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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Sep 14. 2022

Vol.19 <강은 언젠가 바다를 만난다>

[기록보관소]

사서 정다정입니다.

여러분은 ‘완벽주의’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는 늘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이는 모두 실수와 실패에서 생겨난다는 것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Perfectly Imperfect’ 라는 말이 있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뜻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보채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미숙한 나를 귀여워해 주는 건 어떨까요? 완벽주의의 또 다른 의미를 담은 이승세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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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언젠가 바다를 만난다

완벽주의라는 마약을 아는가? 완벽주의를 표방하고 누군가에게 멋진 인생을 보여주는 건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러면서도 동전 같은 양면성을 가졌다. 우리에게 정복해야 할 정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닿지 못할 환상을 보여줘 끝없는 절망의 굴레에 빠지게 만든다. 완벽함을 위해 미숙함이 매력인 자신을 좀먹어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런지.


청춘의 보폭은 그대로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달려간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미성숙함은 점점 평범한 모습이 되어 간다. 힘에 겨워 어색해진 당신의 발걸음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인턴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원 후 당연히 떨어지리라 생각하여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합격이라는 반전이 주는 기쁨과 긴장이 더욱 컸다. 출근하기 며칠 전부터는 실수 없이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망상까지 들었다. 분명 회사에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입을 떼야 할 일이 있을 텐데. 평소 낯선 환경에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염소 목소리가 나온다. 또 질문을 많이 받으면 머리가 하얗게 굳어버리는 체질이라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조직의 막내다운 저자세로 인해 인턴은 외부 인력과의 연락 과정에서 회사의 TMI를 말해버렸다. 상사는 이를 발견하고 굳이 그렇게까지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며 주의를 준 뒤, 메시지를 삭제하고 다시 작성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인턴은 5분이 지나 메시지 삭제가 불가능함을 발견한다. 이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인턴의 후속 질문 세례가 빗발치듯 이어졌다. 그야말로 사회초년생이 흔히 저지를 법한 일이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의 기본적인 기능부터 회사의 체계까지. 셀 안의 가운데 정렬이나 합계를 구하는 방법을 묻는 모습은 풋내기처럼 보였을 게 분명하다. 맙소사, 여러 셀을 드래그하면 오른쪽 밑에서 합이나 평균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비로소 현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체감했다. 모든 걸 아기 걸음마처럼 배우니 스마트폰을 처음 배우는 노인의 당황스러움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갔다. 이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 좋은 인상을 줄까 염려하는 나에게 상사가 말했다. “얼마든지 질문해. 실수가 하나도 없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꼈을 거야. 그런 게 쌓여야 비로소 네가 완성될 수 있어.”


그제야 나의 오만함을 깨달았다.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 실수가 없다는 건 사람이 아닌 알파고 같은 기계가 인턴을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일 테다.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적당한 각오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그 뻣뻣한 분위기에 당신을 대하는 상대방은 분명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상사가 나에게 말하길 미숙함을 어떻게든 숨기려고 어설프게 연기해도 결국 들키기 마련이라 하였다.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면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충고도 전해주었다.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세는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의 눈은 초년생의 가면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나 보다.

어쩌면 인생에서 ‘완벽함’이라는 것은 무지개일지도 모른다. 목표로 삼기에는 좋지만 실제로 가질 수는 없는 존재. 자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통해 얻어낸 것을 손에 쥐면 행복할까? 그 완벽함은 언젠가 또 다른 얼굴의 미성숙함으로 드러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역시 언제 추락할지 모를 ‘완벽함’이 아닌 ‘완성’을 향해 가보려 한다. 완벽함은 티끌 하나 없이 맑아야 하지만 완성은 오로지 완결된 상태만을 뜻한다. 완벽함에 집착하면 내 결과물의 작은 흠집 하나에도 뒷골이 당긴다. 그러나 완성은 다소 부족함이 있어도 끝맺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결국 미성숙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축적되면 언젠가 완벽함을 성취할 수 있다. 이제부터 미숙함을 곁에 두고서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어설프지만 조금씩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나 자신이 성장할 미래를 그려본다는 건 퍽 설레는 일이다.


그 첫 단계로 우리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자. 상황에 따라 미성숙함은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어설픔을 발판 삼아 더 높이 도약해보는 것이다. 당신의 작은 실수 정도는 너그럽게 바라보는 걸 추천한다. 부족함이 모여 완성이 되고, 다시 완벽이 된다. 한강은 언제나 미약한 상류에서 거대한 하류로 서서히 흘러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끝에 마침내 드넓은 바다와 마주한다. 처음부터 완벽함을 만들기보다는 시작과 완성을 반복하며 천천히 이상향으로 걸어가 보자. 그 여정의 정착지에서 더 담대해진 우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Vol.19 <미성년> 中

Editor 이승세

Illustrator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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