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70주년 기념전 "중요 문화재의 비밀"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은 종합미술관의 형태를 갖춘 미술관 중에 가장 좋았다. 내가 원하는 다양한 서양화 컬렉션이 있었고 그들만의 일본화들이 있었다.
미술사 중에 내가 고대, 중세나 현대미술이 아닌 근대미술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그 즈음이 미술의 르네상스였고 일본도 그 때가 그러했나 보다.
근대미술관에는 기획전과 상설전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선 기획전 부터
기획전 입구에 들어서서는 처음엔 이게 무슨 줄인가 했다. 아주 긴 관을 타고 사람들이 줄줄이 안을 들여다 보며 이동하길래 나도 줄을 스면서 안에 그림들이 있겠거니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림은 있었고, 그림들이 아니라 그림 딱 1점이다. 세로 55cm폭에 가로가 무려 40m, 4070cm길이 그림이다. 요코야마 다이칸이라는 작가의 <윤회>라는 작품으로 작품 자체는 찍지 못하지만 그 작품을 한판에 축소해 놓은 그림은 촬영할 수 있다 (아래 3번째 그림)
타이틀을 보지 않고 그림부터 감상했는데, 붓터치가 여유롭고 부드러우며, 여백이 많은 속에 산수와 인물과 화조들이 모두 있어 <윤회>같은 정확한 제목을 떠올러진 않았지만 인생과 자연과 삶을 모두 포괄하는 무언가를 표현했나보다.. 했다.
제목을 보고 나니 이 끝도 보이지 않는 그림 안에서 실제 누군가가 존재하여 삶을 산다면 그 삶이 이 한폭의 그림이며 이 그림을 다 산 다음엔 다시 어느 지점으로 돌아와 비슷한 삶을 살겠구나... 했다.
그림은 분명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것인데,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이 그림 속에 꽉 차게 들어 앉은 느낌
요코야마 다이칸이라는 작가의 뚝심에 일단 감흥이 일어 다음 동선에 그의 작품이 연달아 있길래 다시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이번 그림은 촬영 가능)
조선 회화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인데, 묵을 쓰는 법, 붓을 쓰는 법이 따로 있던데, 이 작가는 묵의 농담과 붓의 놀림이 모두 유려하구나...생각 했다.
일본화가가 그린 중국인 그림
아래 <왕소군>은 중국 4대 절세 미녀 중 한명이라고 한다. 뭔가 비련의 맨 앞의 주인공을 위해 다른 아랫 사람들이 슬퍼하는 내용인 듯한데 영문 읽다 포기하고 파파고를 돌렸더니
왕소군은 중국 전한시대 원제의 후궁 중 한명으로 원제는 궁녀들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판단했는데 고결한 왕소군은 다른 궁녀들처럼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추하게 그려져 있어 원제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다가 어느날 흉노의 왕에게 후궁에서 여인을 내주게 된바, 원제가 추할 것이라고 여긴 왕소군을 선택해 내주니, 떠나는 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심히 크게 뉘우쳤다는 일화가 바탕이 되고 있다
고 소개한다.
하필 일본화가가 대단히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이 중국왕실의 이런 스토리인게 아이러니하다
굳이...
중국에서도 많이 그려지는 그림이라면 뭐 또 그럴 수 있다만...
일본 여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들
우리로 치면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그림이다.
요즘 일본여인들이 이렇게 아름답진 않은데...
우리 여인들은 훨씬 아름답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구요)
사쿠라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왠지 현생의 모습같지 않은 <봄은간다>라는 작품
12폭 병풍에 환상의 모습을 맘껏 펼쳐 놓았다.
우리네 단아하고 기품있는 그림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운 작품
일본화들을 맘껏 보고나니 서양화가 펼쳐졌다.
이번 작품들이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서양화 컬렉션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그린 서양화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나혜석, 이대원, 오지호, 이쾌대, 이인성, 배운성 같은 분들이다.
기대된다.
일본의 밀레인가? 브뤼헐? 밀레쪽에 가깝겠다.
멋찌다!!!
제1회 분텐 미술제에서 2등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 1등은 없었다 함)
설명판에는
작가가 작품을 그리기 5년전 이즈 오시마라는 섬으로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좌초된 경험을 그린것으로 로맨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일본인 같지 않은 센터의 남자로 인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라고 씌여있다.
(하.. 나님.. 영문 읽느라 애쓴다.. 정말)
당시 대단히 서구적인 화풍의 그림이있던 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인가.. 골격이 러시아계 같은데...
일본인 작가라고 표시가 안되 있으면 완벽하게 서양작가가 그린 서양화풍 초상화라고 생각할 법 하다. 오직 옐로우와 브라운 계열 색만으로 인물의 표정, 머리카락, 의상에 표정과 배경까지 모두를 그려냈다.
너무 맘에 든 작품
일본 화가들의 서양화 수준이 이정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소재도 색감도 구도도 모두 세련됬다.
1915년이 아니라 2015년의 그림이라고 해도 전혀 이견이 없을 법한 그림
도자를 세점 연속해서 봤다.
그중 가장 반질하게 아름다운 백자병
매화는 붓이 아니라 펜으로 그린 듯이 정교하고, 유약은 어제 막 기계로 바른 듯이 균일하다.
1892년작이래서 오히려 눈을 요래요래 뜨고 자세히 봤다. 이게 1892년에 만들수 있는 수준인가... 아무래도 신기
양각의 백자는 또 아주 오랜만.
일본 자기는 주로 유약의 역할이 80인가?
이번에도 유약이 너무 반들거려 제작년도(1892년 같음)를 의심하긴 했다.
이렇게 양각의 백자에 채색을 한 작품은 자주 봤는데 순백의 작품은 처음
모란이 일본에서도 자주 쓰인 오브제였구나...
이것도 100년이 넘었다.
일본의 도자는 보존이 잘된 건지, 아님 거의 재제작인데 원년을 그냥 표기하는건지 도통 모를 정도의 그 어떤 시간의 흐름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병 입구와 병 아랫 부분의 나뭇잎 같기도 빗살무늬 같기도 한 문양은 익숙한데 가운데 그림은 우리의 복숭아 같은 것이, 우리 도자에선 생소하여 한참을 들여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