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간의 롤러코스터

암이라는 단어와 친해기지 연습

by Mirmamang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가 정해지기까지의 20일.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삶에 갑자기 들어온 불청객을 받아들여야 했다.

'암'이라는 두 글자는 생각보다 무겁고, 낯설고, 잔인했다.

이유 없이 두려웠고,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은 나를 삼켰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휘청였다.


엄마는 늘 말했다.

"아빠가 큰일 있을 때나, 너희들이 시험 앞두고 있을 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이더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꾸준히 기도하면 그 마음이 결국 하늘에 닿는 거야."

그 말이 떠올라, 나도 아침 7시에 108배를 시작했다.

무릎이 아팠고, 숨이 차올랐지만 기도는 어지러운 마음에 중심을 잡아주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암’이라는 단어와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나갔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20일이 흘렀고 드디어 병원을 갈 날이 다가왔다.

수술 시간도, 퇴원 날짜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도저히 아빠와 시부모님께 이 사실을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남편은 “수술하고 퇴원하면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일단 말을 아끼자 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원 당일, 시부모님은 일주일치 짐을 싸서 집으로 오셨다.

간단히 식사를 하며 아이들 학원 일정도 공유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문득 물었다. “암은 아니지?”

그 순간, 내 시간은 얼음처럼 굳어지며 멈춰 버렸고 남편이 대신 대답했다.

“작은 혹이 있는데, 수술하면 괜찮대요.”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마음의 평화로움을 가장한 채 다시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에 들어섰다.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무언가 되돌릴 수 없는 문턱을 넘은 기분이었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나는 그저 병원을 방문한 한 명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자 나는 명백한 '환자'가 되었다.


수술 전 검사들이 예정되어 있었다. MRI, Bone scan...

오늘밤부터 내일까지 이어질 검사 결과를 보고 수술 날짜를 최종 결정한다고 했다.

병원 식당에 가는 것조차 환자복 차림의 나는 허락되지 않았다.

작은 제약 하나에도 마음은 묘하게 불편해졌다.

이제 내 삶의 주도권이 잠시 병원과 의사에게 넘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검사 시간을 기다리며 병원 밖 벤치에 앉아 남편과 바닥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들고, 숨을 고르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전화를 걸었다.

언니에게, 동생에게, 형님에게.

조심스레, 그러나 담담하게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혹여라도 그분들이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놀라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곁에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20일 동안, 나는 끝없이 오르내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위에 있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높고 가파른 길을 지나야 할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나는,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이면서도

한 사람의 암 환자로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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