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일,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써 본 이래로 오랜만에 제대로 적는 독서 기록이었다. 이후 2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필사 습관은 내 인생을 360도 까지는 아니지만, 3.6도 정도 바꿔놓았다. 사실 360도 바뀌었다고 썼다가 3.6도로 수정했다. 너무 과장했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사람이 360도 바뀌었다는 말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의미 같아서다. 지구의 자전축이 2.4도 가량 기우는데 4만 1천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작은 행성이랄 수도 있는 한 개인이 3.6도 변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기도 했다.
확실히 독서노트를 쓰면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꿈도 야망도 없다고 설레발 치던 내가 (설레발 칠 게 없어서..) 독서노트를 소재로 유튜브도 하고 돈도 벌게 되었고 언젠가 책을 써서 해외 진출까지 하겠다는 의지와 야심을 불태우게 됐다.
호주로 이주한 지 4년 차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아직 영주권이 없다는 것 빼고 모든 것이 좋았다. 가식이든 진심이든 사람들은 친절하고 낙천적이었으며 여유가 있었고 빨리빨리가 미덕인 동아시아에서 온 여자의 눈에는 게을러보이기까지 했다. 일은 안 하고 다들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는 것 같았고, 오후 세 시면 퇴근하느라 분주했으며 연말에는 한 두달씩 긴 휴가를 보냈다. 이래도 세상이 돌아가는 구나, 어쩐지 억울했다.
사계절 날씨는 눈부시게 맑고 온화했으며 공기도 깨끗했다. 봄에는 자카란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보랏빛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려 떨어지는 여름이 되면 해변에 누워 살을 태우며 낮잠을 잤다. 제모를 말끔하게 하지 않아도 옆구리 살이 삐져나와도 굳이 용기같은 거 내지 않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을 수 있었다. 누가 나를 바라본다는 감각이 희미해져 가서 화장도 하지 않게 됐다. 헌옷 수거함에서 막 건져낸 것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가을과 겨울에도 이곳은 따듯했다. 추운 겨울을 싫어하는 이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지만 남편과 나는 쌀쌀한 날씨를 좋아해서 일부러 기온이 낮은 남부 지방으로 캠핑 여행을 떠나 불멍을 때리고 놀았다.
나는 서른 셋, 남편은 서른 다섯. 한국에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다소 늦은 나이처럼 느껴졌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시작한 것 없는데도 괜찮았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허무와 무기력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 감정은 문을 열어준 적 없는데 몰래 우리집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밥도 먹고 잠도 자는 이상한 손님 같았다. 그 무렵 아무리 물을 마셔도 좀처럼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서 물을 마셨는데, 왜 현실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것인지 새벽에 자주 깼다. 새벽잠이 달아나 버릴까봐 일부러 화장실 불을 켜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변기에 앉아 생각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옵션에 미련을 자주 갖곤 했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자주 상상했다. 내가 가장 많은 미련을 둔 선택지는 '작가로서의 커리어' 였다. 호주에 오기 전 나는 '정규직 작가'였다. 글 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작가로서 정규직에 종사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다. 글밥을 먹고 살아도 안정적으로 월급을 탈 수 있고 4대보험에도 가입될 수 있으며, 정기 휴가도 쓸 수 있고 기념일이나 경조사에 보너스도 탈 수 있다는 건 작가로서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10 to 7의 삶은 내게 나쁘지 않은 정도였다. 좋지는 않았다. 뭔가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하고 호주로 왔다.
여긴 호주, 난 이방인.
나는 낯선 타국의 '노바디'였다. 소속감 없는 '노바디'의 인생은 근사한 지점도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데 성별과 직업과 나이가 필요 없다는 건 매우 홀가분한 일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좋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과 쓰임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장녀 노릇' '며느리 노릇'도 해보고 싶었고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자부심 가지며 일하고 싶었다. 원고의 단어와 조사 하나 가지고 씨름 하던 과거가 문득 그리웠고,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사원증을 목에 맨 회사원들을 부러워 했다. 자카란다와 인도양, 미세먼지 없는 날씨와 캠핑도 나를 기쁘게 하지 못했다. 바다에서 산을 그리워하고 산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가수면 상태로 변기에 앉아있던 나는 한국 부모님 집 장롱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플룻(flute)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졸라 구매한 고가의 악기였다. 열 두살 조미정은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방과 후 활동의 플룻 선생님은 나를 한번씩 앞으로 불러 자신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플룻을 연주하도록 했다. 선생님은 한번 가르치면 빨리 배운다고 칭찬했지만 사실 나는 집에서 미뉴엣트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습했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보다 플룻을 부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번쩍거리는 금관악기를 든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방과후 활동에 플룻반이 제외되면서 플룻은 장롱 안 신세를 지게 됐다. 가끔 꺼내 미뉴엣트를 연주했지만 어쩐지 음이 잘 맞지 않았다. 불지 않은 악기는 쉰 목소리를 냈다. 플룻을 계속 관리하고 불었다면 지금쯤 내 연주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없는 돈 싹싹 긁어 엄마가 사준 야마하 플룻은 지금 어떤 소리를 낼까.
호주에 살고 있는 내가 꼭 녹이 슨 플룻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악기를 제대로 다뤄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노트를 사는 버릇이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 공책과 다이어리, 수첩과 메모지는 안정감을 줬다. 목이 마른지, 마음이 마른지 혼란스러웠던 어느날에 나는 소프트 커버의 몰스킨 노트 한 권을 샀다. 집에 와서 영수증을 확인하니, 10달러가 덜 계산되어 있었다. 양심은 내일 문구용품점에 들러 10달러를 더 지불하라고 했지만 본심은 10달러를 벌었으니 그 돈으로 책을 한 권 사 읽으라고 했다. 양심을 저버리고 P.D.제임스의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여자가 읽기에 어쩐지 어울릴 것 같은 소설이었다. 450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을 이틀 만에 완독했고 소설의 배경인 영국 시골마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기분을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독서에 흠뻑 빠진 거였다.
책을 읽는 동안은 '여긴 어디, 난 누구'라는 방황의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사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읽은 책의 내용을 새로 산 노트에 기록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기록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해서 북튜버가 되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당시 나는 이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촬영해 편집한 브이로그 채널이었는데 구독자는 2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북튜버가 된다면 이보다는 더 나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없다고 해도 영상을 업로드 하기 위해 책을 읽고 독서기록을 하는 행위 자체가 자기계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해묵은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쇳소리를 내던 플룻이 다시 원래의 청아한 소리를 되찾아가는 것처럼 나도 나의 재능을 장롱 속에서 꺼내 갈고 닦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긴 호주,
나는 북튜버/프로 기록러/작가! 였다.