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에서 한 달을 살아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항공권을 비교하며 일정을 맞추는 일상이 즐거웠다. 그런데 여행 준비에 집중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우리 건강검진 숙제 끝내고 가자.”
그 말에 이끌려 5월 29일, 급히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늘 그랬듯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 무심히 흘려보낸 내 건강에 대한 안이함이 그날을 가볍게 만들었다. 검진 도중 유방 초음파를 하던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결과 기다리지 마시고, 바로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마침 1호기가 청소년문화해설사 시험을 2주 앞두고 있어 마음이 더 복잡했다. 걱정보다는, 아이의 시험이 우선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근처 유방외과에 예약을 하고 남편에게 무심히 이야기하자, 그는 바로 말했다. “그럴 거면 큰 병원으로 가자. 지인 통해서 강북삼성병원 예약했어. 이틀 뒤야.”
의료파업으로 종합병원 진료 잡기가 어려운 시기였기에, 나는 ‘참 운이 좋구나’ 싶었다.
5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의사는 외부에서 가져온 초음파 화질이 낮을 수 있다며 다시 초음파와 X-ray를 찍자고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조직검사도 즉시 진행할 거라고 덧붙였다.
초음파를 하던 중, 의사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로 조직검사할게요.”
마취크림이 발라졌고, 5개의 굵은 주사 바늘이 내 가슴을 천천히 통과했다. 마취는 피부 표면에만 국한되어 있어, 찌르는 듯한 고통이 짧게 여러 번 스쳐갔다.
“2주 후에 결과 들으러 오세요.”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진료는 끝났다. 돌아오는 길, 어지럽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한 기분만이 나를 따라왔다. 그로부터 사흘 뒤,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결과가 빨리 나왔대. 6월 7일에 들으러 가자.” 요즘 같은 의료대란 속에서 빠르게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에 감사했지만, 내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결과를 듣고, 얼른 1호기의 시험 준비에 집중하자."
6월 7일, 남편과 함께 찾은 병원 복도는 많은 환자들로 붐볐다. 지난번 검사를 맡았던 교수님이 아닌, 다른 교수님의 대기실로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별다른 감정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복도 건너편에서 눈물을 훔치던 중년 여성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 눈물 너머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마음이 조용히 떨려왔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았다.
“결과 안 좋대도… 치료 잘하면 되니까, 겁내지 마.”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안 좋은 결과’란 무엇일지 생각이 멈춰버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교수님이 말했다.
“유방암 2기네요. 바로 수술합시다. 6월 27일이 좋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정지된 듯했고,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상담을 마치고 향후 일정을 설명하는 간호사님 앞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지금 이게 내 현실이라니...
병원을 나와 남편과 함께 정동길을 무작정 걸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앉아 수문장 교대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평화로웠고, 거리의 공기는 맑았지만, 내 안은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시립미술관 쪽으로 걸어 올라가 벤치에 앉았을 때, 남편이 처음으로 지난 일주일을 이야기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섭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어.”
그 말 앞에서 나도 결국 또다시 울고 말았다. 아내의 암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혼자서 모든 정보를 찾아보고, 밤마다 관련 서적을 뒤적였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책을 부쩍 많이 산다 싶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암 관련 책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렸다. 그는 말없이 나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그리고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