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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대구시민, 21세기의 조선 수군들

[수필]


충무공의 진도 바다와 대구사람이 만나 불꽃처럼 불타올라 전장에서 함께 맞서 싸웠으니
 보라, 그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나는 오래전부터 학생들과 ‘주제여행’을 다니면서 몸과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2019년은 <다시 보고 싶습니다> 라는 생태여행으로써 ‘서대구 달성습지’를 한 달에 한 번씩 들렀다.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가슴 떨렸던 그 시간을 내 삶의 역사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되었던 2019년의 감동을 되새기며 2020년도에는 <2020년, 계신기행(戒愼紀行), 한반도의 흙과 꽃과 이야기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국토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 땅의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이 여행의 행선지로 1차 전남 진도 일대, 2차 서울 창덕궁 일대, 3차 문경새재 일대, 4차 조선통신사 축제길을 찾아 부산 일대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1차 여행을 시작하기 전, 세상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돌았다. 어느 날 코로나바이러스가 청정지역이었던 대구에 입성했다. 나는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두 명의 학생과 사무장님을 향해 비장하게 말했다. 


  “예정한 날 출정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구를 떠나 진도로 향했다. 우리가 대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비보가 쏟아졌다. 대구를 봉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질 만큼 대구사람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받고 격리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확진자가 집계되었고 그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 점점 두려워하는 아이들, 이러다 중국처럼 도시가 봉쇄되고 우리는 대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아이들, 급기야 우리가 대구사람임을 숨기자는 아이들…. 대구는 이미 죄인의 도시였다. 허나, 태어나 자란 고장의 언어를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겠는가? 흐르는 물처럼 막을 수 없는 것이 문화의 뿌리일진대.     


  다음 날, 아이들을 데리고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에 갔다. 높디높은 전첩비 앞에서 나는 아이 둘에게 말했다.


  “느그는 대구 사람인기 부끄럽나? 나는 안 부끄러분데? 나는 본래 경남 사람이지만 대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대구가 이 나라에, 무슨 죄를 지었노? 와 대구사람인걸 속일라카노.”


  빛나는 벽파진 나루터의 잔물결들을 비추고 있던 남도의 태양이 내 얼굴을 따사로이 비춰줄 때 나는 다시 말했다.


 “느그는 대구가 얼마나 뜨거운 땅인지 모르나. 대구사람들은 불의 앞에 목숨 내놓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느그들, 동촌유원지에 있는 망우당공원 가 봤제? 거기 누구 동상이 있는지 봤나? 맞다, 곽재우 장군 동상이다. 그분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려 했던 분이다. 국채보상기념공원이 대구에 있는 이유를 느그들 그새 잊었나? 나라도 어쩌지 못하는 빚을 누가 갚았는지 아나? 우리 대구사람들이 분연히 일어나 우리 민중과 함께 그 일을 했다. 2.28 기념 공원은 어디 있는지 알제? 4.19학생 의거의 첫 불씨가 된 기 바로 대구 2.28학생 운동이다. 정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룩하게 한 이들을 기념하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느그는 2.28 기념 공원 몇 번이나 지나가도 못 봤나? 그 공원 앞 돌비석에 새겨진 자유를 위한 한 편의 시를. 시내 갈 일 있거든 반드시 찾아가 그 시비를 읽어 보거라. 느그들의 이 자유는 대구사람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된다. 그라니, 대구를 부끄러워하는 사람, 그 사람이 부끄러운 사람인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렇게 우리는 대구로 돌아왔고 그 이후로 우리 고장은 더욱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불안해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 팀은 여유만만했다. 왜냐하면, 시련 앞에서 더욱 강인해지는 민족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진도 여행에서 분명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남대구 톨게이트를 들어오자마자 마스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 후 나는 자가격리를 6주가량 실천하면서 참으로 값진 보물들을 얻었다. 그동안 게을렀던 집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둔 가슴 속 이야기들이 내 몸 어디에 그렇게 숨어 있었던지 모르겠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손가락 끝으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멈출 수 없는 남도의 따스했던 햇살 같은 기운들에 힘입어 집필에 몰입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6주를 매일 글 쓰고 책 읽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화집 서너 권 분량과 수필집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옆에 쌓여있고 3월부터 시작한 대학원 졸업 논문이 뜻밖에도 완성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뒤로하고 6주간 온종일 의자에 앉아 엉덩이와 허리의 통증을 견디며 원고에 파묻혀 지내던 사이에 세상의 판도는 바뀌었다. 대구는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있고 대한민국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 민족의 저력이 서서히 세계 방방곡곡에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봉쇄를 당할 뻔한 참담한 순간에 봉착했던 우리 대구는 이 봄을 바이러스에 빼앗긴 것을 서러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며 현실을 견뎌내고 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대구시민들은 21세기의 조선 수군들이다. 대장선과 더불어 울돌목에서 목숨 내놓고 싸웠던 그들처럼 대구시민들은 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웠다. 노적봉 아래서 강강술래를 부르던 아낙네들과 벽파진까지 왜구들을 몰고 내려왔던 수군들처럼 대구 의료진들은 방호벽을 입고 끝없이 밀려드는 흰 파도와 맞서 싸웠으며, 시민들은 공포 상황 속에서도 의연히 고난을 극복하는 행보를 여전히 쉬지 않고 있다.


  제1차로 떠난 주제여행 ‘한반도의 흙과 꽃과 이야기를 찾아서’ 진도 여행길에서 뜻하지 않게 전쟁을 만났다. 충무공의 진도 바다와 대구사람이 만나 불꽃처럼 불타올라 전장에서 함께 맞서 싸웠으니 보라, 그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바이러스 전쟁이 끝나면, 계획보다 조금 늦어져 덕혜옹주의 홍매화는 이미 낙화했겠지만, 꼭 창덕궁 낙선재에 들러 보려 한다. 한반도의 정신을 찾아가는 그 여행길에서도 나는 대구 사투리를 당당하게 쓰며 대구사람임을 자랑스럽게 밝힐 것이다. 대구, 이 땅은 결코 남루하게 쓰러질 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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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진전첩비: 충무공 이순신이 거둔 명량대첩 승첩을 기념하고, 해전에서 순절한 진도 출신 참전자들을 기리기 위해 진도 사람들 모두 한 마음으로 성금을 모아 만든 높이 3.8m나 되는 거대한 비석. 진도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된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산682-4번지에 있는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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