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해가 들지 않아 어둡고 습한. 죽은 기운의 공기가 가득 찬. 숨을 들이마시면 내 작은 콧구멍이 찐득해지는 기분. 지하냄새에 떠오르는 일곱 개의 계단.
내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은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가 살던 집과 비슷했다. 주택 구석에 깊숙이 딸려 있는, 일곱 계단을 더 내려가야 현관문이 보이는 꼭 숨겨놓은 것 같은 집. 다른 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곱 개의 시멘트계단과 방 깊숙한 천장의 꼭짓점에 피던 곰팡이, 그리고 그때의 냄새는 뚜렷하다.
비가 많이 내렸던 어느 날, 밑으로 밑으로 흐르던 빗물이 우리 집으로 들이치고, 주방 바닥에 고인 빗물들이 발바닥에 찰박거렸다. 이웃집 사람들과 다 같이 세숫대야로 열심히 빗물을 퍼 날랐는데, 집 위로 퍼 나른 물은 다시 일곱 계단을 타고 밑으로 밑으로 내려와 고여버렸다. 어린 나는 2층의 주인집으로 잠시 들어가 있었다. 처음 들어가 보는 2층의 공간이었다. 아주머니는 김치를 넣은 비빔국수를 해주셨고, 그 집 아이들과 작은 상에 모여 앉아 국수를 먹었다. 맵거나 짠맛없이, 시거나 감칠맛없이 아주 달기만 한 국수였다. 맛이 없는 그 국수를 어린 나는 눈치껏 남기지 않고 먹었다. 그날 이후로 방 안의 곰팡이는 조금씩 번져갔다.
또 다른 어느 날, 엄마는 일을 하러 가고 집에 혼자 있었을 때였다. 쿵- 팡- 탁. 무언가 터지고 폭발하는, 엄청나게 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커다란 소리에 집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어린 나는 전쟁이 난 것이라 확신했다. 이런 큰 소리는 폭탄이나 대포, 탱크에서 나는 소리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이 아니고선 이 소리를 내 머릿속의 어떤 것과도 조합할 수 없었다.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했다. 전쟁이 나면 엄마를 어디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집을 나서기로. 골목에 있는 주택에, 아주 깊숙하게 숨겨져 있는 반지하의 우리 집. 그 안의 나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기 위해 보다 위로, 보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나가다가 마주치는 어떤 사람이든 두 손을 들고 살려달라고 울어야지. 그리고 엄마를 찾아달라고 애원해야지. 어린 나의 야무진 계획을 앉고, 두려웠지만 밖으로 나섰다. 일곱 계단을 오르는 내내 굉음은 멈추지 않았다. 끝났나, 싶으면 또다시 쿵-팡-탁- 자꾸만 무언가가 터졌다.
그렇게 지하에서 지상층으로 도달했을 때. 푸른 저녁 하늘에 터지는 커다란 불꽃을 발견했다. 불꽃놀이. 반지하에서는 보이지 않던, 평화로운 바깥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폭탄들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몰래 부끄러웠다. 방금까지의 계획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가 지하를 좋아하지 않는 게 반지하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공연장이나 가게, 노래방 등 간혹 지하에 있는 공간을 향할 때 내려갈수록 어두워지고, 습한 공기가 느껴질 때 아주 조금 꺼려진다. 너무 작아서 가끔은 나조차도 눈치 못할 만큼의 두려움. 다만, 어느 누군가가 지하주차장의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지하에 대한 작은 두려움이 나만이 가진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쩌면 어린 시절의 일곱 계단 밑 그 장소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하루마다 아주 조금씩 피어나 눈치채지 못했던 곰팡이처럼, 나조차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얼마 전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지역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유명한 관광명소 중 하나가 데린쿠유라는 지하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말만 들어도 느껴지는 지하의 습하고 어두운 공기가 콧구멍과 목구멍을 가득 채우는 기분. 왜인지 숨이 덜 쉬어지는 기분.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던 만큼, 친구가 가장 기대하는 관광지였던 데린쿠유를 방문하게 되었고, 나는 나름의 용기를 내어 지하로의 첫 발을 내디뎠다.
데린쿠유는 생각보다 더 깊고 어둡고 좁았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작은 통로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가파르게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중간에 올라갈 수 없었다. 내 뒤로 바짝 따라 내려오는 수많은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서늘해지는 온도, 습한 공기, 햇빛하나 없는 어둠. 그 지하의 냄새들이 온몸에 다닥다닥 달라붙고 팔에는 닭살이 돋아났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할 까, 무섭고 막막할 때 즈음 계단의 끝이 보였고, 그곳에는 거대한 마을이 있었다.
우연히 발견된 데린쿠유는 85m 깊이의 최대 3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거대 지하 도시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종교박해를 피하기 위해 기독교인이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고, 그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여러 가지 추측도 있으며, 현재도 연구 중이다. 아직은 우리가 모르는 게 많지만 분명한 건 이 지하는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방이나 화장실은 물론 예배당, 포도주를 만들고 저장하는 곳, 환풍구, 가축을 키우는 공간 등 삶을 살아내기 위해 80m의 지하를 파고 구멍을 내고 공간을 만들었다.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해 지하를 선택했다. 살기 위해 점점 더 바닥으로 내려가야 했다. 어쩌면, 이 지하의 습한 냄새가 오래전 그들에게는 삶의 냄새였을 것이리라.
한국의 반지하는 외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다. 오래전,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건축법을 개정하여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건설하게 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건물의 반지하를 참호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살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 그 지하실에 세를 내고 거주하기 시작했다. 삶을 살아내기 위한 지독한 의지. 그게 어쩌면 지하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지하로 내려가게 되면 데린쿠유의 습기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삶의 의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옛날 옛적 그곳에서 삶을 살아낸 그들을 상상해 보는 거다. 지하를 파내고 거실과 방을 만들었을 그들을. 예배당과 축사를 만들고 삶을 영위했을 그들을. 내가 그 지하 깊숙한 곳에서 포도주를 짜는 상상도 더한다. 그러면 괜히 마음이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