?"
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 버렸다. 그렇다면...
"이 아픔이 완전히 헛된 건 아니구나."
그런 나를 뼛속까지 진심으로 존중해 준 사람은 주치의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이런 감정은 존중, 감사, 그리고 살아있다는 실감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내 자존감을 되살려 주셨다.
이젠 나도 모르겠었다. 그분을 정말 못 말렸다. 또 내 컨디션을 물으시고 치료 마무리가 잘 안 됐다며 걱정하셨다. 주사치료를 하고 언제나 안정될 때까지 중간중간 살펴봐주시고 하셨음에도...
며칠 뒤면 병원에서 또 볼 텐데, 그 사이도 마음을 놓지 않으셨다.
즉각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내 반응들, 그 정신없는 ‘대환장’을 정확히 따라오셨다.
“내가 이렇게까지 챙김 받을 만한 사람인가?”
늘 자신의 치료를 잘 따라와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사실, 이 치료는 내가 따라간 게 아니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내 속도로 함께 걸어와주신 여정이었다.
나는 병이 아니고 사람으로 돌봄을 받았다.
나에겐 늘 죄송함이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내가 죄송해하면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 표정에는 ‘당신이 죄송해할 일이 아니다’라는 확신과 ‘이 관계는 미안함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픈 게 죄송하고, 힘든 게 죄송하고, 나로 있는 게 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내 감정을 한순간에 망치게 하지 않고 괜찮다는 얼굴로 부드럽게 지워주셨다.
죄송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그분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나를 멈추게 했다. 내 죄책감을 감싸 안고, 대신 짊어져주는 연민이었다. 환자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무거운 감정을 대신 받아들여 안전한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
나는 그 역할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치료받고 있었다.
치료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 경험만큼은 그 구분이 무색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한순간 한순간, 몸의 변화와 반응은 마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나를 덮쳤다. ‘물밀듯이 온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실감 나는 것이구나, 그때 알았다.
그러면서도 통증의 완화나 증상의 호전을 넘어 몸과 신경, 감각이 함께 폭발하며 다가오는 치유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잃어버린 시간이라 여겼던 날들은 나를 더 가치 있는 깊은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감사한 점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다. 치료를 잠시 멈추고 “서울에 가서 그냥 좀 쉬고 싶어요, 놀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을 때였다. 그럴 때면 내 어깨를 토닥여주시거나 손을 따뜻하게 매만지시며 “이제 살 만하군요.”라며 웃어 보이셨다.
겁을 주지도, 치료를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그래도 괜찮아요, 언제쯤 오실 거예요?” 나는 늘 “일주일만 있다가 올게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일주는 곧 이주가 되었고, 그 이주는 어느새 한 달이 되어 있었다. 다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는데...
늘, 아무렇지 않게 속아주셨다.
나의 치료는 경청에서 시작되었다.
원장님께서 그동안 보내주신 글을 읽을 때마다 치료 기록 이상의 무언가임을 느꼈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한 치유의 기록!! 지푸라기 볏단처럼 비틀거리며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던 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귀한 마음을 주셨다. 무너졌던 생명력이 다시 일어나려는 첫 순간을 그림처럼 그려주신 듯했다.
내 병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몸의 울음소리를 들어주신 분.
감정은 구름입니다. 당신은 구름이 아니라 그 구름이 흘러가는 파아란 하늘입니다.
마음과 감정을 느끼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할수록 그 감정은 더 큰 울음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리나, 너는 왜 이렇게 연약해! 감정을 숨길 줄도 알아야지. 감정에서 이겨야 이 험한 세상 살아간단다.”
요즘 5060 부모님들은 다르지만 내가 어릴 적, 90년대의 시대적 공기 속에서 지금의 60대 부모님 세대는 자녀의 감정보다 강인함과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 경제적 어려움과 치열한 경쟁의 시대, 그분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버티고 극복하는 법을 배우라”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것 같다.
각자는 자신만의 삶의 이름을 지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운다. 부모의 사랑과 가르침, 사회의 기대. 자식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그 길 위에는 필연적인 다름이 존재하고 그 다름으로 우리는 자신이 되어가니까. 그 시절 부모들은 그 시대만의 방식으로 표현된 사랑이었겠지.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감정을 들여다보고 수용하는 태도와는 다르지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
환자가 아닌 여행자, 함께 걷다.
주치의 선생님과의 치료가 깊어질수록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게 감정을 없애거나 제압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고요히 바라보고 흘러가게 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처음엔 마음을 통제하라는 뜻인 줄 알고 강한 척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대신 마음을 품는 법을 늘 알려주셨다.
“당신은 환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여행자예요.”
몸의 통증과 마음의 고통이 함께 폭발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따뜻한 언어가 또 있을까.
그분의 치료의 목표는 ‘고통을 없애는 것’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여정, 그것이 바로 ‘치유’였다. 같은 지구별을 걷는 동행자로서의 관계. 나는 이전보다 더 큰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치유’는 의사가 환자에게 주는 일방적인 행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귀한 인연을 만나 치료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임을 알게 되었다. 칭찬을 받거나 배움을 얻은 차원이 아닌, 인정과 연결이었다.
고통, 두려움, 혼란, 그리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그 순간까지 모두가 이해받고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결과보다 더 큰 선물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함께 걸어주신 그 마음이었다.
“내가 겪은 것들이 무가치하지 않았구나,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었구나.”
많은 이들이 아픔을 홀로 견디며 누군가에게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 외로움으로 사람은 더욱 고립되어 간다. 그런데 내 감정들이 닿을 곳이 있었다니, 기적 같았다.
함께 만들어낸 신뢰와 이해의 기록이라 더욱 특별했다. 이건 나의 주치의 선생님의 기록이지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와 환자, 두 생명이 함께 견뎌온 회복의 서사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를 이만큼 성장시켰다.
흐르는 고통, 머무는 위로
이것은 나만의 고통이 아니다. 모든 아픈 존재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글이다. 이 글은 어쩌면 바로 이 자리에서 선생님과 내가 함께 나눈 치유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눈으로만 보는 기록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스쳐 지나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고통과 위로가 흘러 들어온 자리에서 시작된 글이니까. 내가 느낀 고통과 많은 감정들이 이제 글이라는 형태로 이 공간 위에 남는다.
여기서 태어난 모든 말들은 나와 누군가가 함께 만든 시간, 함께 경험한 공감과 이해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브런치’라는 공간은 그 연속을 담아내는 하나의 캔버스일 뿐이다.
나는 그 위에 나의 소중한 경험을 펼쳐 보인다. 흔들리고, 폭발하던 순간들이 그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와 서로를 느끼며 만들어낸 치유와 연결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쓰였다. 누군가와 함께 견디며 얻은 작은 평온과 이해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글의 탄생과 글쓰기의 과정 자체가 치유와 성장의 과정이었다. 고통과 공감, 이해의 경험이 나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힘이 되었다.
경험을 언어로 형상화한 작업이기도 하다. 고통을 나만의 문제로 묶지 않고 모든 아픈 존재와 공유할 수 있는 위로로 확장하고 싶다. 글쓰기 자체가 치유와 연결의 과정이니까...
나는 이제 완치했다. 글을 쓰며 나 자신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나와 또 다른 존재, 그리고 세상과 교감하며
새로운 서막을 열어가는 중임을 느낀다. 그 서막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그 모든 시간과 흔적을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힘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