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보다 아픈 '이유'를 물어준 당신에게
나는 만성통증, 자율신경실조증 대가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킹이라고 하셨다.
물론 회복되고 나서 말이다.
그동안 내가 만난 모든 통증, 재활 의사 선생님들은 내게 '어디(Where)'가 아프냐고 물었다.
그건 당연한 질문이었다. 아픈 부위를 알아야 치료하니까.
누가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내 주치의는 달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정신의학과 선생님도 아닌데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분은 '어디’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를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몸의 위치가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병원의 그 질문 앞에 나는 늘 유능한 피고인이었다.
"목과 등, 그리고 견갑골이요."
언제부터였는지, 통증의 양상은 칼로 베는 듯한지 아니면 쑤신다든지, 짓누르는 듯한지, 쏟아냈다.
수치와 증상으로 나를 증명해야만 약 3일 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분은 내 삶의 구간을 물으셨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아프게 했나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픔의 시작을 육체가 아닌 삶에서 찾아야 했으므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 앞에서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
원장님은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침묵 속에서 재촉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 주셨다.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척박한 의료환경에 그 따뜻한 '기다림'의 무게에 눌려 나는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버텨온 그 모든 날들이 실은 나를 갈가리 짓누르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날이었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언제쯤 나을 수 있느냐며 시계만 보던 조급함은 사라졌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를 방치했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고약하고 지독한 적이기만 했던 아픔이, 어쩌면 나를 살리라고 몸이 보내온 마지막 구조 신호였음을 깨달았다.
나의 진짜 치료는 그날 시작되었다.
약을 복용한 날이 아니라 처음으로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의 감사함은 유통기한이 없는 마음의 양식이다.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삶의 상록수가 되어주길 소망한다.
더욱 깊고 단단한 진심으로 익어가기를.
의사 선생님은 그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분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감정은 구름처럼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