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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가 되기까지

치유의 여정

by 미리나

결심은 어렵고, 시작은 쉽지만, 유지는 가장 어렵다.

첫발을 내딛는 용기는 순간의 결심으로 가능하지만

그 길을 지켜나가는 일은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싸울 일 없이 소파에 누워

귤이나 까먹으며 뒹굴뒹굴하는 내 모습이 참 생경하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랬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이런 고통을 처음 겪었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많이 느꼈다.


단짠단짠 한 순간들을 이렇게 단기간에 나만큼

자주 경험할 수 있을까? 그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다른 증상들은 모두 제쳐두고 오직 '불명열'만을

놓고 본다면 그것조차 감사하게 여겨졌다.


말 그대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상세불명의 열'이라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고

언제 나을지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이 또한 내 삶이 내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의사 선생님은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시고는

마침 병원에 흘러나오던 노래 때문인지 나를

'볼 빨간 사춘기'라 부르거나 '떡볶이' 같다고

농담을 건네셨다.ㅋㅋ


그런 가벼운 농담조차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말들은 "괜찮아요. 큰일 아니에요."라는

위로로 들렸고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모든 것이 축복이고 감사였다.

매일이 도전이었지만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성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






나 같은 사람이 이 모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것은 지나갔다.

고통 속에서 얻은 것들은 내 삶의 든든한 힘이 되었고

그 경험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재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재발이라는 반복된 경험은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두려움이 아니라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이 나를 주저앉히지 못한다.

나를 단련시켰고 내가 정한 한계를 넘어설 기회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실패와 반복된 재발은

나를멈추게 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경험들 덕분에 나 자신을 더 믿게 되었다.






고수들이 가진 바이브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오랜 시간과 반복된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나도 나만의

고유한 바이브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


나만의 강점을 다져가고 있음을 조금씩 느낀다.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2024년 10월 21일부터 11월 27일까지의 5주간

마지막 치료를 받던 중, 문득 '아차!' 싶었다.


그동안 차별을 경멸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몸의 감각을 차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찔했다.


좋은 감각과 기분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좋지 않은 감각에는 저항하며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감각을 부정하고 저항할수록 불안과 두려움은

더 커졌고 그 감각들은 더 크게 다가왔다.






모든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했다.

저항 대신 수용하기 시작했을 때 불안은

조금씩 누그러졌고 몸의 메시지가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심리학 책을 보다가 '저항의 역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통증을 깊이 바라보는 스킬을 얻게 되었다.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것이 통증이나 불편함을

덜 느끼게 만드는 방법임을 배웠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주사가 아플 때면 좀 즐겁게(?)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통증의 흐름에 관심이 생기면서

별안간 주사의 감각까지 느끼고 싶었다.


그 작은 변화가 내 몸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바늘이 들어가고 빠질 때 주사액의 온도조차

근육 부위마다 다르게 느껴졌다.

그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며 몸의 반응을

더 잘 이해하려 했고 주사 후 밴드를 붙일 때의 압력까지도 관찰했다.


통증이나 불편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내 몸과 제대로 소통하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덜 아프게 느껴졌다.(^^)


발열로 인한 불편한 통증에도 적용해 나갔다.

통증의 시작점, 잠잘 때의 통증, 열이 떨어질 때의 강도 변화,

식전과 식후의 차이를 세밀히 기록했다.


주사로 자율신경 조절을 한 건 맞지만 열이 나도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스르로 한 가지라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앞으로 이 정도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ㅎ


그 길을 찾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언제든지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었다.





이제 그 두려움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짜 두려운 것은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마음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더 자유로워진다.


원장님은 나와 삶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이

나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셨다.


더 이상 고통과 생각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으니 나름 큰 성과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너무 오래 머금은 발열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늘 최선을 다해 주시는 모습과 꼭 해결해 주겠다는

원장님의 포부대로 나도 꼭 낫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마치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도 자랑스럽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의사의 니즈를 만족시켜 뿌듯했다ㅋㅋㅋ


치료가 잘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1년 만에 많은 증상들을 고친 것은 기네스북에도 올라갈 일이다.

많은 의사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협력이 잘 되는 의사는 처음 만났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병원 창가에 눈부신 햇살은 나의 기적을 축하해 주듯 유독 빛났다.


수십 년 넘은 옛날 옛적에 전래동화 일 같지만

1년 전이라는 사실.


너무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 수업이었다.

케케묵은 기억들은 온데간데없고

글을 쓰며 낭만적인 과거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때의 아픔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삶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하늘에서 보내주신 존재가 있다면 바로 이 의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일처럼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셨다.


나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를 만나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가 되었다.


함께 울고 웃으며 나를 살려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의사 선생님께 바치는 회고록이자 치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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