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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병원

새로운 경험을 하다

by 미리나

몇 년 전, 목이 아파 정형외과를 방문했을 때, MRI나 시술을 먼저 권유받았다.


그 병원은 교통사고 전문병원이었고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만 바라보며 진통제 3일 치를 주겠다고 하셨다.


어디가 아픈지 궁금해하지도 않으셨고 병원은 그렇게 바빠 보이지 않았다.

진통제는 나도 약국에서 비전문 의약품을 사 먹을 수 있는데...

다른 병원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랑은 인연이 아니었던 걸로.


두 번 가보고 다른 병원도 가봤지만 정형외과는 왠지 모르게 나와 맞지 않다고 느꼈고 집 바로 옆에 두 곳이 있었음에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는 발열과 꼬리뼈 통증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정형외과 병원을 찾게 되었다.


치료받았던 원장님께서 소개해 주신 곳이라 그런지(?) 내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ㅎㅎ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자 어서 오시라며 얼굴을 보시고는 놀라신 듯했다. (죄송)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하셨음에도 괜찮다며 편안하게 맞아 주셨다.


부작용이 없는 포도당 주사를 쓸 거고 치료 방법을

설명해 주시며 지금 호흡이 언제부터 힘들었는지

발열 등 차근차근 그동안의 치료 과정을 확인한 후 "지금 가장 불편한 증상을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위안이 되었다.

숨이 차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기다려주셨다.





류마티스 검사 권유와 대학병원에서의 피검사 여부를 물어보셨고 이미 검사를 진행했으며 대학 병원도 싹 다 다녀왔다고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는 점을 설명드렸다.


피부과는 다녀왔냐며 홍조보다 더 심하고 일반적인 증상이 아니라며 "제 후배인 ○○대 피부과 교수가 잘 보는데 얼굴 사진을 보내도 될까요? 양해를 구하셨다.


바로 보내시더니 후배분께 받은 답변을 바탕으로 다른 환자분의 유사한 사례를 보여주셨는데 그분도 나와 같이 발열이 있었다.


그분은 피부질환인 로제시아라고 하셨고 혹시라도 나도 해당 질환이 맞는다면 근처 대학병원 고대에서 정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겠다고 하셨다.


먼저 최선을 다해 치료해 보겠다는 말씀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해 주시는 모습이 강의를 듣는 줄 알았다.

부산이 고향이시라며 전에 있던 병원이야기도 해주시고

말씀도 빠르셔서 내 정신을 쏙 빼놓으셨다.ㅎ


목, 등, 견갑골, 꼬리뼈 등 다양한 부위에 주사를 맞았는데 견갑골 부위의 통증이 없다는 점을 의아해하시는 듯했다.


내가 전 원장님께 치료받고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자, "그럼 원장님과 함께 더욱 잘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참 감사했다.


친근하게 "광진구 사세요?"라고 물으시더니 "거긴 사람이 없다면서요. (네?) 거기 사시는 환자분이 매일 죽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아지시면서 그 동네 환자분들을 저한테 다 끌고 오셨거든요. 정말 실화입니다.ㅎㅎ


"이렇게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당연히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겠어요? 그런 생각 안 들게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덧붙이셨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번에는 내가 놀라며 말했다.

"저도 옛날에 죽고 싶은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원장님께 치료받고 좋아졌어요."라고 하니 "아, 그럼 너무 다행이네요! 더 잘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라며 밝게 답해 주셨다.


"안 아프게 주사 놔 드릴게요. 아, 안 아프다~ 안 아프죠? ㅎㅎ" 주사를 맞는 동안에도 긴장을 풀어 주겠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시며 본인도 무릎에 셀프로 주사를 맞았을 때 아팠다고 하시더니 급기야 겁이 많냐 시기에 쫄보라고 했다.ㅋㅋ


그래도 주사 잘 맞는다며 웃으셨다.

특이한 케이스라 본인이 더 긴장하셨을까.^^


덕분에 딴생각할 틈도 없이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어제는 통증이 심해서 속으로 '제발 빨리 찔러주세요'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힘든 날은 통증보다 주사가 아프랴,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어서 맞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치료를 마친 후에는 물리치료 중 잠이 들었는데 직원분들이 원장님을 한 번 더 봬야 한단다.

진짜 얼굴색이 좋아졌다며 2차로 놀라셨다.


두통이 있고 어지러웠다.

명치도 답답하고 속이 메슥거려서 화장실을 계속 오가느라 괴로웠다.


주사 후 어지러울 수 있으니 자리 마련해 드릴 테니 쉬었다 가라고 하셨는데 잘 잤다며 나왔다.


너무 웃어서 배도 아플 지경이었다.

친구였다면 그만 웃기라고 싶을 정도로 웃기셨다.

요즘 의사 선생님들은 진료 끝나면 개그 학원에 다니시나 보다.ㅋㅋㅋ


결국 집에 오는 길에 진통제를 사서 먹었지만 차도가 없어 한 시간 후, 한 알을 더 먹었다.

저녁 내내 힘들어서 잠을 푹 잤더니 좋아졌다.

늘 생각한다. 잠이 명약이다.ㅋㅋ


주사 덕분에 발열은 잡히고, 약으로는 다른 증상들이 다스려졌다.

약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최근 들어 어제까지 4알을 먹었다.

역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해열에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 증상이 잡히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마다 매번 느낀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반대로 인상을 찌푸리고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으면 좋은 일이 생기려다가도 오히려 안 좋은 일만 계속 생기게 된다.


아침에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 기분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좋은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면 의사도 좋은 의사를 만나고 그 좋은 기운이 퍼져 또 다른 좋은 의사를 만나게 된다.


긍정적인 마음이 좋은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그 에너지가 나를 돕는 사람들과 상황을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환자가 많은 병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많은 사람들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얼마나 아프면 여러 의사 선생님들이 유쾌하고 스마트하게 환자를 대할까.

대단하고 놀라울 뿐이다.


수많은 사람, 그것도 아픈 환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환자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고 회복의 의지와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분들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환자인 나와 별다를 바 없을 텐데...

그런데도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이유는 긴장을 풀고 회복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고마운 의사분들을 만나면, 환자인 나 역시도 얼른 나아야겠다는 의지가 뿜뿜 솟아난다.


지치고 아파도, 여기가 고통의 터널이라 할지라도 웃어야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처럼, 웃음 속에서 회복의 힘을 얻을 수 있다.


의사가 개그맨도 아닌데 왜 그렇게 유쾌하게 환자를 대할까를 생각해 보면 긴장은 나를 망친다.

긴장을 풀면 마음도 몸도 한결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웃음은 치료의 시작이 아닐까?




힘들어도 웃자.
웃음 속에서 삶의 힘을 찾자.

웃어야 산다.
살려고 노력해야 몸도, 신경도 따라온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 웃음은 손전등처럼 길을 비춰준다.
웃음 속에서 힘을 얻고 몸은 마음을 따라 걸어간다.
노력하는 발걸음마다 몸도 자연스레 따라 움직인다.


의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대하면, 나도 저절로 긴장하고 때로는 적개심까지 느끼게 된다.


적개심뿐이랴.

'저 의사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단언해 버린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첫인상에서부터 벽이 생기면 치료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환자도 인상만 쓰고 있다면 의사 역시 그 반응을 거울처럼 비출 것이다.

서로가 방어적으로 선을 긋는다면 치료받을 의지가 생길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의사도 사람이다.

수많은 환자를 마주하며 피로와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굳어질 수도 있다.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듯, 의사도 불안과 부담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치료는 의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나부터 긴장을 풀고, 열린 태도로 다가간다면 의사도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면, 회복의 길도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의사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거든요.

그런데 원장님(소개해 주신)은 어쩜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갖고 계시고 그걸 사람들에게 전파하시는지 정말 대단하시고 좋은 의사 선생님이세요."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작년에 원장님을 소개해 주셨는데 왜 꼭 원장님께 치료받으라고 하셨는지 알겠다며 감사하다고 하니, 나에게도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렇게 진심이 오가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기에 소중한 경험을 했다.


마음의 치유는 자기 자신에게서 온다.

치료는 의사가, 치유는 환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 가는 이유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이다.

치료를 받으러 갔을 뿐인데 의사의 말이나 태도가 의도치 않게 마음에 상처를 줄 때도 있다.

친절하면 좋고 감사하지만 그것을 바라고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치료를 받고 나서 그 자체로 회복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일 뿐인데 인간적으로 대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면 한없이 감사하다.


환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공감, 헌신적인 노력에 깊은 존경심이 든다.

나는 왜 정신과 의사 선생님보다 다른 과 의사 선생님께 위로받을까.




극한 직업: 의사




대기 중 찍은 사진인데 눈두덩이 열감과 붓기는 오래갔지만
주사 후 바로 좋아지는 게 정말 신기하다.

최근 8개월 만에 40도를 찍어 응급실까지 다녀오고
‘이게 언제 끝날까’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강도와 빈도가 많이 줄었고 감정적으로도 이만큼 좋아졌으니 스스로도 뿌듯하다.

서울에서 다닐 병원이 생긴 것도 감사하고
좋은 의사 선생님 덕분에 또 다른 좋은 의사 선생님과 연결되어 어려운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헌신적으로 치료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회복감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일단 지금 행복하면 장땡이니까.


의사 선생님이 양쪽 귀 체온을 재시더니 높다고 하셨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만... ㅎㅎ




진료실을 나오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전신거울에 쓰인 뜻밖의 성경 말씀에 위로를 받았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처럼 다가왔다.

이 말씀은 바울처럼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스스로의 힘만으로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안에 나를 돕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고 나아가면 회복은 덤으로 따라온다.

하나님께서 늘 힘을 주시니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답을 찾으려 그렇게 애쓰고 어디선가 치유의 실마리를 발견하려 두리번거리지만 세상 만물과 삶 자체가 나를 치유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길 때 더 깊은 평온이 찾아온다.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내면에 존재하는 나의 힘을 믿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회복의 길로 나아가게 될 테니.

완벽하지 않지만, 병원의 도움으로 한결 편해졌다.
통증은 역시 함께 가는 건가 보다.
빼도 빼도 달라붙는 나의 살들처럼.ㅎㅎ

그렇게 싫다는데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해 주네.
그러니 나도 관리해 주며 살아야지.
다이어트도 어디 한 번에 되던가.
빼도 다시 오는데, 수년을 함께했는데,
빨리 나가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잘 흘려보냈더니 고맙게도
오늘의 힘듦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와주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이것이 감사가 아니면 무엇이 감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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