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내 몸은 말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이 삶을 왜 붙잡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절반쯤 진행된 표적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익숙한 루틴이었다. 피검사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일.
무언가를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으려 애쓰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진료실에서 마주한 주치의 선생님은 예상 밖의 말을 꺼내셨다.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서, 오늘은 주사를 맞을 수 없다고 했다.
"케사 일라의 부작용 중에 혈소판 감소가 있어요.
정상 수치는 150,000인데, 지금은 45,000 정도예요."
생각보다 많이 낮았다. 7차까지 계속 맞아온 주사였지만, 그동안 수치는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고 오늘은 결국, 멈춰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치료가 멈춘다는 건 단순히 ‘하루 쉬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미 내 달력에 기록해 둔 내 치료일정이 마무리되는 날짜가 연기되는 건 둘째 치고,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안정을 권하는 말 너머로, 내 상태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읽히는 것 같았다.
주사를 맞을 수가 없는데 굳이 우겨서 주사를 맞는다면 혈소판은 더 떨어질 것이고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힌다면 뇌출혈의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데 나는 그저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진료를 마무리하던 순간, 주치의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코피는 안 나요? 몸에 멍은요?"
나는 멍은 없다고 답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건 보라색으로 번지는, 익숙하게 생각하던 ‘멍’의 모습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한 번 다리를 볼까요?” 하시며 의자에서 일어나셨다.
내가 무심코 넘겨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내 다리엔 빨간색의 작고 촘촘한 점들이 여러 개 생겨 있었다.
"이게 바로 혈소판 감소로 생기는 멍이예요."
나는 멍이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아예 몰랐다는 게 더 정확했다. 암까지 걸렸는데도 나는 내 몸의 변화를 이렇게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갑작스레 자책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내 몸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와달라고. 좀 더 봐달라고. 그리고 이제는 잠깐 쉬어가자고...
치료는 언제나 마음의 준비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멈춤은 늘 생각보다 더 갑작스럽다.
하지만 멈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시간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저 오늘은 내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에 잠시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 몸에 필요한 영양제를 상담받고 바로 주문을 했다.
이 약을 먹어가며 이 또한 잘 이겨내 보자.
암수술도 하고, 항암치료까지 했는데 혈소판 떨어지는 게 뭐 대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