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은 Odyssey of the Mind라는 창의력 올림피아드 대회에 2년 동안 참가했다.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아이들은 대회를 즐겼고, 어느새 올해 대회가 또 다가왔다.
사실 나는 투병 중이었기에 당연히 아이들은 올해는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던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마음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참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1호기와 친구들, 2,3호기와 친구들, 두 팀을 지도했지만 올해는 상황상 힘에 부치지 않도록 나이 차이가 있더라도 1,2,3호기 한 팀으로만 진행하기로 했다. 예선 마감일 전까지 팀을 꾸리고, 서류를 준비해 예선을 통과했다. 본선까지는 딱 한 달. 한 달 동안만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한 달만큼은 내게도 분명한 살아가는 이유가 생겼다.
우리 팀의 이름은 "Spring is coming"
나에게도 따뜻한 봄날이 곧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팀명을 정했다.
올해 우리 팀이 선택한 주제는 다카르 랠리. 우리는 사하라 사막과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블랙홀까지 통과하는 자동차를 만들고, 끝까지 완주하는 이야기를 완성하기로 했다. 작년과 달리 직접 사람이 타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기에 남편의 도움이 절실했다. 엔지니어링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무조건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추운 겨울, 자재상가를 돌며 기본 재료를 사고, 직접 재단하며 하나씩 맞춰갔다.
배터리,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아이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만큼 자동차는 튼튼해야 했다. 하지만 성능 좋은 배터리를 쓰기에는 대회 예산이 한정적이었다. 남편은 밤마다 구동 방식을 고민하다가 꿈속에서도 자동차를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 꿈에서 바퀴가 잘 굴러갔는데…”라며 다시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추운 차고에서 울고 웃으며, 자동차는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추어 갔다. 결국 태양열 에너지와 전기를 병행하기로 결정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자동차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특히 내가 한 달간 붙들고 살아온 이유가 무너져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짧은 한 달이었지만, 그 시간은 참으로 길고 깊었다. 아이들은 협력하는 법을 배웠고, 남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직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자동차가 완성된 순간, 그것은 단순한 대회 출품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든, 살아가는 이유이자 증거였다.
드디어 대회 날이 밝았다.
동생 가족들은 힘겹게 준비한 대회에 힘을 보태고자 응원을 와줬고 아이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의상과 소품을 챙기고, 대사를 마지막까지 맞춰보았다. 짧디 짧은 한 달 동안 준비했지만, 그 안에는 온 가족의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각양각색의 아이디어와 작품들이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한 장치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듯한 무대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우리가 만든 자동차 하나와 ‘Spring is coming’이라는 이름과 암투병에도 아이들을 지도해야겠다는 꺾이지 않는 마음만은 그 어느 것보다 컸다.
1호기의 손이 차갑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리더로서 대사도 많고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했기에 떨림이 있었고 나 또한 마음이 불안했다. 과연 자동차가 무대 위에서 제대로 달려줄까? 그 순간까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무대 위로 소품과 배경을 세팅하고 우리는 객석에 앉아 아이들의 발표를 마음 졸이며 보기 시작했다.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고, 마침내 블랙홀을 통과한다는 스토리 속에서 자동차는 조심스레 출발했다. 처음엔 느릿느릿하더니, 곧 힘을 받아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갔다. 아이들은 준비한 대사를 이어가며 랠리를 완주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가 환호하며 손을 들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풀린 웃음이 가득했고 난 눈물이 핑 돌았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한 달간의 노력,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보낸 시간, 그리고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이 벅찬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삶은 때로 우리에게 너무 큰 시련을 안기지만, 그 속에서도 살아가는 이유는 늘 곁에 있다는 것을. 나에겐 아이들이 있었고, 함께 달려준 남편이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봄은 온다’는 팀명처럼, 다시 희망을 무대 위에 세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