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먼저 보는가
본사의 높은 직위에 있는 부사장(VP)이 회사를 방문하였다. 우리 회사는 부서(Function)를 중심으로 조직된 글로벌 회사라, 아무리 본사에서 직위가 높다 하더라도 부서가 다르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그를 복도에서 보았을 때, 간단하게 hi라고 하며 지나친다.
하지만, 해당 부서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부서의 글로벌 최고 수장인지라 모두들 일주일 전부터 방문 준비를 해왔던 터였다. 그리고 부서 팀장급 이상과 소수의 핵심인재들은 그 부사장과 각 30분씩 일대일 면담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이번 방문은 다른 두 조직의 통합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라, 모두들 이번 조직 통합에 대한 본인들의 관점을 정리하고, 이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걱정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보는 부사장에게 다들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의 업무 핵심 내용, 이번 조직 통합에 따른 영향, 기타 도움이 필요한 사항 (글로벌 회사의 VP들은 자회사들을 방문하면서 항상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될까?'를 물어봐 왔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준비는 본능적으로 되어 있었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실제 일대일 면담에서 그 부사장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Are you O.K.?"
"...................." 모두들 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부는 흔들린 멘탈을 붙잡고 준비한 대로 자기소개를 줄줄이 읊었으나.. 그 부사장은 다시 "Are you O.K.?"를 물어봐서 더 큰 동공지진을 겼었다고 한다.
그 30분의 면담은 20분 동안 현재의 감정과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들로 진행되었고, 나머지 10분만 간략한 업무 이야기와 자세한 건 메일로 보내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후 면담을 했던 구성원들은 뭔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신선한 면담이었다고 하며, 이후 그 부사장에 대한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한 명은 그 부사장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경력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 부사장은 벌어진 사건을 먼저 보지 않고, 사람을 먼저 보았던 것 같다.
당신은 지금 부모, 가족, 동료, 친구들의 무엇을 먼저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