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향긋하거나 비릿한. 청량하거나 거북한. 생으로 씹어먹고 절여서 반찬으로도 먹고 잘게 썰어 피부에도 양보하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오이차별(?)에 시달리던 오이불호가였다. 오이에 관한 가장 첫 기억을 떠올리면 급식시간, 메뉴명도 잊지 못하는 오이냉국이 나왔던 날이었다. 하루 중 가장 고대하는 점심시간에 오이냉국이라니, 그 처참한 심경은 말을 못 한다. 다른 반찬들을 싹싹 긁어먹고는 오이냉국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그걸 본 담임선생님은 내 옆에 앉아 오이냉국을 먹이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식판을 반납하러 나가면서 나를 흘긋하고 쳐다봤다. 선생님은 숟가락으로 오이냉국을 떠 내 입에 댔다. 나는 울다가 담임선생님의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에 쫄아 억지로 입에 넣고는 토했다. 그 달고 신 국물 사이로 비릿한 오이냄새가 입안을 가득 채웠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잔인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때는 어린이의 편식을 지도하는 참 스승의 자세였으므로, 음식이 먹기 싫어 울고 음식을 먹고 토한 내가 잘못했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내가 오이를 싫어하는 건 야채가 맛이 없어서 편식하는 거라 여겼다. 엄마는 내 앞에서 생 오이를 아작아작 씹어먹으면서, 언제 커서 오이를 먹을 것이냐 타박했다. 나는 막연하게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오이가 좋아지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 여러 순간들이 겹쳐지면서 나는 오이를 못 먹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남들은 다 먹는데, 나만 먹지 못하는 것. 왼손잡이인 나를 혼내고 달래 오른손으로 밥을 먹게 하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한 우리 엄마 덕분에 나는 오랜 시간 오이라이팅(?)을 당하며 자라왔다.
그러던 나는 커서 성인이 되고 회사 동료들과 냉면을 먹으러 갔다.
- 물냉 세 개에 비냉 한 개인데, 물냉 하나에는 오이 빼주세요.
내 앞에 앉은 동료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분도 오이를 못 드시는구나, 생각하고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냉면들. 내가 시킨 냉면 위에 수북이 쌓인 오이를 보았고, 나는 늘 그랬듯이 조용히 오이를 앞접시에 골라내기 시작했다.
- 미리 씨도 오이 못 드세요?
- 네.
- 그럼 저처럼 오이 빼달라고 하시지.
- 그러게요.
그러게.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그 말을 왜 하지 못했지? 지금까지?
- 오이 못 먹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 그쵸. 그거 알아요? 오이 못 먹는 게 유전자 때문이래요. 오이에 있는 어떤 성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 그럼 오이 못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식가겠네요?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면서 내가 골라놓은 채 썬 오이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껏 건져놓은 수많은 오이들도 떠올렸다. 내가 견뎌냈던 숱한 오이차별(?)의 순간들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날로 나를 지배하던 오이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자주 부끄러워야 했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왼손으로 가위질을 할 때. 김밥에 오이를 골라내도 밥알에 오이 맛이 베여있어 먹기가 싫을 때. ‘편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학기 초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 불려 가 측은한 표정을 견뎌야 할 때. 나는 언제나 소수였고, 이상했고, 부끄러웠다. 지금의 나는? 오이를 못 먹어서 미식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예술적일 것이라는 추측도 받는다.
물론 여전히, 우리 엄마와 같은 시선도 존재한다.
- 아직도 오이를 못 먹니?
물어보는 엄마에게, 그게 유전자 때문이라고, 엄마가 날 이렇게 낳았으며, 이게 사실 편식이 아니라고 설파하는 대신 나는.
- 윽 오이 싫어.
라고 대답한다. 그거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