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타 Nov 29. 2022

지그재그와 빗금

2020년 아르코창작기금 작품 시리즈 2

 1화


없고, 없으며, 없다. 느긋한 시간도, 다정한 마음도, 오밀조밀한 생활도 없다. 나의 하루하루는 말끔하다. 날마다 손질하는 홍합과 피조개처럼 군더더기도 이물질도 없다. 홍합과 피조개는 언제나 말끔해야 한다. 하루 열두 시간, 나는 언제나 말끔함과 싸운다. 신속해야 하므로 때로 시간과도 다툰다. 

  

홍합 껍데기를 양손에 마주 쥐고 비빈다. 차르락 차르락, 파도가 자갈을 핥는 소리를 닮았다. 양철통의 홍합 손질이 끝나면 새우 껍질을 까고 게딱지를 열어야 한다. 그 다음엔 피조개와 모시조개, 백합 따위를 해감해야 한다. 그 뒤 오징어와 멍게와 해삼 따위를 씻고 청각과 다시마도 손질해야 한다. 오전 열 시에서 밤 열 시까지 내 손은 쉬지 못한다. 뷔페식 씨푸드 레스토랑은 하루 종일 손님들로 북적인다. 홀의 음식이 떨어질라치면 매니저가 주방에 알리고 어시스턴트 배지를 달고 있으며 보조 팀에 속한 나는 부주방장의 지시에 따라 즉각 또다시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손이 빨라야 하므로 부주방장의 서둘러, 서둘러, 하는 소리에 허겁지겁 손을 놀린다.

  

내 손과 팔목은 언제나 줄이 죽죽 그어져 있다. 조개나 게 껍데기와 새우 껍질에 베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내가 서툴러서이겠지만 부주방장의 재촉 때문이기도 했다. 아물고 나면 다시 생채기가 나기를 반복한 줄무늬들은 바닷가 패총에서 발굴한 빗살무늬토기의 흐릿한  빗금을 닮았다. 빗살무늬는 모든 걸 맨손으로 해야 했던 옛날 사람들의 상처투성이 손등을 본뜬 걸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내 손의 생채기가 그렇듯이 그 흐린 무늬를 노동의 흔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고기를 낚을 도구를 깎고 다듬고 조개껍데기로 장신구를 만들고 온종일 돌을 갈고 창으로 찍어 올린 물고기를 불에 굽고 뜨거운 조개껍데기를 벗겨 아이들의 텅 빈 입속에 조갯살을 넣어 주고……. 

  

앞치마에 든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냄새나는 손을 물로 헹구고 휴대폰을 꺼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짐작대로 지그재그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내게 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카드 회사 같은 곳이거나 몇 달에 한번 친구들이 보내는 그저 그런 메시지거나 일 년에 한두 번 가족들이 보내는 게 전부였다. 엄마나 동생의 문자 메시지는 안 오는 게 나았다. 보나마나 돈 이야기일 거니까. ‘빗금님, 다음 월요일 낮에 브런치 먹을래요? 아 참, 카페에 괜찮은 음악을 올려놨으니 나중에 들어 보세요.’ 빗금은 인터넷 카페 ‘그루브’에서 사용하는 내 아이디다. 지그재그는 자신을 힙합보이라고 말했다. 지그재그라는 아이디도 그가 활동하는 힙합 그룹의 이름이라고 했다. 


카페에서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던 중 두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언제 우리 동네에서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말이 가볍게 오갔고, 내내 지루했으므로 거절하지 않았다. 지그재그가 쪽지를 보내서 며칠 뒤 연락할 테니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했다. 설마 연락을 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연락이 오니 솔직히 반가웠다. 나는 무언가 말끔하지 않음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답장을 보내다가 부주방장의 눈에 꼭 집혔다. 근무 시간에 휴대폰은 라커룸에 두라고 몇 번을 말해. 도대체가, 도대체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길게 통화를 한 것도 아니고 잠시 쳐다본 것뿐인데 말이다. 

  

나는 다시 홍합 두 개를 맞잡고 쓱쓱 비빈다. 오른손에 쥔 홍합으로 왼손에 쥔 껍데기에 들러붙은 이물질을 떼어 낸다. 반대로도 한다. 양손에 쥔 껍데기의 뾰족한 끝으로 서로의 이물질을 긁어낸다. 인간관계란, 남녀관계란 이렇듯 서로를 긁어대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늘 이런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홍합을 손질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밖으로 비어져 나온 빳빳한 수염은 부드러운 안쪽 속살에 들러붙어 있어 입을 앙다물고 있으면 여간 성가시지 않다. 몸 쪽으로 당겨 빼야 하는데 이따금 날카로운 것도 있어서 손이 베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가위로 자르면 편한데 부주방장은 꼭 손으로 하라고 지시한다. 그 편이 더 깔끔하단다. 홍합에는 껍데기에든 속살에든 제거해야 할 이물질들이 악착같이 들러붙어 있다. 홍합도 바닷속에서 바위에 붙어서 산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붙잡는 것이겠고, 무엇이 무엇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나는 무엇에든 악착같이 들러붙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