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마주한 어느 날, 108배를 시작했다

암을 안고 살아가기 첫 스텝

by Mirmamang

2024년 6월 7일 금요일.

그날,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아이 셋을 키우며, 가족을 돌보며, 나라는 존재를 지우지 않으려 애쓰며 버텨온 시간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내려진 이 소식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여야만 했을까. 병원에서 오진한 건 아닐까. 누군가 장난을 친 건 아닐까.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진단을 받은 그날은 그저 혼란뿐이었다.


다음 날, ‘내 몸 안에 암세포가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무게를 실어왔다.

씻을 때, 가슴을 스치기만 해도 괜히 움찔하게 되고,

“오늘 점심 뭐야?”라고 묻는 1, 2, 3호기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아직 엄마 손이 한창 필요한 아이들인데...’

아직은 병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이 어린아이들에게 도대체 ‘암’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약 이 일이 내 가족에게 닥쳤다면 나는 아마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찾아보고,

치료법을 알아보고, 전문가들을 수소문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일이 되니, 검색창에 ‘암’이라는 단어를 치는 것조차 두려웠다. 지레 겁부터 먹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남편이 조심스럽게 한 권의 책을 건넸다.

“이 책 한 권만 읽어봐. 여러 권 읽어봤는데, 이건 꼭 읽었으면 좋겠어.”

한만청 박사님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그렇게, 나는 ‘암 환자’라는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 남편은 아이들을 불러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1년 동안 치료를 해야 해. 그래서 아빠가 엄마 몫까지 더 해야 하고, 너희도 조금 도와줘야 해.”

아직 어린 삼 남매는 말없이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이니까. 힘든 일이 있을 땐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해. 그러면 뭐든 잘 이겨낼 수 있어.”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주말엔 밀린 업무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삼 남매의 등하교, 학원 라이딩, 식사 준비까지 다 할 수 있으니 지금은 흔들리지 말고 그저 이 상황을 잘 견뎌만 달라고.


나는 암이라는 단어와 매일 같이 살아야 한다. 무섭고, 두렵고,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그 안에서도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내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를 부를 것이다. 엄마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엄마니까,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마음은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막연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암'이라는 존재가 주는 커다란 두려움이 밀물처럼 나를 덮쳐왔다. 그때, 화장대 위에 올려둔 미륵불, 그리고 엄마가 생전에 기도하실 때 늘 손에 쥐고 있던 염주가 눈에 들었다. 엄마는 8년 전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왕 내게 온 병이라면 받아들이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달라고 빌자.’


나는 조용히 108배를 시작했다.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고, 그저 내 마음의 중심을 붙들기 위해.


어릴 적부터 엄마는 말하셨다.

“어려운 일 있을 땐 관세음보살을 불러. 마음이 가라앉을 거야.”


그 말을 따라,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엄마가 남긴 염주를 손에 쥐고, 그렇게 나는 암 환자의 삶을 시작했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이제는 조금씩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보려 한다.

지금, 나는 여전히 세 아이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이며, 어느 날 갑자기 암을 진단받은 환자이기도 하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를 붙드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엄마를 대신한 미륵불상@mir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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