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하면 모두에게 떠오르는 공통의 냄새가 있을 것이다. 소독약과 의료도구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날카로운 냄새. 코 끝을 찌르는 화한 냄새들이 내 피부에 닿는다. 무미건조한 의사와 간호사, 살을 찌르는 바늘, 그 위를 무람없이 누르는 알콜솜. 모두가 차가운데 나만, 내 상처만 붉게 달아오르는 기분. 어쩐지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차라리 기계가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 차가운 기분 때문에 나는 병원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오래전, 알 수 없는 기침이 한달 가까이 지속되던 때가 있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고, 다양한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오랜 기침으로 갈비뼈에 금이 갔다. 기침을 하다가 그랬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은 못 믿어했다. 데이트폭력이 의심되었는지 이것저것 묻고 진단서가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퇴근길 지하철에서 열이 나고,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눈앞이 깜깜하고 식은땀이 흘렀다. 서둘러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평소 택시도, 병원도 잘 찾지 않은 성격인데 그만큼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응급실 대기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응급실이란 먼저 온 순이 아닌 위급한 순으로 환자를 봐주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상태가 위급하지 않았어서 다행이었으나 그때는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 참으로 지치고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응급실 안의 사람 구경뿐이었다. 등에 수많은 유리 파편이 박혀 실려온 술 취한 환자와 핀셋으로 하나씩 뽑아내는 의사. 아프다고 소리치는 할아버지와 발을 동동 구르는 보호자 할머니. 구급차의 소리와 위급하게 구르는 간이침대의 바퀴소리.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한 번씩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진료를 받고, 피를 뽑고, 열을 재고 나면 또다시 대기해야 했다. 그냥 집으로 가면 안 되나, 기다리다가 더 지쳐서 아픈 것 같았고, 이 차가운 곳에서 그만 나가고 싶었다.
여러 검사에도 열이 오르는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당시 메르스가 유행하던 시기라 의심을 받기도 했다), 열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링거를 꼽고 차가운 액체가 내 몸 안으로 흘러가게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림과 기다림의 연속 끝에 정상 체온으로 회복한 후 새벽 네시가 넘어서 집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다음 날부터 기침이 멎었고 나는 한 달 만에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몸에서 열이 나는 건 나쁜 균들과 잘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면역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열이 높아지거나 지속되면 몸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열을 내리는 것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래서, 병원의 모든 것들이 차가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너무 뜨겁고 간절하니까. 조금만 뜨거워지라고, 사람의 적당한 온기를 되찾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