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좋아하는 특이한 냄새를 떠올려보자. 강아지의 꼬수운 발냄새, 지하주차장냄새, 페인트와 기름냄새, 또 전혀 예상치 못하는 다른 냄새도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파마약 냄새를 좋아한다. 아마도, 특이한 것으로는 1등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동네 아주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용사였다. 헤어디자이너보다는 미용사라는 표현이 맞는, 아주 작은 미용실. 그 안쪽으로 작게 딸린 단칸방이 우리가 사는 집이었다. 방 안에서 나무로 된 헐거운 미닫이 문만 열면 미용실 전부가 보였고, 미용실의 출입문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훤히 보이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이었다. 엄마는 파마에 쓰이던 형형색색의 파마롯드와 고무줄, 파마종이를 사용한 후 세척해서 방 안에 널어놓았다. 물기가 마른 파마 용품들을 다시 차곡차곡 포개어 정리하는 일이 내 몫이었는데, 미용실 단골 손님들이 이를 보고 어린애가 엄마를 도와준다며 쑥스러운 칭찬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형편이 조금씩 좋아졌고, 미용실은 더 넓은 곳으로, 집은 집 다운 곳으로 분리하여 이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미용실을 방문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집과 일터가 분리되면서부터 미용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밤,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고,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엄마와 나는 늦게까지 더위에 잠 못 들고 뒤척였다.
“도저히 안되겠다. 미용실에 가서 자자.”
우리는 간단하게 짐을 챙겨 에어컨이 있는 미용실로 향했다. 손님들이 낮는 긴 의자를 붙여 침대를 만들어 누었다. 차갑고 기분좋은 에어컨 바람과 찐득하게 살에 붙은 가죽 소파의 느낌, 그리고 오랜만에 맡아보는, 미용실에 공간에 밴 파마약 냄새. 그 모든 감각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게 꼭 캠핑이라도 온 것 마냥 신이 났었다.
엄마는 나이가 들고 손목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미용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정리했다. 그 이후로 나는 파마나 염색을 하고 나면 한 번씩 내 긴 머리카락을 잡아 내 코에 가져다 대는 습관이 생겼다. 나무 미닫이문의 감촉과 미용실캠핑이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고, 머리를 감을수록 파마약 냄새가 희미해지는데, 그게 못내 아쉽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파마약 냄새가 난다. 근처에 미용실이 있구나,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주택가 사이에 있는 작은 미용실이라 더 반갑다. 통창으로 된 미용실 안을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누군가의 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게 안으로 어린 내가 앉아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