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과 꾸준함을 팝니다

by 미료



2020년은 어느 해보다 열심히 산 한 해였다. 글 쓰는 작가, 책을 만드는 편집자 겸 디자이너 (전자책을 세 권이나 만들었다)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마케터, 온라인 글쓰기 코치, 필사 모임 진행, 그리고 브런치 개설까지, 이 모든 역할을 수행하느라 무기력할 새 없던 날들이었다.


'공수래 공수거 '짧은 인생, 쉬었다 가세' 를 모토로 베짱이처럼 살아온 내가 이토록 성실하게 살게 된 이유를 지금부터 풀어보려고 한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 지 6개월째 되던 2019년 2월,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블로그에 있는 글을 묶어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제안 메일이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 프러포즈는 사실, 독서노트와는 별 상관없는 기획이었다. 에디터가 원한 것은 한국과 호주에서의 일상과 삶의 태도를 소재로 한 에세이였지, 독서노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독서노트를 쓰는 일이 책을 출판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을 가지고 뭔가 시도해보고자 하는 자에게 신이 내린 쿠폰 같았달까.



나라는 인간을 하나의 사업체라고 바라봤을 때, 20대를 기술과 노하우를 익히며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보냈다면 이제는 그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시작점이 내 인생에도 도래한 것 같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째 되던 해이기도 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언젠가 이뤄진다, 같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작가를 '꿈'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치장하기를 항상 주저했다. 그 직업은 내게,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더 큰 이익을 가져올 현실적인 생계수단이 돼야 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책을 읽었다. 긴 호흡의 글을 써보고 싶어 소설을 읽었고, 내가 쓴 글이 편견이나 선입견에 치우치지 않았는지 검열하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읽었다. 다른 에세이스트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공부하기 위해 산문도 많이 읽었다.



인상 깊은 문장을 필사하다보면 머릿속이 간질간질해지면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근처 카페와 도서관을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글을 썼다. 어딜 가든 몰스킨 독서 노트를 항상 들고 다녔다. 내게는 그 노트가 만사 형통 부적처럼 느껴졌다. 노트가 가방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다.


책이 얼마나 팔리든 상관없다고 초연한 적 했지만 사실은 잘 되고 싶었다. 인생이 잘 풀리려면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였기에 '운칠기삼'이란 고사성어를 수시로 떠올리며, 독서노트가 내게 가져다 줄 행운에 의지하려고 했다.










살면서 책 한 권을 써내는 일은 특별하면서도 사소한 경험이다. 지난 한 해 출간된 신간은 약 6만 3천5백 여종. 믿기 힘들겠지만 6만 명이 넘는 사람이 책을 펴냈다. 내 주변에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람이 없는데 뉴스에서는 매일 대서 특보로 코로나 확산의 위기를 보도하는 것처럼, 주위에 책 쓴 작가가 별로 없지만 세상에는 작가가 이렇게나 많다.





첫 책의 정확한 성과는 알 수 없지만 온라인 서점의 TOP 100 순위권 안에 잠시 진입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편집자도 나도 이에 흥분했지만 금세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책이 나온 지 한 달, 두 달이 지나 해가 바뀌면서 책의 존재는 빠르게 잊혔고 새로 쓴 기획서를 몇 군데 찔러 넣었다가 거절당했다. 나는 이제 막 원고 하나를 털어낸 신인 작가였다. 두번째 책을 쓰기에는 아무래도 밑천이 부족했다. 뼈아픈 현실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 운 좋게 출간 작가가 되었지만, 이제 살아남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트렌드를 파악하는 센스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실력 없이는 두 번째 책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가만히 넋 놓고 있다가는 삼십 년이 훌쩍 흘러 '아, 내가 젊을 때 책도 냈었지' 아련하게 추억만 하게 될 가망성이 농후했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인생일 테지만, 그러기엔 읽고 쓰는 일을 사랑했고, 안간힘을 써서 여기까지 온 과정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출판계에서 어떻게 센스 있고 실력 있는 작가로 살아남을 것인지 방법을 몰랐다. 누군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몇 만이 되면, 출판사의 마케팅 부담이 적어져서 책을 낼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했다. 당시 나의 팔로워는 100명이 겨우 넘었다. 나를 매력적으로 브랜딩 하는 일이 내게는 '넘사벽'의 능력이었다. 능력을 키우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단점을 개선하거나, 장점을 개발하거나.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먼저 하는 것이 좋았다.


책상 위, 나의 두 번째 독서노트인 로디아 노트가 보였다. 1년 동안 독서노트를 쓰면서 발견한 내 안의 잠재력을 꼽아보았다.



1. 뭘 하나를 시작하면 잘 하든 못 하든 성실하게 해낸다.

2. 게을러지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다시 꾸준한 루틴으로 돌아온다.

3. 억지로 하지 않고 즐기면서 한다.



성실함, 꾸준함, 재미. 이 세 가지 키워드로 나를 요약할 수 있었고, 이런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단연 독서노트였다. 내게는 매일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쓸 수 있는 기본 체력이 있었다. 의무감 없이 즐길 수 있을만큼 좋아하기도 했다. 성실과 꾸준함의 원동력은 재미였다. 재미있지 않으면 결코 매일 해낼 수 없었다.


그렇게 '미료의 독서노트'는 단순한 취미 생활을 넘어 내 삶의 가치가 반영된 하나의 브랜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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