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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다시 흐르고자 한다

[수필]


그때, 우리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정말이지 다시 낙동강이 다시 되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꿈에도 그리던 그 아름다웠던 낙동강의 모습이 조금씩 재현되고 있을 때
시민들도 흥이 나서 한둘씩 모여들었죠.
 하지만…. 



  

  나는 잠시 류승원*회장님의 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류 회장님은 늘 아름다웠던 낙동강의 모래펄과 강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름다운 낙동강의 풍경을 당신의 머리에만 담고 있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다시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낙동강 금빛 모래밭에서 온종일 다시 거닐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느 날, 나는 류승원 회장님께 달성습지*에 한 번 데려가 달라고 했다. 뜻밖에 회장님의 답은 심드렁했다.


  “이제 가봐야 소용없어요. 낙동강도 금호강도 다 죽었어요. 지금 모습은 제대로 된 자연이 아니에요.”


  변해버린 강이 흉측해서 안 가시겠다고 했지만, 내 간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오래된 지프차를 타고 함께 달성습지 입구에 섰다. 먼발치, 화원유원지 쪽 팔각정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저기서 이곳을 내려다보면 낙동강과 금호강, 진천천이 합류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옛 달성습지를 복원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대구시에서 협조했고 생태학자들이 힘을 모았죠. 우리는 강가의 땅을 듬성듬성 파서 자연 웅덩이를 만들어 주자 했어요. 그러면 강물이 웅덩이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저절로 옛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했죠. 어느 사이엔가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싹을 틔울 거고 나무가 자라면 새가 날아올 것이죠. 그러면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는 겁니다. 그 작업을 시작했다가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포크레인으로 강바닥을 파니 엄청난 산업 쓰레기들이 나온 겁니다. 금호강 일대에서 급속히 성장하던 섬유공장에서 흘러온 폐수들과 그 밖에 산업 쓰레기들을 누군가 이 강바닥에 몰래 묻어 버린 것이었어요. 우리는 그 시커멓고 악취 나는 기름 쓰레기들을 치우는데 거의 모든 예산을 다 써버렸어요.”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한데 모은 생태학자들의 의견대로 강변 주변으로는 몇 군데 구덩이만 파헤쳐진 채 몇 년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그 주변에 멋진 조경수를 심자 했지만, 생태학자들은 생명이 저절로 발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몇 년 후, 웅덩이 주변으로는 어디서 날아든 줄 모를 씨앗들이 한둘씩 싹을 틔웠다. 버드나무들이 왕성하게 자라자 나무 주변으로 새와 곤충들이 찾아들었고, 강물들이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더니 점점 강물 속의 물고기도 많아졌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러 달성습지로 몰려들었다. 어느 해 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벅찬 가슴으로 눈물짓기도 했다. 류 회장님은 먼발치 유속이 느려진 강물을 보며 조금은 들뜬 듯 말씀하셨다. 


  “그때, 우리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정말이지 다시 낙동강이 다시 되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꿈에도 그리던 그 아름다웠던 낙동강의 모습이 조금씩 재현되고 있을 때 시민들도 흥이 나서 한둘씩 모여들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어요….”


  류 회장님은 바로 앞에 있는 강 웅덩이 깊은 곳에서 이미 죽은 나무들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어느 날부터 이곳은 마치 호수처럼 물이 고였죠. 나무들은 숨을 쉴 수 없어 모두 죽어 버렸어요.” 


  “회장님, 나무가…. 왜 죽어 버렸어요?”     

 

  회장님은 왕버들군락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서걱서걱, 트레킹화 밑바닥에서 죽음의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우리가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무의 죽음 뒤, 인간의 공포는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김 선생, 강은 말이지요. 흘러야 사는 겁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이 교류해야 결국 인류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저렇게 물을 가두어 버리니 강 수위가 높아져 버리고 흘러가던 물도 멈추어 버리고…. 인간은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거요.”


  인간이 하면 안 되는 짓.


  “흘러가던 강물을 보(洑)로 다 막아 버리니 물이 고이고 썩게 되죠. 그러니 생명 간 교류가 멈추고 재자연화되어가던 달성습지가 이 모양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은 자연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또 자연을 정복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습니다. 자연을 해치면 결국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회장님은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이 제방 쪽으로 걸어 나가셨다. 나는 뒤돌아서서 석양에 물들어가는 낙동강을 바라보았다. 낙동강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리셨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도시가 성장하고 물질문명에 눈멀어 ‘강 따위’를 무시하는 인간들을 미워하지도 않으셨다. 허나,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상처의 몸으로도 강 어머니는 소망 한 가지가 있으시단다. 흐르고자 하는 것, 옛날처럼 다시 흐르고자 하는 것이란다….   

  

   낙동강 어머니가 보내주신 가녀린 마지막 노을은 둑 너머로 멀어져가는 류승원 회장님의 등을 따스하게, 오래오래 쓸어준다.          





사람은 자연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또 자연을 정복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습니다.
자연을 해치면 결국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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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원(1947년생) : 1991년 페놀 사태를 맞아 낙동강을 지키던 환경운동가. 그는 대한민국 생태운동의 새로운 변혁을 일으켰다. 1994년 11월, 대구에 <영남 자연 생태보존회>를 발족하여 대구·경북의 개별현장을 찾아가 생태운동의 펼친 장본인. 2020년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경북 청도 각북에서 복숭아농장에서 지냄.

* 달성습지: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호림동, 달성군 다사읍. 화원 일대에 걸쳐 있는 내륙습지. 과거에는 범람원이었으며 현재는 개방형·폐쇄형·수로형 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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