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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너의 흙은 어찌 이리 아름다우냐

- 광양 등록문화재 제341호,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다녀와서

 [수필]


병욱아, 정신 가다듬고 잘 들어라.
이 책을 쓴 시인 윤동주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왜놈의 땅에서,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갔다가….
올 2월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하니, 이 엄매도 너도 상복을 입고 이 책 앞에 절을 올려야 되지 않겄냐….
울면서 몸부림치는 못난 모습 보이지 마라.
동주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민족시인 윤동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시들을 세상에 알린 분은 그의 교우 ‘정병욱’. 그분이 아니었다면 윤동주의 시들은 적멸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전남 광양, 윤동주 유고 보존의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옛 망덕포구 나루가 있었다던 곳의 허름한 집 한 채. 보기에만 해도 오래된 건물이다. 어쩌면 시인의 초고가 보관되었던 집이 아니었으면 벌써 뜯기고 헐렸을지도 모를 그 집 앞에 서자 넓은 막이 있고 빙 둘러서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5시에 문화해설사가 퇴근하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얼마나 가슴 졸이며 달려왔던가. 


 4시 30분. 아직 문이 열려 있다! 


  조그만 마당, 낡은 양조장 건물 앞에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마당 한 켠으로 윤동주의 생애와 정병욱의 관계를 알려주는 여러 해설 안내판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지만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집의 문이 잠기기 전에 보아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해설사 한 분이 퇴근 준비하고 계셨던지 짐을 챙기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곧 퇴근 시간이라 문을 잠그고 갈 것이니 잠시 집안을 둘러보라 하신다. 대구에서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부디 동영상과 사진이라도 찍게 해달라 청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면서 간단하게 가옥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이 집은 1925년 건립된 점포형 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뒤편의 양조장은 헐리고 없고 주택만 원형을 남겨 놓고 있다고 하시며 윤동주 유고를 숨겨주었던 곳을 안내해 주신다. 


  마룻바닥 아래! 그 아래 구멍이 뚫려있고 해설사 선생님이 그곳에 정병욱 모친께서 원고를 숨겨 놓았다고 설명해주신다. 마룻바닥을 일부러 뜯어놓은 것은 오시는 분들이 원고가 있었던 장소를 궁금해하시기 때문이라며 마루에 올라가셔서 허용된 나머지 마루 짝 두어 장을 더 들어 바닥 아래까지 훤히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마룻바닥 아래는 암흑…. 그리고 나는 어느 시대로 빠져들어 간다.   

 

                                                                            *


  칠흑 같은 어느 밤, 일본 순사들이 도착한다. 그들은 양조장 곳곳을 수색하며 무엇인가를 겁박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방으로 순사들을 안내한다. 그들은 그곳에 꽂혀있던 책들을 죄다 꺼내 흩트려 놓으며 수상한 물건이 없는지 살핀다. 순사 한 명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 집 아들의 책을 뒤져보다가 모친에게 매섭게 물어본다. 


  “동주? 이자는 누구요?”


아들의 책 뒤쪽에 적혀있던 친구의 이름자, 윤동주. 모친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내 침착하게 답한다.


 “아들의 친구입니다.”


 “일본어로 된 이름 뒤에 이렇게 조선말로 이름을 적은 자는 사상이 불온하오. 이 자는 어디 있소?”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 오호…. 본국으로? 어디 갔는지 아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어떤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좋소! 본국까지 들어가서 공부를 하려는 것 보니 생각이 있는 젊은이인 것 같소만….”


그러다 다시 묻는다.


  “이 집 아들 물건은 더 없소? 아니, 우리가 찾아보겠소!”


  일경은 모친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일어나 부하들을 시켜 양조장 전체를 다시 뒤지기를 수 차례 한다. 정병욱 모친은 일경에게 말한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아들을 전쟁에 끌고 간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무례하게 아들의 물건을 함부로 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경은 모친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며 큰소리친다.


  “말조심하시오! 전쟁에 끌고 가다니! 우리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스스로 자처해 떠난 학도병을 무시하는 언사는 용서하지 못하오. 그들은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고 싸우겠다는 서약을 스스로 쓰고 전장에 간 것이오.”


  “누가 자처해 전장에 나갔단 말입니까. 압박을 이기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서류에 도장을 찍고 갔던 것을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그래 놓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아이 물건을 이렇게 망가뜨리면서 이 부모를 능욕한단 말입니까!”


  까랑까랑한 정병욱 모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경은 손에 들고 있던 곤봉을 들고 가까이 다가와 턱에 대고 위로 쳐 올린다. 곧 곤봉이 머리를 내려칠 듯할 때 저 멀리서 정병욱 부친이 걸어오며 헛기침한다. 정병욱 부친은 아내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일본 순사에게 말한다.


  “순사 양반, 어제 경찰서장님이 오셔서 부탁한 특별한 술을 부탁했는데 마침 다 마련되었소이다. 오신 김에 가져가겠습니까?”


  일본 순사, 얼굴이 환해지며 답한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아, 아니. 제가 서장님께 전화해 보고 가져가든가 할 테니 잠시 기다리시오. 전화기 어디 있소?” 


  정병욱 부친, 손가락으로 사무실 쪽을 가리키고 일경,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가자 정병욱 모친, 남편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쩌자고 저 자들에게 그 귀한 술을 줄라고 그라요? 참말로….”


  “뭐, 워쩔 것이여. 우리 병욱이 소식 알아봐 준다는디…. 전쟁에 끌려가서 죽었는지 살었는지는 알아야 안 되겠나 말이여.”


  “그런다고 저자들이 제대로 알려줄 것입디여? 짐승만도 못한 것들인데.”


  “임자는 그냥 모르는 척하소. 나도 생각이 있응께.”    

 

그때 일본 순사, 빠른 걸음으로 정병욱 부친 옆으로 와서는 고급술을 받아 가겠다 하고 부친은 그들 모두를 데리고 양조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정병욱 모친, 아들의 방에 들어가 흐트러진 책들을 모아 정리하고선 안방으로 건너와 장롱 속에서 명주 보따리 하나를 꺼내 펼치니 한 권의 얇은 책이 나온다. 정병욱 모친, 그 책을 들어 표지를 만지며 말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병욱아, 전장에서 워치키 지내냐…. 

  죽지는 않았겄지. 

  워쩌냐. 니가 그렇게 부탁하던 이 책을 워치케 잘 보관해야 될지 모르겠다야. 

  일경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들이닥치니 어치케 할꺼나…. 

  니 친구 동주는 워치케 되었겄냐? 

  일본에 갔다지만 왜놈들 등쌀을 그 순한 것이 배겨낼지 모르겄다. 

  여(조선)가 이라믄 왜놈 나라는 더 할 것 아니겄냐? 

  너랑 동주가 죽고 돌아오지 않은 채 독립이 된다믄 꼭 이 책을 너희 공부하던 학교에 보내어 달라했으니 얼마나 중한 책이길래 엄매한테 그런 유언을 남기고 갔단 말이냐. 

  그래, 엄매는 이 책을 꼭 지킬 것이다. 니가 그렇게 말했지 않았냐. 

  이 책에는 우리 민족혼이 담겨 있다고. 

  광복되면 반드시 동주의 시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그라자. 네가 이 엄매를 믿고 책을 주고 갔으니 나는 이 책을 내 아들이라 생각하고 지켜낼 것이다. 

  병욱아…. 동주야…. 워쩌다가 너희는 이렇게 슬프고 힘겨운 세상에 태어났더냐…. 

  하지만, 잊지 말아라. 너희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선의 힘이라는 것을….”


  한참이나 시집 표지를 손으로 쓸어내리던 정병욱 모친 햇살 가득 안긴 마루를 내다보다 문득 들고 있던 책을 명주 보자기에 다시 싸서 장롱 속에 감추고는 마루로 나가서 이리저리 걸어 다닌다. 

  한쪽이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마루, 하지만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어 다시 걷어내기도 어려운 나무 마루…. 그러다 정병욱 모친은 마당으로 급하게 내려가 마루 쪽을 쳐다본다.  

   

  1945년 8월 어느 날, 젊은 청년이 지쳐 보이는 눈으로 양조장 문을 열고 들어선다. 먼발치서 정병욱 모친, 달려온다.


  “웜매, 병욱이 아니냐, 워매 내 자석. 워따워따 내 자석. 어여 오너라.”


 정병욱이 집에 돌아오자 일가친척들이 찾아와 환영 인사 자리가 열린다. 

 저녁 술자리가 한창일 때 병욱은 모친을 찾아 자신이 맡긴 책의 행방을 묻는다. 

 정병욱 모친은 입술에 손을 갖다 댄다. 병욱은 어머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물러나 그 밤, 동주를 부르며 잠이 든다.


  ‘내 친구 동주야, 별 헤는 밤이 몇 번이나 지나갔건만 우리는 이렇게 소식도 알 수 없구나. 

  광복되었어도 서로 소식도 모르는구나. 

  아름다운 시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동주….

   동주야….’


  밤새 망덕포구의 물결이 왔다가 물러가고 다시 왔다가 물러가기를 반복하며 

 아름다운 광양의 밤은 마치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을 축복하는 듯하다.  

   

  다음 날, 정병욱 모친은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아들을 깨운다. 

 병욱은 해방이 된 고향마을, 고향 집에서 잠을 잔 것이 꿈인 것만 같다. 

 그런데 어머니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병욱에게 목욕재계시키고 검은 옷을 차려입게 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병욱의 가슴에 섬뜩한 기운이 전해진다. 

 어머니는 양조장 인부들을 시켜 마룻바닥을 뜯게 하신다. 

 병욱은 어머니 옆에서 그 모습을 의아한 듯 쳐다보고 있다. 

 어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마룻바닥이 다 뜯기자 병욱에게 말한다.


  “쩌기, 저 안에 있다. 가 보거라.”


 병욱은 찬찬히 걸어간다. 마룻바닥을 뜯어낸 인부들도 궁금한 표정이다. 마룻바닥 아래로 머리를 내밀고 들어가던 정병욱은 외친다.


  “엇!”

 어머니가 멀찍이서 말씀하신다.


  “니 손으로 꺼내거라.”


 갑자기 병욱의 어깨가 들썩인다. 

 병욱은 열어놓은 마룻바닥 아래로 몇 발짝 발을 내밀고 들어섰다가 명주 보자기를 하나 꺼낸다. 

 어느새 정병욱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이때, 모친이 말씀하신다.


  “열어 보거라. 워치케 되었을지는 나도 모르겄다.”


 정병욱이 명주 보자기를 열자 그 속에서 누렇게 바랜 책 한 권이 나온다. 

 흙 부스러기가 툭툭 떨어지는 가운데 눈물처럼 무겁게 젖어있는 책.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병욱 모친은 병욱에게 말한다. 


  “병욱아, 정신 가다듬고 잘 들어라. 이 책을 쓴 시인 윤동주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왜놈의 땅에서,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갔다가…. 올 2월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하니, 이 엄매도 너도 상복을 입고 이 책 앞에 절을 올려야 되지 않겄냐…. 울면서 몸부림치는 못난 모습 보이지 마라. 동주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리 오너라.”


  어머니의 깨끗한 한복이 눈부시다 어느새 앞이 흐릿해진다. 정병욱은 쓰러질듯한 다리를 겨우 지탱시키고 어머니와 나란히 이 시집 앞에 큰절 올린다. 그날 밤, 망덕포구의 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반짝이고 바람도 불고 어느새 시인의 시는 섬진강을 따라 멀리, 저 먼바다로 흘러간다.     


                                                                         *     


  “선생님, 사진 다 찍으셨어요?”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내가 윤동주 초고본이 숨겨져 있었던 마룻바닥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넋을 잃은 듯 서 있으니 문화해설사 선생님께서 나를 부른 것이었다. 

  몸은 2020년 2월, 정병욱 가옥의 마룻바닥 앞에 있는데 정신은 1945년 8월로 가서 정병욱과 같이 울었던 시간. 정병욱의 들썩이는 어깨, 정병욱 모친의 하얀 한복, 흙더미 툭툭 떨어지는 누렇게 바랜 시집…. 어찌해서 나는 이렇게 순식간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갔더란 말인가. 


  아 참, 선생님 퇴근하셔야 하지요?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가 훨씬 넘었다. 멀리서 온 방문자를 위해 퇴근을 물리치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느껴지자 다시 울컥해진다. 따뜻하고 곧은 기운들이 이 땅에 얼마나 깊이 흐르고 있기에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일까.     

 

  벌써 어둠이 깔려가는 옛 양조장에서 되돌아 나왔다.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그렇게 윤동주와 정병욱 선생의 관계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는데도 나는 슬픔의 바다에서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민족의 슬픔, 시대의 슬픔, 청년의 슬픔,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슬픔….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잠시 머물렀던 그 마룻바닥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시인 윤동주, 그 영혼의 슬픔….


  아름다운 섬진강의 물결과 바다가 만나는 곳, 선소마을 어귀에 윤동주 시비 공원이 있고 그 곁으로 윤동주의 일대기를 전시해놓은 사진과 기록물들이 있었다. 정병욱 가옥에서 만난 수많은 그 옛날 장면들과 내 상상 속 정병욱 옛집에서의 장면들과 전시된 사진들이 오버랩된다.


  섬진강 잔물결 사이로 반짝이는 것은 어쩌면 윤동주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북간도의 별이 아닐까. 정병욱을 있게 하고, 그가 윤동주와 하숙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글벗으로 살아갔던 짧았던 그 시간을 이 섬진강 물결들은 기억하리라. 


  광양이여,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도 준엄한 자존(自尊)으로 아름다운 청년 시인 윤동주를 세상에 선물로 내어준 너의 흙은 어찌 이리 아름 다우냐. 

  시를 지켜내는 것은 민족을 지켜내는 것이니 이 포구에서 뜨는 별은 우리 민족의 별이다. 

 시인의 혼을 지켜내는 것은 민족을 지켜낸다는 뜻이다.

 이 광양의 양조장 한 줌의 흙은 우리 민족의 흙이다. 

 인류의 흙이다. 

 평화의 흙이다. 

 그러하니, 광양이여! 어찌 너를 거룩하지 않다 말 할 수 있으랴.




 광양이여,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도
준엄한 자존(自尊)으로 아름다운 청년 시인 윤동주를 세상에 선물로 내어준
너의 흙은 어찌 이리 아름 다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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