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쏟는 중년
몇 개월 전 퇴직하신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처 거래처에 왔다가 생각이 나서 전화하셨다며, 시간이 나면 같이 커피 한잔 하자고 한다.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꼭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존 미팅을 미루고 약속 장소로 부랴 부랴 나갔다.
이직하신 부장님은 전보다 몰라보게 좋아지셨다. 머리도 반듯하게 넘기고, 금빛의 안경테가 중년의 모습과 잘 어울렸다. 퇴사하기 전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18년간 근무하시면서, 직원들과 형, 동생 하면서 너무 허물없이 지내고, 술을 마시면 끝까지 가야 하는 성격에 모두들 불편해하고 알게 모르게 피하고 다니곤 했었다. 어딘가 풀려있는 듯한 눈빛은 이제 사라지고, 지금은 대기업의 규율이 몸에 밴 전형적인 대기업 부장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간단한 안부와 함께, 본인은 옮긴 회사에서 4년간 3번 부서를 바꾸고, 지금은 R&D로 옮겨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보통 이직을 하게 되면, 조직에 적응하고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보통 1년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 이직을 몇 번 해보신 분들은, 이 새로운 적응이 싫어서 그냥 남아 있는다고 한다..
본인의 신세한탄과 업계의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그분이 해주셨던 한 문장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요즘 얼마나 힘드냐면, 얼마 전에는 저녁 회식을 하다가 코피를 쏟았지 뭐야. 하하하'. 혹자는 부러워할 대기업 부장 일지는 모르나, 그 내막에는 빛과 그림자처럼 혹자가 부러워하지 못할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코피를 쏟게 하지는 않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니, 회사로 돌아오는 길이 한결 가벼웠다. 여러분께도 이 사연이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기 전에는, 인생에 대해 논하지 말라
- 괴테 -
회식 중 쌍코피 쏟기 전에는, 직장인의 고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
- 미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