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냄새. 발을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나는 쾨쾨한 냄새. 누군가에겐 불쾌하고, 누군가에겐 부끄러운. 어쩌면,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땀의 냄새. 지독한, 고약한 같은 형용사와 같이 쓰이며 악취로 분리되는, 어쩐지 긍정적일 수 없는.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유럽 여행을 할 때 일이다.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에서 유레일패스를 잃어버렸다. 유레일패스는 유럽 간 기차를 마음껏 탈 수 있는, '내일로'의 유럽버전이다. 여행 전에 몇십만 원이나 주고 배송받은 티켓이었고, 파리에서의 기차가 유레일패스로 가는 첫 여정이었다. 기차에 탑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무원이 검표를 시작했다. 매고 있던 작은 가방 안에도, 모든 주머니를 뒤져도 티켓이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뛰고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무릎을 꿇고 커다란 캐리어를 열고 뒤졌다. 주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티켓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 첫 개시한 유레일패스를, 그러니까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몇십만 원짜리 티켓을 잃어버린 것이다.
-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해. 거기서 발권을 다시 받아 타도록 해.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음역에서 내려야만 했다. 프랑스인지 독일인지도 분간이 안 가는, 기다리는 승객도 없는 시골의 아주 작은 역이었다. 나는 역사 안으로 들어가 바로 창구로 향했다. 유레일패스를 재발급받고 싶다는 말에, 이곳은 너무 작은 역이라 어렵다고 했다. 여기서 프랑크푸르트행 열차 티켓을 산 후 그곳에서 발권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선택지가 없었다. 예정에 없던 프랑크푸르트행 티켓을 구매한 후,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탑승했다. 알 수 없는 여정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손짓발짓으로 서비스센터를 물어 찾아갔다.
- 유레일패스를 잃어버렸어.
- Oh, Fuck.
- 그러게 말이야. 재발급해줄 수 있니?
- 그거 재발급 안돼. 하나 새로 사야 해.
몇십만 원짜리, 내 이름도 새겨져 있던 그 유레일패스가 재발급이 안된다니. 두 번째 시련이었다. 나는 돈 없는 배낭여행객이었고, 유레일패스도 큰맘 먹고 산 건데, 재발급은 너무도 당연히 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내 영어실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인종차별? 아니 유레일패스 꼭 필요한가? 온갖 생각이 뒤엉켰다. 그러나 베를린 다음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까지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선택지가 없었다.
가진 돈을 털어 내고는 유레일패스를 새로 샀다. 예정보다 8시간이 더 늦어져서야 원래 여행지였던 베를린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더 최악이 있을까.
그러나 최악은 갱신되는 법. 휴대폰 배터리도 다된 상황에서 예약해 둔 한인민박집의 위치를 알 방법이 없었다. 베를린역에서 도보로 10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근처 가게에 들어가 구글지도로 위치를 확인한 후 주위를 맴돌아도 찾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베를린역으로 돌아가 마지막 두 개의 동전을 사용해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동전은 거짓말같이 공중전화기가 먹었다. 심장이 쿵, 두 번째 동전을 넣었다. 이것마저 안되면 나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하는 순간 가는 신호음, 그 끝에 들리는 목소리.
-여보세요?
-……….흑
나는 '여보세요' 라는 네 글자에 울음이 터졌다.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한국말인가. 그게 뭐라고 그간의 설움이 폭발했다.
-여…..여보세요?
-흡….저 오늘…. 흑…. 거기 예약했는데 흑….. 흡….. 위치를 못찾겠….어요 흑.
한인민박 사장님은 다짜고짜 울어버리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한걸음에 베를린역까지 찾아왔다. 나는 그제야 운 게 민망해져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도착한 곳은 부부 사장님이 하시는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주택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한국식의 숙소, 거실에는 큰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었는데 유학이나 시험을 보러 온 음악 전공 친구들이 묵기도 한다고 했다.
여자 사장님은 나를 위해 늦은 저녁을 차려주셨고,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을 사장님 부부와 사장님의 어린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늘 있었던 하루의 여정을 나열했다.
- 엄마, 무슨 이상한 냄새나.
아이의 천진한 솔직함.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건 내 냄새였다. 오랜 시간 걷고, 뛰고, 동동거린 발에서 나는 온갖 고생의 냄새.
- 제 발냄새인 거 같아요.
나는 왜 그랬는지 솔직하고는 바로 그 민망해졌다. 그냥 모른 척할걸.
- 오늘 정말 고생이 많았나 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다정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장님에게 나는 또 한 번 찡한 마음을 달래고, 차려준 밥을 싹싹 긁어먹은 후 샤워를 했다. 특히나 발을 꼼꼼히 씻었다.
여자 사장님은 내가 묵었던 4일 내내 아침을 차려주신 후 김밥을 쿠킹호일에 말아주셨다. 나는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 허기가 지면 싸주신 김밥을 까먹었다. 여행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가면, 언제나 맛깔나게 차려진 저녁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전에는 방에 들러 오늘은 괜찮았는지 물어보셨다. 체코로 떠나는 날에도 이것저것 싸주시고는 도착에서 꼭 연락하라고 당부하셨다. 결혼은 해본 적 없지만, 꼭 시집가는 딸에게 바리바리 싸 보내는 친정엄마의 모습 같았다. 내가 유럽에서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로 독일을 꼽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나의 발냄새가 싫지 않다. 너의 냄새도 그렇다. 그건 오늘 바쁜 하루를 보냈을 우리의 수고일지도 모른다. 그 발냄새가 싫지 않은 건 그 노고를 알아주는 다정함이다. 특히나 사랑하는 이의 것이라면 꼬숩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너의 발을 장난스럽게 나의 코에 가져다 대는 건,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