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항암
입원한 지 이틀째 아침, 오전 회진 시간.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내 암의 종류는 성장 속도가 빨라 먼저 항암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정맥주사로도 가능하지만, 치료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병변 근처에 ‘케모포트’를 삽입하는 게 더 낫다며, 오늘 수술방에 자리가 나는 대로 시술하고 내일부터 바로 항암을 시작하자고 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항암’이란 단어를 현실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그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남편은 내 대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냥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세요”라는 말로 질문을 막았다. 그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처음 겪는, 너무도 무섭고 낯선 순간이었다. 조금은 삭막하게 느껴진 그 태도에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고자 병원 정원에 나와 있었는데, 병실로 바로 들어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수술방이 잡혔으니 곧바로 시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병실로 돌아오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걸어가면 안 될까요?” 물었지만, 시술 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눈높이에서 보이던 병원의 하얀 벽은 사라지고, 이제는 환자만이 볼 수 있는 천장과 밝게 켜진 형광등이 시야를 채웠다. 하나, 둘… 등의 개수를 세며 이동하는 침대 위에서 나는 B동을 지나 A동으로 옮겨졌다.
코끝을 자극하는 소독약 냄새, 의료진의 목소리, 달그락 거리는 의료기구들,
부분마취 상태의 내 몸은, 낯선 감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내 몸에 삽입되는 ‘케모포트’라는 존재를 모든 감각을 날세우며 낯설게 받아들였다. 묵직한 통증이 느껴질 즈음, 본드로 고정을 마친 후, 약 20분 만에 나는 다시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수술복에 묻은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생했어.” 말없이 나를 다독여 주었다.
암환자로서의 첫 치료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몸에 삽입된 케모포트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잠시,
문득 머릿속에 스쳐간 생각 하나가 가슴을 철렁 이게 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머리카락이 빠진다."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로 닥치고 나니 그 사실이 현실처럼 와닿았다.
오늘이 지나면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하나씩 빠져나갈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제야
'왜 눈썹 문신을 안 하고 병원에 왔을까…'
하는 자책이 시작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하기가 두려웠고,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나를 덜 낯설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고 싶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조심스레 눈썹 문신을 해도 되는지 여쭈었다.
주치의 선생님께 문의한 뒤 알려주겠다는 답을 받고,
나는 병원 근처 눈썹 문신 시술 가능한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저녁 회진 시간.
주치의 선생님께선 내 질문을 들으시곤
“그걸 뭐 하려 해요?” 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다.
속상함이 마음 한편에 쌓이려던 찰나, 선생님의 표정은 곧 진지하게 바뀌었고
내일부터 시작될 항암치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항암치료의 부작용, 치료 일정, 주의사항…
머릿속에 뭔가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내 마음을 뒤흔든 건,
눈썹이 사라진 내 모습이었다.
항암의 고통보다도,
눈썹이 다 빠진 낯선 내 얼굴이
더 무섭고, 더 낯설게 느껴지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