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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Sep 24. 2024

향수

나는 향수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뿌릴 때 느껴지는 알코올 특유의 코를 찌르는 느낌도 그렇고, 한번 뿌리고 나면 향수냄새가 내 코 주변을 졸졸 따라다니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멋진 어른이란 응당 자신이 즐겨 뿌리는 향수 취향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면세점에서 세일하는 것 하나, 수제향수가게에서 향수 이름이 마음에 들어 하나. 선물로 받아서 하나. 다양한 모양과 의미와 색을 가진 향기들이 새롭게 생기면 나는 작정을 하고 두어 번 손목에 뿌려보았다. 그 후에는 예쁜 유리병의 모양으로 장식장에 진열되었다.


너의 향수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너와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을까.


네 차를 처음 탄 날 차 안에 어떤 향기가 가득 찬 기분을 느꼈는데, 자동차방향제일 거라 생각했다. 너와 하루 이틀을 넘어 만나게 되면서, 너와의 거리가 한 뼘씩 가까워지면서, 비 오는 우산 속 우리 둘의 가까운 거리에서 그 향기가 너에게 나는 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언젠가 다시 한번 너의 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자동차 수납공간에 놓인 작은 유리병을 발견했다. 향수였다.

이게 향수 냄새였구나. 처음엔 자동차방향제 냄새인 줄 알았어요.
네. 조말론 우드세이지 앤 씨솔트라는 향인데 이건 밖에서 뿌리고요. 집에서 나오기 전에 다른 향수도 뿌리고 나와요. 아마 두 향수가 섞인 향일 거예요.

집에서 나올 때와 바깥일 때 뿌리는 향수가 다르다니. 두 향수를 동시에 뿌리다니. 나랑은 참 다르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에게 나는 냄새에는 희미한 담배냄새도 섞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담배냄새와 두 가지 향의 액체가 너의 살에 닿고 다시 공기로 뿜어져 나오는, 아마도 너만이 낼 수 있는 냄새.
나는 그 냄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너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그 향을 좋아했다. 내가 작정하고 좋아한 게 네가 먼저였는지, 그 향기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너라 다 좋아하려 한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향수냄새를 좋아하지 않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라고 이야기 했을 때, 당황한 너의 표정에 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너는 최대한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담배를 피우고 왔다.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던 너에게 희미한 담배냄새가 선명해져 오면 나는 모른 척해주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노력이었다. 너는 자주 너의 감정을 숨겼고, 나는 우리의 균열을 모른척했다. 그것이 우리의 노력이라 여겼다. 우리가 깨져 산산조각 나버렸을 때, 어떻게는 파편들을 붙여보려 애쓰다 결국 날카로운 조각에 손이 찔렸을 때. 나는 내 상처를 모른 척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게 두려웠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맡게 된 향수 냄새가 너의 차 안, 우산 속 공기, 흔들리던 눈동자를 떠올리게 되었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 향,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냄새. 나는 잘 빚어진 나의 흉터를 쓰다듬었다. 나는 향수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향수를 사모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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