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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Oct 01. 2024


책. 책 냄새. 책의 냄새. 종이, 나무로 만든, 희미한 나무의 냄새. 글씨, 새겨진 잉크의 냄새. 묶은, 제본된 접착제의 냄새가 한데 섞인. 어떤 종이를 썼는지에 따라서, 책이 얼마나 늙었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는. 참 단단하고 든든해서 잠시 기대어 눕고 싶은 냄새.


- 요즘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 책. 종이책. 나는 한 번도 전자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당신의 질문에 고른 답이 바로 종이책이었다. 나는 책의 물성을 사랑한다. 내가 골라 집을 수 있고,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넘기는 감촉도 좋고, 좋아하는 문장을 오래 두고 보다가 나만의 색깔로 줄을 긋는 일도, 나중에 책장에 꺼내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는 일도, 후에 누군가에게 그 문장담긴 책을 선물하는 일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책의 냄새가 가장 좋다. 책을 펼쳐서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을 때, 책의 내용에 너무 깊이 빠져서 한숨 쉬어갈 때면 나는 코를 책에 묻고는 냄새를 맡는다. 그럼 그 책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서점을 자주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딘가 여행을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일이 생기면, 근처에 동네책방이 있는지 꼭 검색하고, 방문한다. 외국의 서점도 상관없다. 알라딘 중고서점도 좋다. 간혹 작가의 서명이 되어있거나 누군가의 메모가 적혀있는 책도 즐긴다. 그건 그 책만의 냄새를 가지고 있으므로, 냄새를 맡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 집 근처에는 작은 서점 하나가 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날, 주변의 서점을 찾던 중 발견한 곳이었다. 네이버 지도를 보며 그곳을 처음 방문 했을 때가 선명히 기억난다. 큰 간판도 없이 주택가에 숨겨놓은  같은 곳이라 도착해서도 여기가 맞나, 의심하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건물 안,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 2층의 계단 끝에 그곳에 있었다.

그곳의 첫 방문은 흥미로웠다. 책과 함께 제로웨이스트 물건들을 팔았고, 음악 대신 새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디퓨저나 북퍼퓸의 냄새가 아닌 편안한 냄새가 풍겼다.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과 사장님의 환대에 나는 그 서점을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그곳의 새소리가 어디서 흐르는지, 그곳의 냄새가 어떤 것인지 차츰 알게 되었다. 오래된 건물이 내는 냄새, 책들이 소란스럽게 내는 글의 냄새, 제로웨이스트코너에 진열된 리필 세제나 포장된 비누 따위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향기가 한데 섞인, 그러니까 그 서점만이 낼 수 있는 냄새였다.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에 기분이 내내 좋지 못했다.  그 공간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그렇게 무력하게 떠나보낸 소중한 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요즈음 무엇을 가장 좋아하냐는 책방사장님의 질문에 대답을 다시 하고 싶다. 당신의 서점이라고.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느낄 수 있는 당신의 환대와 은은한 책방의 냄새와 속살거리는 새소리를 몰래 좋아했다고. 앞으로 책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당신의 공간을 기억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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