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적한 오후 급행 지하철역을 나서면서..
갑자기 출장이 잡혔다. 서울로 가는 급행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내 머릿속은 오늘 논의 발표 내용을 정리하고, 내가 꼭 얻어 내야 하는 것과 협상을 위해 내어 줄 수 있는 것의 우선순위를 복잡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한낮의 급행 지하철은 종점을 얼마 안 남겨두고 있어 한산했었다.
종점이 다가와서야, 내 맞은편 좌석에 5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가 아버지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는 것이 보였다. 그 아버지는 촉촉하게 젖은 멍한 눈 빛으로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창밖을 힘 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따뜻한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있었다. 한낮의 햇빛에 비춰진 이 모습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거룩함을 느꼈다.
순간, 한때 저런 눈으로 한없이 멍하게 창밖을 보내고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고,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게 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급하게 급행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바삐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정말 힘들고,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싶었을 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밤늦은 시각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했을 때 바라본, 천사같이 자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급행 지하철의 그분의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부디.. 잘 풀리기를 기도드리고자 한다. 나도 오늘 하루를 힘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이 하시는 일이 잘 되기를 간곡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